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 걸음
"6... 69kg?!"
얼마 만에 앞자리가 6을 찍어보는가. 결혼 후 살이 급격히 불어나면서 한때는 78kg까지 올라갔던 몸무게가 조금씩 정상화가 되어 가는 듯하다.
결혼 전에는 62kg 내외의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한 순간의 방심이 불러온 사태라고 밖엔 설명할 수가 없겠다.
물론 몸무게가 전부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찍힌 6X라는 숫자가 주는 기쁨이 있다.
-키가 몇인데요?
"으흠... 평균키요."
-170?
"갈! 175cm 입니다만!"
-수상한데.
애초에 키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진 않는 편이라 딱히 신경 쓰이진 않지만, 180cm 이상에 대한 부러움은 있었다. 세분화에서 따지다 보면 [비율]이라거나 [몸매] 같은 요소가 더 중요하겠지만 일단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키가 180cm 이상이었다고 생각해 주면 좋겠다.
어쩌다 보니 TMI 대방출의 시간이 되어버리고야 말았다.
'대체 누가 40대 아저씨의 신체스펙에 대해 궁금해한다고...'
20대 때엔 살이 안 붙는 체질인 줄로만 알았다. 몸무게도 50kg 후반대를 찍던 시절이라 살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었을 거 같지만, 막상 그렇지도 않았다.
초등학교 시절 [녹용]을 잘못 먹고 뒤룩뒤룩 살이 찐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트라우마로 인해 [살찌는 것에 대한 공포]가 내면에 자리 잡고 있었던 탓이다.
초딩 시절 뚱뚱한 아이들에게 한 번쯤은 대수롭지 않게 붙었을 별명.
"야. 돼지야!"
"...... 거, 듣는 돼지 기분 나쁘니까 하지 말래?"
"알았어 돼지야."
"흐음. 한국말이 알아듣기 어려운 아해로구나."
결국 이해력을 돕기 위해 얼굴에 주먹을 날려버렸다. 우리 땐 [이해력=사랑의 매]라는 공식이 성립되던 시절이라 선생님들도 각자의 주무기를 하나씩 가지고 다니던 시절이었고, 평소 선생님들을 우러러보며 자란 나는 그런 존경심을 담아 주무기 대신에 주먹을 사용했을 뿐이다.
우당탕탕⎯!
"뿌에엥!"
"뭐얏! 누구얏!"
하필이면 타이밍도 참. 내 주먹에 맞은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고, 마침 지나가던 선생님이 그 소리를 들어버렸다. 결국 선빵의 대가로 나 또한 참된 스승의 은혜를 몸으로 익히게 되어버렸다. 그 결과 내 허벅지엔 돼지에게 찍는 등급판정 도장과도 같은 색의 멍이 생겨버렸다.
'몸에 생긴 멍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 다지만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아 버린 멍은 어찌할꼬...'
.
.
.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인해 나는 마른 상태에서도 늘 불안했다.
'이러다 다시 옛날로 돌아갈지도 몰라.'
'돼지가 되면 안 돼. 다시 놀림받기 싫어.'
이토록 어린 시절에 생긴 상처 하나는 생각보다 오래도록 남아서 괴롭히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토록 유지하고 싶던 몸무게도 [결혼]과 동시에 놓쳐버렸다. 물론 이전부터 전조는 있었다. 그것은 바로 [회사생활].
밥을 5분 컷으로 먹고, 움직임은 최소화한 채, 의자에 하루 종일 앉아 키보드 뚜둥기며, 스트레스를 간식으로 해소하는 삶의 반복.
그로 인해 조금씩 살이 붙고 있었음도 인정하는 바이다.
그리고 결혼 후, 생계라는 미명하에 나의 운동부족을 당연스레 넘겨버렸다.
복부둘레가 커졌으며, 건강검진에서는 늘 내장비만에 대한 경고를 들어야만 했다. 어쩌다 인바디 검사를 진행할 때면 근육량은 적고, 지방량은 풍부한 투뿔 한우 같은 등급을 받기 일쑤였다.
"나잇살 아닐까?"
나이 탓을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그렇게 많은 나이도 아니었다. 또래의 사람 중에서도 자기 관리에 철저한 사람과의 격차는 점점 벌어졌다. 그와 나의 몸매 차이는 결국 못난 질투심을 불러일으켰고, 마침내 비난을 하기에 이르렀다.
"일은 안 하고! 누군 뭐 운동하기 싫어서 안 하는 줄 알아? 이게 다 일하느라 바빠서 그런 거라고!"
대체 누구한테 말하는 걸까? 듣는 이는 아무도 없건만, 나 혼자 씩씩 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소리를 지르고 나니 속은 좀 후련해졌다.
'혹시 또 알아? 소리 지르며 칼로리 소비를 좀 했을지.'
그렇게 내게 있어 과거의 영광은 그저 추억으로만 존재하는가 싶었다.
그런 내가 드디어 69kg을 달성했다.
물론 밥을 많이 먹거나 다시 해이해지는 순간 순식간에 7X대로 돌아가겠지만, 그래도 당장엔 기분이 좋다.
-목표로 하는 몸무게가 있숴요?"
"구체적이진 않지만 60kg 중반대 정도면 좋지 않을까요? 물론 깡마른 형태로 그렇게 말라지는 건 제외하고요."
-욕심쟁이네.
그래도 하면 된다. 내 생에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몸무게도 나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살 빼는 건 일도 아니지."라고 떠벌였었는데, 그런 일조차 십 년 가까이 걸렸다.
하물며 티도 나지 않는 글쓰기 같은 건 말할 필요도 없는 거겠지.
여하튼 오늘은 기분이 참 좋다.
몸무게가 정상화된다 해서 갑자기 잘생겨질 리도 없건만, 그래도 기분이 좋은 걸 어쩐담.
여전히 거울에 비친 몸매를 볼 때마다 불만족스러운 구석이 참 많지만, 그래도 내 몸인걸.
앞으로는 방관하지 않을 테니 우리 한 번 앞으로의 십 년도 잘 지내보도록 하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