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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함 속의 즐거움

206 걸음

by 고성프리맨

요즘 갑자기 빠져든 [게임]이 있다.


백수+게임...


'이거 너무나도 위험한 조합인데?'


그래서 몰래 숨어서 한다. 아내가 잠시 출타하거나, 아이의 정신이 컴퓨터가 아닌 다른 곳에 팔려 있을 때가 기회. 한편으로는 '이게 맞나?' 싶기도 하다.


-뭔 게임하는데 그래요?


어려서부터 온라인보다는 오락실에 익숙했던 탓일까. 여럿이 즐기는 게임보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게임을 좋아했는데, 그런 내 취향에 딱 들어맞는 게임이랄까.


사슴벌레의 모험기. jpg


바로 [할로우 나이트]라 불리는 메트로배니아 장르의 게임되시겠다.


얼핏 보면 팀 버튼의 유령 신부 세계관과도 통할 듯해 보이는 색조와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분위기가 제법 을씨년스럽다.



Metroidvania / メトロイドヴァニア


액션 게임의 하위 장르. 완전히 정복할 수 없는 같은 지역에 대한 반복적 탐색으로 결국은 지역을 완전히 정복하는 것에 이르고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발전에도 이르는 특색을 가진 작품들을 이른다.



쉽게 설명하면 [미로 찾기 + 액션] 게임이다.


막다른 벽이나 지역에 다다랐을 때,

"대체 여기서 어떻게 더 진행하라는 거냐고!"라는 탄식이 흘러나온다거나,

짜증 날 정도의 어려운 난이도를 자랑하는 [보스와의 만남]이 대기 중이라 수많은 죽음을 겪어야만 하는 게임.


물론 죽는 이유의 대다수는 플레이어인 내 실력이 모자라서다.


위 게임은 출시된 지 꽤 지난 게임이긴 한데 명작에 탄생일이 뭐 그리 대수던가.


'내가 즐겨보고 재밌으면 된 거지.'




할로우 나이트는 인생을 닮아 있었다.


"X소리 말고 생산적인 활동 좀 해. 애들 컴퓨터 하는 거 방해하지 말고."

"......"


그대가 무얼 이해하겠소. 게임의 정수를 아내에게 설명하려는 노력은 굳이 하지 않았다.

어차피 때가 돼서 공략에 성공하고 나면 하라고 해도 더 이상 안 할 테니.

물론 그전까진 꽤나 열심히 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째서 인생을 닮았다는 건지?


막다른 벽에 부딪친 주인공의 모습에 내가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허우적거리며 어떻게든 생존해 내고야 말겠다는 의지와 모습이 낯설어 보이지 않았음이다.


-합리화하기는 쯧쯧.


원래 뜨끔할 땐 자기 합리화부터 해야 한다. 그래야 하면서도 덜 민망하고 오히려 당당해질 수 있달까.


그런데 정말 이 게임은 해보면 좋을 거 같다. 물론 바쁘게 손가락을 컨트롤해야 하는 걸 싫어하거나, 반복성의 짜증 나는 난이도를 겪기 싫은 사람에겐 비추하겠다. 여하튼 그런 압박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스토리에 몰입할 수 있으리라.




실로 오랜만에 게임을 하고 있는 중이다.

청소년 시절엔 밤을 새우며 게임을 하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그 정도의 재미를 느끼기도 쉽지 않고 체력도 따라주질 않는다.


보통은 한번 빠져들면 꽤 오래 즐기는 편이긴 하다. 남들이 버리거나 퇴출 수순에 빠져든 게임이더라도 (혹은 책이더라도) [내 만족]으로 즐기는 편이다.


잃어버렸던 [즐거움] 중 하나를 오랜만에 느끼다 보니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오르기도 한다. 이제는 순발력도 줄고, 손목도 시큰거려서 애로사항이 많다 보니 약간 서글프기도 하다. 그래도 적당한 수준에서의 플레이가 주는 즐거움이 크다.


마치 살아있는 것과도 비슷한 [생동감]이 느껴진달까.


-무슨 게임하나 하면서 오버는?


어쩌면 아직 내 마음속엔 [소년]이 들어있는지도 모르겠다.

꿈과 희망과 동심을 좇아 해당 세계관에 몰입할 수 있는 순수한 마음.

비록 아내의 복장은 터질지라도... 미안하지만 조금만 더 즐길게.




게임을 하는 내 모습을 지켜보는 아이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아니 요즘 누가 그런 게임해요. 재미없어 보이는데요?"

"아빠 그만해! 나도 좀 하자!"

"엄마! 아빠가 자꾸 못하게 해."


아내에게 구박받고 자리에서 쫓겨나기 전까진 키보드를 놓을 수 없지.


'어떻게 이 자리를 사수했는데.'


"아오 진짜. 오빠처럼 안 커야 할 텐데."

"날 닮으면 매니악한 거지."

"그게 싫다고. 나이에 맞게 살아야 될 거 아니야!"


나이와 취미에 굳이 경계를 둘 필요가 있으려나. 그래도 되도록이면 못마땅해하는 아내의 미움을 살 필요는 없겠지.


"얘들아 이제 해라."


마지못해 자리를 양보하고 일어났다.

.

.

.

"아빠아빠!"

"왜?"

"아까 아빠가 하던 게임, 제가 공략을 좀 찾아봤는데요. 이렇게 해보시면 어때요?"

"어? 너 그 게임 안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아니. 아빠가 재밌게 하시니까 도와드리고 싶어서요. 계속 헤매기만 하고... (뒤에는 너무 못해서가 생략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거 살짝 감동인데?

내가 자신의 플레이 시간을 갉아먹는 걸 알면서도 아버지인 나를 도와주려는 효심을 발휘하다니.


"그, 그래? 그럼 어디 한번 가서 해봐도 될까?"


코쓱_이말년짤.jpg


"네에! 하셔도 돼요! 옆에서 응원할게요!"


그렇게 어린 아들의 응원과 아내의 구박을 동시에 받으며 오늘도 꿋꿋이 게임을 플레이 중이다.

그리고 이 글은 그 와중에 겨우 정신 차리고 잠시 쓰는 중이기도 하다.


"빨리 글 써재끼고 할로우 나이트 하러 가야지. 히힛."


오늘도 40대 아저씨의 활기찬 하루 스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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