201 걸음
2:8의 법칙. 가르마 얘기냐고?
설마 그럴 리가.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은 상위 20% 정도 되나 몰라. 다들 월급 루팡짓이나 하고 있다고."
"상위 20%에 해당하는 남녀가 연애 경험의 80% 이상을 얘기함."
"수능 9등급 제에서 3등급 커트라인이 상위 23% 정도 됩니다."
"제일 잘 팔리는 상품 20%가 시장 매출의 8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어딘가에서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
과연 내 위치는 '2'쪽일까, 아니면 '8'에 포함되는 사람일까?
위에 해당하는 내용을 가리켜서 [파레토의 법칙]이라 부른다.
밑바닥에 깔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그럴 바엔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겠어.
특이점이 찾아왔다. 핑계치고는 너무 허접한데.
그런데 보통 내가 포기하는 이유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에서 비롯된 게 생각보다 많았다.
하지만 어디 상위 20%에 속하는 게 거저 이뤄질 수 있는 일인가?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는데, 몇 걸음 걷지도 않고 상위에 속하길 바라는 것부터 문제 있는 행동이었다.
여하튼 파레토의 법칙이 이 세상에 적용되고 있다고 하면, 상위가 아닌 80%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존재한단 말인가?
80%에 속하는 사람은 잘 못 살기라도 했다는 건가?
평생을 80%에 속해 살아온 나로선 쉬이 대답하기가 힘든 질문인 거 같다.
항상 [열등감]이 심했다.
"나 이번에 스톡옵션으로 꽤 벌었어. 너도 스타트업 씬으로 이직해."
그 말 한마디가 마음을 흔들었었고.
"암호화폐 투자로 재미 좀 봤지. 아직도 안 하냐?"
라는 소리에 헐레벌떡 쫓아가기 바빴고.
"ooo로 이직하게 됐어."
나와 큰 차별점이 없어 보이던 그가 선망하던 기업으로 이직하는 모습을 고통스럽게 지켜봤었다.
'왜?'
나는 안 되는 거지?
내 능력이 고작 이것밖에 안 되는 건가.
그럴 때마다 내 옆에 있던 [아내]가 유일한 힘이 되어주었다.
"뭘 그렇게 깊게 생각해.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살면 되고, 아니더라도 그 안에서 행복하게 살면 되는 거 아니야?"
"흠."
"오빠가 상위 20%에 속했었다면 우리가 서로 만나서 결혼할 수 있었을까?"
"음."
"난 그래. 행복의 기준이 있다면 꼭 상위 20%의 사람만 행복을 느낄 거 같진 않아."
"그래도 나한테 아쉬운 게 있진 않아?"
"아쉬운 거야 많지! 나만 맨날 쌔가 빠지게 일하잖아. 내가 지금 가정부로 고용된 건 아닌지⎯"
"자, 잠깐만. 배가 아파서 화장실 좀."
잔소리가 시작될 기미가 느껴져서 재빨리 피신했다. 드디어 오롯이 혼자 있을 수 있는 나만의 공간 [화장실]로 들어왔다. 이곳에서라면 상위, 하위 따지지 않고 무(無)의 상태가 될 수 있다.
학창 시절부터 학습되어 온 [경험]때문은 아닐까?
언제나 상위권을 선별하기 위해 등급을 매기던 학교 시스템의 영향이 항상 경쟁 속에 떨게 만든 건 아닐까.
우등해져야지만 삶이 바뀔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런 생각은 결국 회사를 다닐 때도 이어졌고, 고과를 잘 받는 직원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음이 분명하다.
[좋은 고과=연봉 상승]과도 직결되는 문제였기에, 그 어떤 것부터 최우선 과제가 되곤 했다. 직업적인 성취도는 일단 후순위로 두는 수밖에. 아쉬운 점은 그렇게 노력했지만 상위 20%에 드는 일은 쉬운 게 아니었다는 거다.
어쩌면 그래서 한동안은 작은 규모의 기업을 전전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인원이 부족한 곳에서라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역량을 발휘해도 태클 걸 사람이 적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서였다. 몇 명 안 되는 곳에서라면 분명 상위 20%가 뭐야, 상위 1%도 될 수 있을지 모르니까.
"사장만 제끼면 바로 다음이 나 아입니까!?"
그래서 회사생활이 꼬인 적도 많았다. [호없여왕]이라고 했던가.
-누가 그런 말을 씁니까? 근본 없는 줄임말 사용 금지.
[호랑이 없는 굴에 여우가 왕이다.]가 인생의 목표였던 시절이었다.
'아니 내가 퇴사하면 이 회사 누가 굴러가게 해?'
'어디 나만한 개발자 구하기가 쉬운지 볼까?'
'아... 기분 나쁘네? 안 되겠어. 사장이랑 독대해야지. 사장 나와!'
그야말로 안하무인, 후안무치의 표본.
심기가 조금만 불편하면 [이직 카드]를 꺼내 들며 언제든 떠날 수 있음을 시사했었다.
결국 그런 내 모습은 많은 이에게 미움을 샀었고, 성격마저 꼬이는 상황이 되었다.
모든 일은 내가 자초한 일이었으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문제였다.
-그렇게까지 상위권에 포진되고 싶었던 겁니까, 휴먼?
아니라고 생각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내 대답은 "맞아요."가 되겠다.
그렇게라도 상위로 올라가지 못한 내 열등감을 지워버리고 싶었던 거 같다.
"하아... 하아!"
하마터면 다시 또 신세한탄의 늪에 빠질 뻔했다.
이상하게 과거를 주제 삼아 글을 쓰다 보면 이상한 쪽으로 심각해지는 경향이 있다.
아무튼 현재는 당당히 하위권을 담당 중이다.
오히려 마음은 편하다.
"속 편하게 살아서 좋겠다. 난 일하러 가야 하는데 XX. 밥이나 차려왓!"
"헤헤 네에."
아내말이 맞았다.
비록 파레토의 법칙의 정수를 느껴보진 못했지만, 행복에 있어서만큼은 상위의 법칙이 무용한 게 아닐까?
"내가 돈 벌어오니까 그나마 그런 생각이 유지되는지 알아. 아니 근데 진짜로 편의점 야간 알바라도 해볼 생각 없어?"
"여기 밥이요!"
아니다. 행복에도 파레토의 법칙은 적용되는가?
자꾸만 알바의 압박이 들어오는데 이걸 어찌 피한담.
"뭐,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지."
조심스레 마음의 준비를 조금씩 해봐야겠다.
일단 밥부터 먹고, 커피도 한잔 마시고, 애니도 한편 때리고, 잠도 한숨 자고, 밀린 웹소설도 읽고, 맛집도 한번 들르고, 또 뭐가 있을까...
"죽을래?"
어허, 함부로 내 마음을 읽지 말라고.
일단은 다 집어치우고, 밥이나 먹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