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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터널 증후군 때문이라고.

215 걸음

by 고성프리맨

갑자기 물욕이 생기기 시작했다.

최근에 하나 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 더 들이고 싶은 이 마음을 어쩌면 좋으려나.


본론부터 얘기하자면 그 물건은 바로 Keyboard다.


?


일반적인 반응은 대부분 물음표에 가까웠다. 물론 예전에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었다면 얘기는 좀 달랐을 거다.


"아, 그거 제가 써봐서 아는데 그거보다는 말이죠오."

"하아 뭘 모르네. 그거 말고 이걸 써보라고."

"에이 나 같으면 거기에 추가금 보태서 이거 산다!"


라며 한 마디씩 말을 보탰을 것임이 분명하다.


이토록 인간은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 내게서 샘솟는 키보드에 대한 소유욕 또한 과거의 습성이 남은 까닭이리라.




저작권과 무관한 키보드 이미지를 구해보려 했는데 생각보다 구하기가 힘들어 판매링크를 첨부했다.

혹시 #광고 아닐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실 분이 있다면 걱정 마시길.


"그런 급이 안 돼요... ㅎ"


https://smartstore.naver.com/mmtoy/products/8628265523?nl-query=%EB%A6%AC%EC%96%BC%ED%8F%AC%EC%8A%A4+%ED%82%A4%EB%B3%B4%EB%93%9C&nl-ts-pid=iH1XBlqo1aVssLCKIs0ssssstUG-007921&NaPm=ct%3Dm6lh6xrs%7Cci%3D4a288ba38d016f21722f710d3acf2467d98419b4%7Ctr%3Dsls%7Csn%3D1257379%7Chk%3D52c8b32aa7d79be446e1ba95133830d86b3fde5b


판매가격은 흐음... 40만 원대.


"그래 뭐 그럴 수 있지."

"미쳤어? 절대 못 사. 생각도 하지 마라?"

"아니 당장 살 생각도 없어."

"언젠가는 있다는 거잖아?"

"아니 뭐... 백수 생활이 청산된다면 기념으로라도?"


사실 키보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브랜드인 리얼포스.

성능은 모르겠지만(왜냐하면 쳐본 적이 없으니까) 풍문으로는 많이 접했다.

예전 동료 중 몇 명은 실제로 저 키보드를 사용했다.


"어때요? 개발이 막 술술 되나요?"

"와 당연한 걸 물어보시네? 이거 지금 키보드한테 실례되는 질문인 거 아시죠?"

"엥?"


당시만 해도 ChatGPT와 같은 AI 서비스도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이거 손가락만 올리고 머릿속으로 '어떻게 짜야할까요?'라고 물어보면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이면서 최적의 루트로 코딩이 완성돼요."


어디까지나 농담이 섞인 얘기이니 절대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 것.


그래도 진심으로 한 번쯤 소유하고 싶기는 했다. 나와는 무관하리라 생각했던 터널증후군을 비롯해 손가락 마디마디가 쑤시는 고통을 조금씩 느끼는 상태였던 터라 손목과 손가락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물건에 대한 관심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과거를 팔아봐라. 내가 허락하나."


아내의 고집은 완강한 편이다. 어디 사은품처럼 껴주는 키보드로만 손가락을 타닥거려 본 일반인의 입장에서 감히 나의 세계를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겠지. 충분히 이해한다.


"과거 팔이 하려는 게 아니라, 내가 키보드를 많이 치잖아 그렇지?"

"치기야 많이 치지. 돈이 안 돼서 그렇지."

"......"

"아니 솔직히 얼마 전에 손목에 부담 덜 가는 키보드 하나 샀잖아. 그때도 뭐라 뭐라 이유만 잔뜩 얘기하지 않았어? 그런데 또 사겠다고?"

"원래 키보드란 게 그런 거야. 어떤 날은 쫀득거리는 타건감을 느끼고 싶고, 마음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날은 부러뜨리는 느낌의 타건감으로 달래고, 심심한 오늘 같은 날엔 또각 거리는 소리를 음악 삼아 치는 맛이 있달까?"


참고로 나는 노트북에 달려 있는 기본 키보드의 촉감도 좋아하는 편이다. 물론 오래 치게 되면 손가락이 아프긴 하지만 나름의 맛이 있다.


갈수록 어깨와 손목과 손가락을 비롯해 쑤시고 결리는 부분이 많아지는데 그럴 때마다 '조금 더 좋은 키보드를 썼다면 어땠을까?'에 대한 아쉬움이 생긴다.


어차피 아내는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쓰는 이 글은 또 하나의 다짐이기도 하다.


"결국 용서가 허락보다 쉬운 거 아이겠슴니까?"


어라? 찾아보니 영어 표현도 있었네? 이거야말로 동서양의 합치로군.


"It's better to ask for forgiveness than permission."


한편 아내는 부엌에서 이혼숙려캠프라는 프로그램을 한창 시청 중이다.

이 글을 쓰는 순간도 손가락이 이상할 정도로 덜덜 떨린다.

그래도 뭐 다짐에 대해 쓰는 것 정도는 괜찮은 거 아닌가.

지금 당장 사겠다는 게 아니잖아?


언젠가는 꼭 먹고 말거야 라고 외치던 치토스의 캐릭터(체스터)가 생각나는 오늘이다.

당연하게도 나는 체스터처럼 후회로 점철된 삶을 살아갈 생각은 없으니, 분명 꿈은 이뤄질 것이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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