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 걸음
어젯밤엔 오랜만에 혼자서 영화감상을 했다.
장거리 운전의 후유증 때문인지 아내와 아이들은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아니 운전은 내가 했는데?)
그래도 덕분에 호흡이 긴 영화를 볼 수 있었으니 꽤 괜찮지 않나.
유부남인 내가 오롯이 혼자서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도 시간도 자유롭지 않은 탓에 지금 같은 순간은 달콤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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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보이로 자라온 내게 노인공경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영화가 되겠군.'
공교롭게도 영화는 내 생각과는 결을 달리하고 있었다.
오히려 노인 공격에 더 어울리는 게 아닌가?
사실은 그래서 좋았지만 말이다.
-아니 이제야 이 영화를 봤어요?
"예!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원래 트렌드에 크게 집착하는 편은 아닌지라, 명성이 자자한 영화도 한-참이 지나서야 보곤 하는데, 어쨌든 본 게 중요한 거 아니겠나?
속도는 느릴지언정 [찜하기]에 넣어 놓은 상품은 언젠가 꼭 사거나 즐기긴 한단 말이다.
일단 재앙처럼 등장한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은 다소곳한 단발머리로도 충분히 생사를 조여 오는 두려움을 잘 표현하더라.
만약 내가 그의 표적이 되었다면... 빨리 죽여줍쇼 하고 진작에 생의 의지를 버렸을지도 모를 일.
러닝타임은 적당했다. 아니 요즘 시청하는 숏폼에 비해서는 다소 길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다행스러운 점은 아직까진 롱폼도 잘 볼 수 있는 상태라는 것이랄까?
여하튼 언제나 그렇듯 내 글 속에 등장하는 소재로서의 작품에 대한 스토리는 크게 언급해 볼 생각이 없다.
'평론가도 아니고, 훨씬 해석을 잘하는 사람도 많은 마당에, 굳이 내가?'
솔직히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한참 멍해졌다.
"아니 이렇게 끝이야? 이게 맞아?"
자꾸 청자에게 답을 알아서 정하라는 열린 결말의 형태를 혐오하는 편이라(죽어도 내가 이해력이 나쁘다곤 인정하기 싫다) 짜증이 살짝 날 뻔도 했다.
"어디 나처럼 영화 보고 나서 화가 난 사람들 좀 찾아볼까나?"
하지만 그런 공감대를 얻으려면 영화가 개봉하던 시기에 맞춰서 찾았어야 하려나. 이미 영화가 개봉한 지도 20년 가까이 돼가는 마당에 실시간으로 나와 감정을 교류할 수 있는 이가 있을까?
아니나 다를까. 내 눈이 삐었었나 보다.
이 영화에 대한 극찬이 뒤따르고 있었다.
"어?"
나는 놀라움의 외마디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어찌하여 난 이리도 이해력과 상상력이 부족하단 말인가.
영화를 단순히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1차원적인 내 모습과는 달리, 다른 사람은 거국적인 시선으로 해석을 해놓았다.
"...... 그럴싸한데?"
다른 사람의 해석을 몇 편 읽고 나자 비로소 마음속에 응어리졌던 의문이 해소되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역시 내가 이래서 평면적인 글밖엔 못쓰나 보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 보고 싶은 생각은 없다.
혼자서 밤에 보다 보니 몇몇 장면에선 무서워서 잠깐씩 스페이스바를 눌러 멈췄다가 심호흡 후 보는 걸 몇 번씩 반복했다.
'무엇보다 뒷맛이 씁쓸해.'
잘 만들어지고 기억에 남는 영화였지만 두 번 볼 정도로 나의 취미가 고약하지는 않은 관계로(이제는 많이 약해져서 담력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대사가 있다면요?
음... 장면도 있고 대사도 있다.
일단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미국 특유의 서부극 분위기?
바람에 모래먼지가 휘날리고, 척박하고 황량해 보이는 황무지가 등장하는 씬. 그리고 그곳을 달리는 투박한 클래식 카와 선글라스 낀 주인공의 모습.
미국인은 아닌 관계로 100% 정확히 이해할 수 없는 모습과 풍경이지만 나름의 로망이 있다.
다음으로 대사가 있는데...
손해 본 거 되돌리려다간 더 새 나가게 돼있어.
-극 중 앨리스 아저씨가 내뱉은 말
지나가듯 들려온 대사였는데 듣는 순간 뇌리에 박혔다.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어서였을까?
가끔 고속도로의 1차선에서 정속주행 또는 기준 이하의 속도로 운전하는 차량을 발견했을 때 보여주기 식으로 2차선으로 이동 후 따돌리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심지어 난 여전히 주차에 쩔쩔매는 초보인데 내가 감히 이래도 되는 건가. 하지만 매번 이성의 끈을 놓은 채 앞질러가며 "봤지?"라며 마치 정의의 사도라도 된 마냥 행동하던 모습이 생각나는 이유는 뭘까.
물론 이외에도 손해를 봤다고 생각해 되돌리려 했던 무수히 많은 과거 속 내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간 건 우연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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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나도 이젠 20대가 아니다. 30대를 거쳐서 40대가 되었다.
백세시대에 발맞춰 감히 노인이라 불릴 나이 또한 아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행동은 노인의 사고에 갇혀 있는 건 아닌지.
그렇다면 이제라도 틀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더 이상 노인을 위한 나라는 진짜로 없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