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인 1폰의 시대

219 걸음

by 고성프리맨

우리 가족은 2월 4일부로 1인 1폰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드디어 그토록 염원하던 둘째의 소원이 이뤄진 것이다.


"아싸. 드디어 나에게도 폰이 생겼다는 것이어요. 너무나도 행복하다는 것이어요."


'녀석. 그렇게 좋니?'


"어...? 그런데 왜 전화가 안 되지? 엄마? 아빠? 카톡도 안 되는데요? 맛이 갔다는 것이어요."

"얘야 맛이 간 게 아니란다. 개통을 하지 않아서 그렇다."

"에에? 개통해 달라는 것이어요!"


폰을 쓰려면 유심도 사고(eSIM이 지원되지 않는 단말기인 관계로) 통신사를 정해 요금제를 정해야 한다. 드디어 막내도 평생이 될지 아닐지 모를 구독지옥에 빠져야 되는 순간이렸다.


"일단 와이파이로 쓰고 있어 봐."


불만이 터져 나오기 전에 몇 가지 필수 앱부터 설치해 줬다.


[로블록스] [마인크래프트] [무한의 계단] [브롤스타즈] [...]


설치한 앱의 공통점을 찾으시오.


-게, 게임?


맞다. 막내는 휴대전화기를 게임기로 사용하는 탓에 딱히 전화가 되지 않는 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다는 것이어요. 학원 갔다가 혼자라도 집에 올 때면 아빠가 집에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야 해서 전화 기능은 꼭 필요하다는 것이어요!"

"그랬니?"


하지만 너무나도 해맑게 웃으며 게임을 즐기는 네 모습에 진정성이 엿보이지 않는 건 아비인 나의 기분 탓인 거니?




첫째는 SKT의 가장 저가 요금제로 개통을 시켜줬다. 이미 SKT로 온 가족 할인을 이용 중이던 터라 한 명이 더 들어오는 건 대환영인 상태였다.


"요즘 통신사 멤버십 서비스도 별로고, 알뜰폰이 싸고 데이터도 넉넉하고 좋답니다?"


주변에선 진작부터 알뜰폰을 추천하는 사람도 많았는데, 고지식한 고집을 부리는 나로선 온 가족 할인이라는 마케팅에 현혹된 상태였다.


이게 다 학창 시절 프리미엄 브랜드라며 SKY폰과 SKT 멤버십 서비스의 위대함에 세뇌된 결과물이다.


스카이폰.jpeg SK + KYOSERA = SKY


고딩시절 친구 녀석 중 한 명이 그렇게 뽐내던 스카이폰이 어찌나 부럽던지.


여하튼 이런저런 사정으로 나는 통신사를 오랫동안 유지 중이다. 돈이 될만한 곳으로는 한 우물을 절대 파지 않지만, 돈을 쓰는 쪽으로는 한 우물을 우직하게 파고 있다.


"우리 둘째는 알뜰폰으로 한번 해볼래? 봐바. 만 원도 안 하는데 데이터도 어마어마하잖아?"

"에이. 뭐 얼마나 차이가 나겠다고-"


제공되는 서비스 내용을 보는 순간 내 눈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이 가격에 이만큼?"

"응. 그렇다는데. 어때?"

"Why not?"


그런 연유로 둘째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알뜰폰 통신사를 이용하는 시범 케이스로 당첨되었다.




"아니 그런데 2학년이 되는 주제에 벌써부터 폰이 필요하다고?"


백수인 아빠가 집에서 날마다 대기하며 등하교를 책임지는 중인데 뭣이 부족하다고. 그냥 사치재인 거 아니야?


"아빠... 우리 반애들 중에서 나만 빼고 휴대전화는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이어요. 저만 이제야 가지게 되었다는 게 슬프면서도 좋다는 것이어요. 저에게서 제발 부디 폰이 없는 삶으로 돌아가게끔 만들지 말도록 할 것이어요."

"그런데 너 말투가 왜 그러니?"

"최대한 공손해지고 싶다는 것이어요."


평소에 그토록 짜게 굴던 아내마저 둘째의 집요함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 역시 부모 이기는 자녀 없다던가. 아 반대던가? 최소한 난 자녀에게 지고 싶은 생각이 아직 없다. 이상할 정도로 자녀 앞에선 승부욕이 발동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아빠상이리라.


우여곡절 끝에 폰은 소위 리퍼폰으로 분류되는 새것 같은 중고폰을 구매했다. 그것도 무려 특S급‼️

여기에 본인이 원하는 주술회전 속 고죠 사토루가 광안을 발하는 케이스 하나만 곁들이면 신품이 부럽지 않다.


사토루.png 사토루 센세... 그저 빛.


결국 이렇게 우리 가족도 모든 구성원이 1인 1폰을 가지게 되어버렸다.

둘째도 더 이상 눈치와 핍박 속에 형 폰을 훔쳐가며 카카오톡으로 친구들과 소통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대신 여러모로 미리부터 주의를 주기는 해야겠지.


"꼭 와이파이가 될 때만 영상 시청하도록! 그렇지 않으면 폰은 다시 사라질 거야."

"걱정하지 마시라는 것이어요. 제가 그렇게 아둔한 2학년은 아니라는 것이어요."


잘한 일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폰을 사서 건넸으니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루비콘 강을 건너기에 앞선 카이사르와 내가 다를 바가 무엇이냐?

나 또한 한 가족의 우두머리.


"누구 맘대로 우두머리래? 엄연히 가장은 나라고!"


그렇다면 부우두머리...


그래도 좋은 점도 있긴 한 거 같다. 이제 마지막으로 개통을 시키고 나면 비로소 둘째와 나는 물리적 거리의 한계를 뛰어넘어 소통이 가능할 것이다. 어쨌거나 나갈 돈이 늘었으니 더 벌긴 해야겠구나.


"알겠지 여보? 열심히 일해주세요 가장 님 :D"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