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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긴 하는데 도통 기억에 남질 않는다.
잠에서 깨는 순간 바로 휘발되어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 그중에서도 뭔가 기억에 남아 기록이라도 남겨보려 하면 갑자기 구멍 난 듯 기억에 상실이 생겨버린다.
오늘도 꿈을 꾸면서 그랬다.
'이건 기록해야 해.'
일종의 [자각몽]이라고 해야 하려나, 꿈을 꾸는 중이라는 걸 인식 중이었다. 하지만 눈을 떴을 땐 바람과 달리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꿈의 일부라도 기록해 볼 수 있을까.'
나의 오랜 소원 중 하나인 [꿈에 대한 기록]을 도와줄 장치가 세상에 나오긴 할까?
살면서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 꿈이 하나 있다.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꿈이 맞긴 했을까? 착각은 아닐까?'
간절히 바라고 원했기에 [꿈]이었다고 착각하거나 [기억 왜곡]을 하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글로 남겨보겠다.
그 꿈은(혹은 착각은) [이어지는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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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두운 도시(혹은 공간)의 어딘가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서 있는 줄 알았는데 느껴보니 달리는 감각과 비슷했다. 마치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라가 있어 굳이 달리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이 뒤로 밀리지 않기 위해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상황에 집중했을 때, '아! 나 지금 쫓기고 있구나?'를 깨달았다.
알 수 없는 무언가로부터 나는 쫓기며 제자리 달리기와도 같은 몸부림을 치고 있는 중이었다.
쫓아오는 정체에 대해선 알 길이 없었다. 확실한 건 뒤를 보면 안 된다는 느낌이 전해졌달까. 일종의 직감이었다.
'절대로 정체를 알려하지 마.'
상대와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지 가까워지는 중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달리지 않으면 잡힐 거라는 생각만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러다 눈을 떴다.
"어? 뭐야. 꿈이 기억나네?"
이상했다. 평소였다면 분명 휘발되어 버리고 말았을 꿈 내용이 기억나는 게 아닌가. 사실 장면 상으로는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었다.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보이지 않는 목표점을 향해 달려 나가는 모습이 전부였으니까.
며칠이 흘렀다. 다시 잠에 빠졌고, 나는 예의 그 공간에 다시 왔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숨 가쁘게 다시 달음질을 시작했다. 전과 마찬가지로 알 수 없는 무언가로부터 나는 도주인지 경쟁인지 모를 이유로 끝없이 달리는 중이었다.
다시 눈을 떴고, 일상은 지속됐다. 꿈은 꿈일 뿐이고 현실은 또 다른 꿈의 연장이기에 나는 좀 더 주체적으로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꿈을 살아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일상의 시간이 흐르고, 며칠이 지난 후 다시 똑같은 꿈을 꿨다.
그런데 이번엔 내가 도망쳐서 봤다고 생각한 풍경 속 어딘가에서부터 꿈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나는 이어지는 꿈을 10여 차례에 걸쳐 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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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모르겠다. 당시 심리적으로 불안해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디까지나 추정이었을 뿐이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나처럼 [연속되는 꿈]을 꿨다는 사람을 꽤 많이 볼 수 있었다.
[심신 미약, 개꿈, 예지몽, 불안감의 확장, 망상 등] 다양한 의견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 무엇 하나 내게 맞는 사유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이어진 꿈 자체가 그다지 특별한 내용이 있었던 것도 아니니.
넷플릭스에서 한동안 인터렉티브라는 형태로 [시청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영화나 콘텐츠가 많이 나오던 적이 있었다. 쉽게 생각하면 [미연시] 게임처럼 주어진 상황 중 선택을 하면 분기되어 이야기가 진행되는 형식이라 보면 되겠다.
밴더스내치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가 있다.
주인공에게 누군가가 옥상에서 제안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정확하진 않지만 이런 뉘앙스였었다.
"님아, 이거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겠쥬? 한번 옥상에서 뛰어내려서 확인해 보실라우?"
A. 꿈이라 믿으니 난 뛰어내려보겠음.
B. (이거 미친X 아니야?) 안 뛰어내림.
인셉션의 영향을 받아서였을까?
'아니 이거 당연히 꿈 아니야? 진행시켜!'
그리고 죽었다...
당연히 클리셰일 거라 생각했던 내 생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오히려 내가 꿨던 꿈보다 남이 얘기해 준 꿈이 더 기억에 남는다.
문득 나를 길러주셨던 외증조할머니에게 들었던 꿈이 생각난다.
나는 평소 사우나를 즐긴다. 오늘도 평소처럼 사우나를 이용하고 있었는데 머리가 좀 어지러운 게 아닌가. 밖에 나가서 휴식을 좀 취할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사우나 문을 열려고 했는데
'어? 문이 안 열리네?'
문이 잠겨 있었다. 공교롭게도 바깥에는 사람이 없었다. 있는 힘껏 문을 두드려 봐도 인기척은 없었고 그러다 정신을 잃었나 보다.
눈을 떴을 때 내 눈앞에는 화사한 꽃밭이 펼쳐져 있었다. 꽃밭 한가운데엔 정리된 좁은 도로가 있었고 영문도 모른 채 나는 그 길을 홀린 듯이 걸어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화사하게 피어 있던 꽃밭도 사라진 지 오래, 어느샌가 비가 내리며 어두컴컴해진 하늘과 축축한 땅의 질퍽거림을 느끼며 계속 나아갔다.
그렇게 걷고 또 걸었다. 걷는 동안 변화무쌍한 날씨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빛이 한 줄기 보인다. 나는 저 빛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마침내 그 빛이 비치는 곳의 끝에 다다랐다. 그곳에는 예상과 달리 흰옷을 입은 여자가 서있었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지만 옷차림과 긴 머리 때문에 여자라고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멈추십시오."
"네?"
"여기까지. 당신은 돌아가셔야 합니다. 아직은 올 때가 아닙니다."
"아... 그렇지만 저는 걸어가고 싶은데요?"
갑자기 여자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지더니 노기 어린 목소리로 내게 소리쳤다.
"돌. 아. 가. 라. 고!"
깜짝 놀라서 눈을 떴을 땐 병실에 누워 있는 내 주위에서 울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꿈보다는 [의식불명상태]에 가까운 거 같다. 여하튼 나는 할머니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어찌 보면 흔해 보이는 꿈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할머니에게 들었던 꿈을 기억하며 할머니를 떠올려본다.
글의 제목은 해당 블로그에 쓰인 내용을 이용해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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