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 걸음
세상의 모든 일에 있어서 운이 7할, 재주(능력)가 3할이라는 소리 - 또무위키
'내게 [행운]이라 부를만한 일이 뭐가 있었어?'
결혼 전, 40대 이상의 회사 동료(라 불러도 될까...) 중에는 이해할 수 없는 고민을 가진 이가 많았다.
"아, 이번에 잠실로 이사했는데 전세비용이 얼마가 들었고-"
"학원비가 매달 얼마가 나가는 줄 아니?"
"애들 대학 보내기 전까진 끝나지 않는 쳇바퀴라고."
"마통 없으면 생활이 안돼."
"oo 아파트가 얼마 올랐다더라."
뉘예 뉘예. 어련히 알아서들 잘하시겠습니까. 돈도 없고, 아는 것도 없는 무지렁이 총각은 그들 앞에서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어느 상황으로 보든 나보다는 다들 풍족하고 윤택한 삶을 살고 있을 텐데, 나한테 고민을 털어놔봤자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다고.
순간 울컥하기도 했다. 어찌하여 하늘은 가난한 아빠로도 모자라 아들인 나까지 대를 이어 가난 속으로 빠트리려 하는가.
"저기 신님? 귀가 있다면 좀 들어봐 주시겠어요? 네?"
울컥하는 와중에도 차마 반말은 할 수 없었다. 혹시 모를 천벌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두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운도 드럽게 없어. 연봉도 안 올라, 지원받을만한 것도 없고, 애당초 결혼도 글러먹은 게야. 이번 생은 깔끔히 독거노인의 길을 간다.'
로또라도 당첨되길 바랐다. 하지만 로또는 사지 않았다. 매주 쓰는 몇 천 원이 아깝다고 느껴져서였다.
복권 당첨이 되길 바라면서 사지도 않는 사람이라니.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모순덩어리 그 자체였구나.
신기할 정도로 나이 많은 분들이 내게 자신의 삶에 대한 한탄을 많이 털어놨었다.
'이쯤 되면 나이 들면 아무나 붙잡고 얘기하게 되는 건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었다.
당시만 해도 프로젝트 기간 중 점심을 빙자한 낮 회식이 빈번했고, 저녁 때는 합법(?)적인 회식이 이뤄졌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선,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어이 형씨, 술 못 마시면 조절하면서 마시고 내 얘기나 좀 듣지. 앉아봐."
그중 가장 인간적으로 대해주던 수석님(직급 체계 중 하나)이 한분 계셨다. 나이 상으로는 아버지 뻘에 해당하시기도 했고, 말투가 젠틀한 데다 젠체하지 않는 분이라서 다른 분보다는 확실히 대하기가 편했다.
업무적으로도 간혹 도움을 드렸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고, 신기술에 무뎌지다 보면 아쉬워지는 부분이 많아지는 게 사실이니까. 반대로 난 그분의 업무지식(도메인)과 경험을 얻는 조건. 상부상조가 되었다 생각한다.
김수석 님은 중산층 이상에 속해 있는 분이셨다.
목동에 자가 아파트를 보유하셨고, 자녀도 대학생까지 기른 상태였으며, 대출도 딱히 없으셨다.
내 기준에서는 아쉬울 게 전혀 없는 사람, 오히려 선망의 대상에 가까웠다.
'내가 저 정도만 가지고 있다면 부러울 게 없겠는데.'
하지만 그는 내 생각보다도 훨씬 큰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이룬 것에 반해 회사에서는 늘 찬밥신세였고, 무엇보다 외로워 보였다.
술이 한 잔 들어갔다.
"사실 난 개발 말고 다른 일이 하고 싶었어. 솔직히 말해서 난 개발자도 아니야. 그대도 알잖아?"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묵묵히 비워진 술잔을 채워 줄 뿐이었다.
말의 요지는 이러했다. 본인이 이룩한 건 사실 [운이 전부였다고], 운칠기삼? 오히려 운9기1에 가깝달까. 목동에 집을 살 수 있게 된 것도 아내의 설득과 장모님의 대출을 가장한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얘기했다.
"운이 좋아서 이렇게나마 살 수 있는 거였지. 내가 뭐 실력이 좋나."
그 순간 부러움을 둘째치고 인간적으로 그의 알 수 없는(정확하게는 내가 이해할 수 없던)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함께 일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같이 있는 시간 동안만큼은 업무 외의 시간 동안 그의 얘기를 참 많이 들어줬었다.
언젠가 내가 선망하던 롤모델 중 한 명이랑 독대를 할 일이 생겼다.
위에서 언급한 수석님과 달리 이 사람은 누가 봐도 확실한 상류층이었다.
'그런 그가 뭐가 아쉬워 나에게 속 이야기를 한단 말이지?'
절대로 이해할 수도, 이해되지도 않을 법한 우리 둘 사이의 간극을 뒤로하고, 그 또한 수석님과 비슷한 결의 이야기를 했다.
"내가 부럽겠죠. 솔직히 나 가진 건 많습니다. 그런데 이루고 싶은 꿈에 한 발자국 다가가는 게 왜 이리 힘들까요."
'지금 그게 월급 받고 사는 내 앞에서 할 소리입니까!'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아니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직할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간적으로 잘해주는데 내가 인성질을 해서야 되겠는가.
"사업? 이거 순 운이 90%에요. 아니 정확히 말해줄게요. 나한텐 99%의 운이었달까요."
에디슨의 환생인가? 99%의 노력과 1%의 영감이 그를 만들었다던. 하지만 운과 노력은 추구하는 방향성이 다른 거 같은데.
아무튼 회사를 다니는 동안 가끔씩 그의 속내를 들을 때가 있었다. 당시엔 내게 밑도 끝도 없는 자랑을 일삼는 사람이라고만 여겼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가 꽤나 진지하게 속내를 전했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회사는 오래 다니지 않았다. 헤헤.
"자, 잠깐만..."
문득 뇌리를 스쳐가는 생각 하나.
누군가 보기에 따라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모습도 [부러움의 대상]이 되지는 않을까?
비록 백수에 돈도 못 벌고, 브런치에 일기스러운 낙서를 남기고 있는 나.
이런 나라도 괜찮은가요?
생각해 보면 내가 아주 운이 없던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아내를 잘 만난 덕분에 약간의 #피폐 스러운 상황은 겪을지언정, 먹고는 살고 있으니.
"너는 진짜 복 받은 줄 알아. 나 같은 여자가 요즘 있는 줄 알아? 그런 의미에서 다음 생에선 부디 만나지 말자. 아니 너도 너 같은 여자 만나서 살아보렴."
내 비록 물질적으로 가진 건 많지 않지만, 시간만큼은 현재 풍족하지 않은가.
이거야말로 [운이 다 했다] 해도 할 말이 없는 거 아닌가?
신세한탄하며 스스로 인생 조질 생각하지 말고, 지금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해야겠다.
십여 년 전 [이생망]이라고 부르짖던 내 모습을 떠올리자.
결코 이번 회차의 내 인생은 망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과거에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잘살고 있다.
그러니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겸손히 주어진 현실을 잘 살아내자.
그것이 이번 생의 나에게 보은 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