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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달에 메일 한통을 받았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제품 회수&원고 검수형으로 비공개 광고 캠페인 한번 참여해 보실?
쉽게 말해 체험단의 종류 중 하나이지만 제품이나 음식의 제공 대신 포인트를 지급해 주겠다는 제안 메일이었다.
"오빠 당장해! 돈 준다잖아!"
아내의 친구이면서,
내게는 체험단 구루,
지브리 덕후의 표본.
"그만해. 지금 내 친구 조롱하는 거야?"
조롱은 무슨 찬양이다!
여하튼 나의 구루께서는 이미 광고계의 거목이 되어서 포인트로 돈을 벌고 계셨다.
평소 그런 점을 부러워하던 아내가 쏟아내던 말.
"어째서 당신은 변변치 못하게 광고하나 못 따느냐."
"먹는 거 필요 없어!"
"포인트를 벌어오지 않을 거면 나가서 돈을 벌어왓!"
그런 내게 빛이 한 줄기 내려왔다.
포인트는 100,000P로 책정되어 있었다.
실제 포인트 지급받은 후 통장으로 인출받을 땐 [소득세]를 제외하고 들어오니 완벽한 10만 원은 아니겠지만 그게 어딘가.
하. 지. 만.
'만들기 싫어.'
자신도 없었고, 뭘 찍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차에 결국 제품이 도착했다.
"하아. 진짜 하기 싫다."
"해! 하라고! 이거라도 벌엇!"
결과물은 1분 남짓한 짧은 영상과 1,000자 내외의 소개문구가 필요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별 거 없어 보이는데, 익숙하지 않은 일이기도 하고 어떻게 이쁘게 찍을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해야지 어쩌겠어.'
누가 하라고 떠민 것도 아닌 스스로의 선택(이라 하고 아내의 외압이 일부 개입?)이었으니 닥치고 하는 수밖에.
구루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직접 들은 건 아닌 아내의 입을 통해 구전된 내용임)
"나 구루 가라사대, 바닷가에 산다는 점을 어필해서 바다가 보이게 제품을 찍겠노라고 허언을 남발할 지어다."
바닷가 근처에 사니까 나가서 찍으면 되긴 하니, 상당히 좋은 전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연중행사처럼 바다를 보는 난 나가는 거 자체가 왜 그리도 귀찮던지.
여하튼 구루님의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나 보다.
광고의 가이드라인이 꽤나 충실하게 작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가볍게 무시.
-장난하는 거요? 어디 이런 사람도 광고로 돈을 번다고? 세상이 어찌 되려고 쯧쯧.
저, 저기... 한국말은 끝까지 듣는 것이 국룰입니다만.
나의 독해력과 창의성이 부족함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나는 과감히 가이드라인을 ChatGPT를 통해 청소년 수준에 맞춰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번역해 달라 요청했다.
[알겠다 휴먼. 비천한 너에게 나의 자비로운 지혜를 허락하겠다.]
"오호. 오호라!? 역시 AI 느님이시다. 이 정도면 초등학생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 되었어."
그렇게 가이드라인의 수준을 강제로 낮춰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로 좁혔다.
촬영도 신경 써야 하긴 하는데, 어떻게 해야 잘 찍는지는 도통 어려운 일인지라 일단 전에 사두고 묵혀 놓은 액션캠을 끄집어냈다.
"자, 이제 너도 밥값 해야지?"
주인을 잘못 만나서 먼지구덩이 속에 있던 녀석이지만, 내가 갑이니 마음대로 휘둘렀다. 억울하면 누가 기계하래?
아내의 도움이 컸다.
바닷가에 이것저것 챙겨가보자는 제안도 하고, 재료도 이것저것 써보자며 열심히 나를 설득했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그럴 거면 님이 찍으시던가 ^^"
"......"
이번 침묵 속엔 많은 게 축약되어 있었다. 아마 속에서부터 깊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을 텐데 참은 게 분명하다.
'요시! 잘만하면 이번 기회에 그간 쌓였던 스트레스 분출을 할 수 있겠어.'
아마도 찍는 동안만큼은 참아주려나보다.
-아니 뭐 얼마나 대단한 영상을 찍는다고.
"뜨끔."
나도 모르게 뜨끔해져서는 입 밖으로 나오지 말아야 할 이상한 소리가 나와버렸네.
(결과물은 상당히 많이 부족했습니다 ㅠㅠ)
여하튼 찍고 또 찍고, 나름 열심히 편집도 좀 해보고, 자막도 집어넣고, 원고도 작성하고 어? 내가 마 다했어!
주사위는 던져졌다. 원고와 영상을 보내고 검수 기간에 돌입했다.
'좀 더 잘 만들어 볼걸.'
막상 보내고 나니 시원섭섭했다. 그래도 처음 경험하는 광고인데, 기왕이면 오너의 마음에 쏙 들도록 잘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봤을 땐 완성도가 한 60%? 좀 아쉽긴 해."
아내의 냉정한 평가. 그런데 반박할 수는 없었다. 내가 봐도 부족해 보이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더라.
그래도 어쩌겠어. 이미 보낸 건 보낸 건데.
2주 정도의 검수 기간이 끝나고, 피드백이 왔다.
[저기. 음영 넣은 부분은 전부 수정해 주시고요. 영상에 자막 흐릿해 보이는 부분 적힌 내용으로 바꿔서 올려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이 일을 기억할 것입니다.]
잘해보겠다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수정해 달라는 문구 때문에 한숨만 푹푹 쉬었다.
"아오, 귀찮아!"
역시나 공짜로 돈을 벌 수는 없는 것이었다. 당연한 일 아니겠어. 어디 남의 돈을 공으로 먹으려고. 그러다 토해내.
.
.
.
다시 또 뚝딱뚝딱 수정을 하고, 마침내 업로드 완료‼️
"마, 만세! 해방이다!"
물론 최종 검수가 한번 더 있을 예정이었지만 요청한 내용은 다 반영했으니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통과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울린 휴대전화의 진동소리.
졸린 눈을 비비며 폰을 집어 들었다.
메시지가 짤려 있어서 자세히 볼 수는 없었는데, 일단 손이 미끄러져서 클릭해 버렸다.
"오! 오? 드, 들어왔어!"
"뭐가! 조용히 해 잠 좀 자자."
"10만 원 들어왔다곳!"
"오잉? 이게 되네?ㅋ 축하해. 드디어 처음으로 10만 원 벌었네? 아-주 축하한다 축하해. 장하다 ^^. 십만 원이나 벌었네? 야호. 연봉이 십만 원이라니 세상에 너무 좋네."
"......"
이상 광고로 십만 원 벌어본 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