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 걸음
소화기 계통이 약한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육식을 즐겨해 온 탓인가?
아니면 유전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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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에 주식은 고기였다. 그중에서도 콕 집어보면 삼겹살을 압도적으로 많이 먹었었다.
이게 다 고기와 관련된 반찬이 하나라도 없으면 밥을 챙겨 먹지 않던 아버지 덕이다.
하다못해 순두부찌개를 끓일 때도 간 고기가 수북이 들어가야만 만족하셨다.
그 덕에 나 또한 일어나자마자 냉삼을 구워서 고추장 또는 쌈장과 소금을 잔뜩 찍은 고기모닝으로 산뜻하게 하루를 시작했다.
솔직히... 맛있었다.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억지로 먹는 음식은 분명 아니었다. 몸이 원했고 혀도 원했다.
운동과 채소는 멀리하고 고기만 가까이 한 식성 덕에 결국 내 위는 더부룩함을 유지해야만 하게 됐다.
'한마디로 주인 잘 못 만난 거지 뭐.'
지금은 식성이 많이 바뀌었다.
아내와 첫째가 고기를 즐겨 먹지 않기도 하고, 일단은 내 속에서 소화를 잘 못 시켜서다. 어쩌다가 한번 고기를 맛볼 때면 머릿속에 남아있던 과거의 식욕이 되살아나 폭식을 해버릴 때가 있지만 그때마다 심한 후유증을 겪었다.
머리는 기억하나 몸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
이제는 육식을 어쩔 수없이 줄여야만 하는 처지인 것이다.
완전히 끊어내지는 못하겠다. 아예 육식을 포기한 채 살아가기엔 세상에 너무나도 많은 맛있는 고기반찬이 존재하는 까닭이다. 그러니 적당히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맛있는 부위를 먹고 끝내는 게 오히려 좋다.
그런 면에서 요즘 주로 즐겨 먹는 음식을 한번 써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1. 그릭요거트
2. 아몬드
3. 닭가슴살
4. 면요리
5. 두부
딱히 특별해 보이는 음식은 없네. 그나마 특이사항이 있다면 감성을 더해 그리스라는 나라명이 붙은 요거트 정도?
몸에 좋은지 나쁜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영양정보를 살펴보면 단백질의 함유량이 18-20% 정도 함유돼 있긴 하다. 따로 프로틴을 챙겨 먹지 않는 나로선 꽤나 좋은 단백질 섭취원이기도 하다.
일단 첫 만남은 별로였다.
너무 꾸덕하고 마치 치즈를 덩어리째 뻑뻑하게 먹는 질감이 영... 게다가 왜 이렇게 느끼해?
친해지기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꾸만 여기저기서 그릭 요거트에 대한 찬사가 쏟아지는 게 아닌가?
평소 팔랑귀를 소유 중인 화자는 그만 흔들려 버릴 수밖에.
"그, 그래? 그리스 요거트가 그렇게나 몸에 좋다고?"
무병장수. 아니 내 꿈은 정확하게 무병에 가깝다. 장수는 흠... 잘 모르겠다. 그래도 애들이 커서 잘 사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은 욕심 정도는 있다.
처음에 접했던 그릭 요거트는 지인 집에 초대받았을 때 디저트로 접했다.
첫인상은 위에 언급한 대로였고, 뒤늦게 요거트의 꾸덕함이 입에 맴도는 게 아닌가.
그 뒤로 마트에 가서 대충 아무렇게나 이름 붙여진 그릭 요거트를 사 먹어 봤는데 맛이 전혀 달랐다.
"엥??? 이게 뭐지?"
만족이 전혀 되지 않는다. 결국 컬리에서 비싼 돈을 주고 이것저것 다양한 그릭 요거트를 맛보기에 이르렀다.
나는 광고 따윈 받지(정확하게는 못 받고 있으니) 않으니까 과감히 브랜드명도 노출시키겠다.
"아유 포장도 어쩜 이렇게 이쁜지."
아직 먹어보지 못한 몇 개의 브랜드가 더 있지만 기회가 되면 꼭 사 먹어볼 예정이다.
개인적인 순위를 매겨보자면 흠.
[그릭데이 > 코우카키스 > 룩트 > 요즘]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혹시라도 내게 그릭 요거트의 신세계를 일깨워 줄 정보를 아시는 분이 있다면 언제든 정보를 알려주시면 좋겠다.
지금도 냉장고에는 그릭데이 800g이 영롱한 빛을 발하며 상석에 위치해 있다.
"아... 입만 고급이여. 짜증 나게 내 일당 털어서 사주긴 사줬다만."
"고맙소."
물론 아내의 비위를 맞춰가며 겨우 얻어낸 소중한 음식이라 더더욱 애지중지하며 먹는다.
다음으로 아몬드.
이건 뭐 딱히 선호하는 브랜드 따윈 없다. 그냥 볶은 아몬드 한팩 사주면 아무거나 잘 먹는다. 가끔 탄맛이 강하거나 큼큼한 냄새가 나는 제품은 입에 맞지 않는 관계로 버린다.
"웃기시네. 그거 다 내입으로 들어오잖아! 니가 안 먹으니까!"
그랬구나. 내가 버린 아몬드가 가장 님의 입안으로 들어가 버리게 되었구나. 돈도 펑펑 쓰고 입맛도 고급이라 조금만 입에 맞지 않으면 버리려 하는 내가 죄인이었구나.
그릭요거트에 너무 많은 분량을 쓴 탓에 빠르게 진행하자.
닭가슴살은 요즘 팩포장된 거 솔직히 너무 비싸다. 물론 다양한 취향에 맞춰 여러 가지 맛을 시도하고 있긴 하나 나는 순전히 조미 안된 닭가슴살을 원하는 관계로 냉동육을 사버린다.
"그거 다 내가 알아보고 구매하는 거잖아. 안 그러면 우리 식비 장난 아니거든?"
역시나 이 또한 아내가 지분을 가지고 있구나. 알뜰살뜰한 살림의 여왕 되시겠다.
보통 많은 수의 사람들이 온전히 뼈가 붙어 있는 닭을 선호하는데 반해, 나는 퍽퍽해도 뼈 없는 가슴살이 너무나도 좋다. 소금과 후추 간만 해서 구워도 맛있고, 찜닭으로 해 먹어도 맛있고 여기저기 안 어울리는 데가 없는 만능 재료랄까.
면은 흠... 딱히 건강식은 아닌데 순전히 개취다. 그냥 맛있어서 먹는다. 이상 끝.
마지막으로 두부‼️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야말로 대지의 축복. 고기가 없어도 너만 있다면 나는 괜찮단다. 물론 매일 먹는다면 얘기가 달라지긴 하겠지?
-오늘 내가 뭘 본거지?
그래도 여기까지 읽어주셨네요 고객님. 아니 독자님. 감사합니다.
이제는 그야말로 별 영양가 없는 음식 얘기까지 쓰고 있는데 이렇게 읽어주시다니 황송할 따름이옵니다.
그런데 다른 건 몰라도 정말 그릭 요거트는 최고다.
나중에 입맛이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저녁에 무겁게 먹는 대신 그릭 요거트와 함께한 다음날엔 정말로 몸이 가볍다.
비코그린 같은 거 없이도 가볍게 변비에게 비켜!라고 외칠 수도 있을 정도다.
이 글 다 쓰면 어서 빨리 그, 그릭... 요거트는 저녁에 먹도록 하고 점심은 헤비 하게 먹어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