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 걸음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 지 어느새 3주가 되어간다. 일반적인 경우엔 2주 동안 대여가 가능한데 연장 1주를 포함한 기간이다. 한 번에 최대로 빌릴 수 있는 권수는 5권인데 '이번엔 욕심내지 말자.'라고 다짐했건만 결국 5권을 꽉 채워서 빌렸다.
"3주면 충분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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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28일이니까 반납일인 31일까지는 나흘도 채 안 남았잖아?'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완독한 책은 1권...
나머지는 깨작거리며 중간 정도까지 읽다가 귀찮아서 내팽개쳐 둔 그대로였다.
책 읽는 습관이나 속도에 문제라도 있는 건가 싶었다.
'보자 보자. 반납 전까지 그래도 3권은 가능하겠지?'
잘하면 가능할 거 같긴 한데 문제는 집중력이다. 아무래도 독서라는 것 자체가 한번 빠져들어서 읽기까지 생각보다 귀찮은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니까. 일단 종이책의 경우엔 두께가 상당할 경우 손목에 부담까지 가서 오래 읽지 못할 때도 있다.
'일단은 읽을 수 있을 만큼만 읽자.'
책을 빌린 기준은 순전히 욕심에서 비롯됐다.
'이 책을 읽는다면 아마도 부족한 능력이 향상되겠지?'
'평소 궁금하던 주제였는데 마침맞게 딱 맞는 구성으로 되어 있네. 잘됐어.'
'이것도 읽고 싶고, 저 책도 읽고 싶은데... 다 빌려!'
게다가 대여 기간도 연장기간을 포함해 3주라니 꽤 길지 아니한가.
백수인 내게는 크게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구정연휴 기간도 꽤 기니까 이 시간을 활용하자.
-하지만 안 읽었죠?
"......"
-할 말 없죠?
"......"
할 말은 없지만 말줄임표로 분량이나 늘려보련다.
'다음부터는 읽을 수 있을 만큼만 빌리자고.'
차라리 모자라게 빌리는 것보다 못하지 않나. 이토록 욕심은 넘쳐나는데 그릇의 크기엔 한계가 존재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평소에 책을 안 읽다가 서점에라도 가는 날엔 왜 그리 욕심나는 책이 많던지. 사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서 주머니 사정이 걱정될 정도였다. (물론 사지는 않았다.)
책만 보면 참 욕심이 생긴다. 이럴 때마다 지식욕도 소유욕의 종류가 아닌가 싶다. 마치 널려 있는 지식을 아무렇게나 내 머릿속에 집어넣기만 해도 유식해지면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난관을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만 같은 환상이 떠오른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 책이라는 판타지는 이런 형태와 유사하다.
읽지는 않더라도 가지고는 싶은 마음에 기반한다. 책장 어딘가에 실물로 된 책을 가지고만 있어도 든든해지는 느낌. 나는 그 느낌을 너무나도 애정한다.
문득 예전 회사 복지 중 하나가 떠오른다.
[업무와 관련된 도서&강의 무제한 구매]
눈이 반짝거렸고 설렘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직 아무 책도 사지 않았고, 어떤 강의도 듣지 않았지만 복지를 잘만 이용하면 세계 최고(는 무리수고...)가 아닌 국내 최고(도 아닌)인 인재가 근무하는 회사에서 일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물론 결과는 보다시피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결말처럼 백수 엔딩.
당시 책을 참 많이 구매하긴 했었다. 양심은 있어서 나름의 원칙으로 달에 10만 원을 넘기지 말자라는 원칙을 세워서 소비했다. 부끄럽지만 그때 구매했던 책 중에 40% 정도만 완독 했던 거 같다. 나머지는 그저 소유하고 관조하는 용도로 그쳤다.
'이 얼마나 낭비스런 짓인가.'
물론 100중에 40%라도 읽었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매번 이런 식으로 비용 소모를 해가는 건 확실히 낭비가 맞다. 당시엔 아니라고 우겼지만 더 이상 부정을 못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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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지금도 그때의 습성이 남아 있는 게 분명하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앞뒤 재지 않고 책을 사던 모습에서 이제는 발품을 팔며 빌리는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것?
"잘하고 있어 우리 남편! 계속 돈 쓰지 말고 빌려서 보도록 해."
아내는 흐뭇해했다. 그리고 여전히 난 빌린 책의 40-50% 수준의 책을 읽는 중이다.
읽는 것만으로도 어딘가 싶지만 아쉬움이 쉽게 가시지가 않는다.
"자, 잠깐만. 그렇다면 내겐 6:4의 법칙이 통하는 게 아닐까?"
또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려는 거냐며 불안한 시선을 보낼 독자가 떠올랐지만 가볍게 무시하고 의견을 써보자면.
진짜로 읽고 싶은 책이 있다면 밑밥처럼 깔아 둘 안 읽을 책도 추가로 빌리거나 혹은 사면되는 게 아닐까라는 얘기로 정리되겠다. (읽을 책이 4에 해당합니다…)
전자의 경우라면 아내의 호응이 따를 것이요, 후자의 경우처럼 소비가 발생한다면... 그건 내 신변을 장담 못하게 되겠지.
"오빠 멍멍이 소리도 참 정성스럽게 쓴다. 그쯤하고 밥이나 차려. 오늘 점심은 찜닭이 먹고 싶다."
"멍멍! 아니지. 네넵."
황급히 점심 준비를 해야 하는 관계로 빠르게 정리를 해보겠다.
오늘 글의 쓴 목적!
'4일 밖에 안 남은 도서 반납 기한 하지만 아직 읽은 책이 한 권 뿐인 나를 합리화하고 싶었어.'라고 정리되겠다.
역시 핑계와 이유는 한 끗 차이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