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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은 늘 그대로 존재한다. 그렇지만.

212 걸음

by 고성프리맨

"엄마... 언제 데리러 와요?"


새벽 1시에 전화를 건 아이가 하는 말이었다. 아빠인 내가 전화를 받지 않아서인지 엄마에게 걸었나 보다.


"아침에 가기로 했잖아. 이제 자야지. 왜... 잠이 안 와?"

"네. 엄마... 보고 싶어요(흐흑)."


잠결에 깬 내 귀에도 들려온 숨죽여 우는 아이의 흐느낌에 갑자기 마음이 먹먹해졌다.


"ㅁㅁ야 씩씩하게 오늘 하루만 잘 자고, 내일 바로 데리러 갈게 알았지?"

"네에... 잘 자요."


전화를 끊은 아내가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데려왔어야 했을까?"

"어쩔 수 없지 뭐. 삼촌 가족하고 자겠다고 할 땐 언제고 이리 유약해서야 원. 그냥 자자 우리도."


아내는 생각보다 쿨했다. 물론 속마음까지 그러진 못해서 한숨을 쉬었으리라. 나 또한 걱정스러웠다. 이렇게 칭얼거릴 줄 알았더라면 집에 데려와서 재울걸.

.

.

.


"오빠. 미치겠어!"

"으응?"


시간을 보니 아침 7시 30분이었다.


"잠만 잘자더라? 아주 지세상이야? 응?"


'무슨 일이지?'


내가 잘못한 거라곤 딱히 없는 거 같은데.


"새벽에 애가 계속 전화했던 건 알아? 아무래도 밤샜나 봐. 그 덕에 나도 제대로 못 잤어. 근데 오빤 옆에서 한 번도 안 깨고 잠만 잘 자데?"

"......"


할 말이 없을 땐 묵비권이나 행사해야지 뭐.


"여하튼 일찍 데리러 가자. 안 그래도 오빠네도 대설주의보 때문에 일정 바꿔서 지금 내려가겠대."

"벌써?"

"어."


오늘은 내가 조카랑 우리 애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놀아주려 했던 날이었다. 대설주의보로 인한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이 마뜩잖았다.


"오늘 날씨 너무 좋은데?"

"수도권은 아닌가 봐."


그리 넓지 않은 우리나라지만 지역에 따라서 날씨차이가 크다는 걸 새삼 느꼈다. 사실 속초나 고성 쪽은 지금 대설주의보랑은 전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화창한 데다 기온마저 영상이기 때문이다.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일단 잠도 제대로 못 잔 둘째를 모시러 가야겠다.




"엄마... 아빠! 왜 전화도 안 받고 그랬어요?"


아이는 보자마자 울먹임과 반가움을 동시에 표했다.


"밤새도록 잠을 못 자서 눈 부은 거 봐."

"계속 울더라고요. 아휴 참."


부모와 떨어져서 잔적이 없어서일까 아이가 많이 힘들었나 보다. 그에 반해 첫째는 꿀잠을 잤다.


"아니... 새벽같이 날 깨우더라고요. 더 자고 싶었는데."

"형한테 의지하고 싶었나 보다. 안 졸려? 아빠는 잠 못 자면 머리도 아프고 너무 졸리던데."

"괜찮아요. 이제 집 가요!"


아이라서 체력이 좋은 건지 생각보다 멀쩡해 보이는 상태가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토록 밤새 전화기를 못 내려놓고 매시간마다 전화할 줄 알았더라면 따로 자게 하지 않는 거였는데.




"오빠는 너무 애들을 품 안에 두려 하는 거 같아. 라떼는 말이야."


그놈의 라떼 타령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보통 타령으로만 그치진 않는다. 진짜 라떼도 타먹으니까.


"내가 그 정도라고?"

"장난 아니야. 언제까지 붙어서 재우고 데려다주고 그럴 순 없잖아. 독립적으로! 자주적으로! 행동하게 좀 냅둬."

"밤새도록 울면서 전화했다고 하니까 걱정이 돼서..."

"그렇게 걱정됐으면 니가 전화를 받지 그랬어!"


그러게 말이다. 나 또한 첫째처럼 세상 편하게 꿀잠을 자버렸으니 뭐라 할 말은 없는데 그래도 좀 억울은 하다 이거지.


"아빠아. 나 밤샜어요."


억울해하는 내게 둘째가 조심스레 다가와 무릎에 앉았다. 나는 그의 가슴과 배에 살포시 양손을 얹어 안기 좋은 자세를 취했다. 더불어서 살짝 튀어나온 뱃살도 만지작 거렸다.


"아빠! 만지지 말라니까."

"알았어. 귀여워서 그랬어. 그런데 왜 잠을 안 잤어?"

"잠이 안 왔어요. 자꾸 슬프고 무서운 생각이 들고 집에 가고 싶고 그랬어요."

"고작 반나절 정도 떨어져 있는 건데도?"

"그래도요. 다음에는 안 잘래요."


아이의 말에 나는 즉각 뺨을 비벼대며 대화대신 교감했다. 그 모습을 어이없이 바라보던 아내는 '또 저러고 있네.'라는 듯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지만, 말려도 듣지 않을 테야. 나랑 아이 사이를 방해하지 말라고.




형님 가족이 아침 일찍 떠났다.

큰 조카는 내심 같이 놀지 못해서 아쉬움이 남아 있는 듯했다. 원래대로였다면 고모부인 내가 알아서 여기저기 가이드 노릇을 톡톡히 해줄 생각이었는데 아쉽긴 하겠지. 내가 가이드를 좀 잘해야 말이지.


......


"갔어요?"

"응 떠났어."

"왜 벌써 갔어요?"

"날씨가 안 좋아져서."

"여기 날씨 좋잖아요."

"여기 말고 삼촌 사는 동네가."

"그래요? 그럼 언제 또 놀러 온데요?"

"글쎄. 다음 연휴 때를 한번 노려봐야 되겠지?"

"아쉽다. 그래도 아빠랑 엄마가 데리러 와서 기분은 좋아요."

"그래? 우리도 얼른 정리하고 집으로 가자. 집에 가서 졸릴 테니 낮잠도 좀 자고.".

.

.

.


이번 모임도 결국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한번 지나가 버린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련만, 어째서인지 언제나 아쉬움이 남는 거 같다.


여행 코스의 선택에서도 아쉬움이 남았고,

환경이 바뀌어 잠을 잘 못 잔 둘째에게도,

다 같이 제대로 대화도 못한 우리 모두에게도.

아쉬움이 남아버렸다.


일상으로 복귀하는 형님 가족도, 우리 가족도 다시 또 주어진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야겠지.

그렇게 열심히 살다 보면 다시 또 모일 날도 오고, 그때에 가서는 이전의 아쉬움을 풀어보겠노라며 다시 설레는 마음으로 이런저런 계획을 짜보는 내가 있겠지.


그래도 잠시나마 얼굴 보고 밥도 먹고 짤막한 근황토크도 나눴으니 "그래 되었어 이 정도면."


어차피 생에 아쉬움은 늘 존재하는 거니까. 이번에는 이 정도만 남겨놓도록 하자.

그렇게 모두가 떠난 자리엔 아쉬움만을 남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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