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metacognition

재탕 삼탕을 하더라도 쓰는 이유

인지의 시간 17

by 고성프리맨

글을 쓰다 보면 고민되는 점이 늘 생긴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바로 소재에 관한 이야기다.


'이거 전에 썼던 내용인데.'


일명 재탕지옥. 술에 취해서 했던 말을 반복하는 것과는 결이 다르지만 읽는 이의 입장에서 느껴질 식상함에는 뭐라 해줘야 할까.


'써야 될까, 말아야 될까.'


고민은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다닌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와도 같은 것일까. 해가 비치지 않는 밤이 되지 않고서는 끝나지 않을 고민이다. 내게 있어 해가 비치지 않는 상황은 글을 쓰지 않는 것과 동일선상에 놓여 있다.


'쓰자.'


한참을 고민하고 다시 고민해 봤지만 뾰족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888964?cds=news_edit


길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멈추지 말고 그냥 한 발 더 내디디십시오. 그냥 한 발을 더 내딛는 것만이 여러분을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김우진 - 양궁선수


우연히 마주친 기사. 메달리스트인 그가 하는 말엔 힘이 실려 있었다. 만약 같은 말을 내가 했더라면 당연히 들어줄 리 없겠지.


어찌 되었건 위로가 되는 말이면서 동시에 아픈 말이었다.

그가 한 노력에 비해 내 노력의 크기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말한 것처럼 한 발 내딛기를 하려 한다.

내딛고 내딛다 보면 어딘가에는 도착할 것임을 믿는다.

비록 그곳이 내가 꿈꾸던 그림이 아닐지라도.




다른 이의 창작에 가혹한 편이었다.


"뭐야 별로네. 어디선가 봤던 듯."


책장을 덮거나, 콘텐츠를 종료하던 과거의 내가 떠오른다. 나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이 본능적으로 느끼고 행동할 모습이기에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막상 창작을 하면서는 다른 이의 작품에 함부로 말을 하지 못하게 됐다. 왠지 그 모습이 바로 내 모습과 같게 느껴져서는 아닐까. 그는 나보다도 훨씬 질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내었음에도 불구하고 받은 평가가 가혹했다. 그렇다면 나는...?


'할 말이 없네.'


문득 방만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제대로 살아왔다면 제대로 된 이야기를 써낼 수 있지는 않았을까?'


이래서 잘 살아야 된다고 어른들이 그토록 입에 침이 마르도록 얘기했던 거려나.


40대가 되어서야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도 참 우스운 일이지만, 지금에라도 생각해 볼 수 있게 된 점이 마냥 나쁘지 만은 않다.


50대, 60대, 혹시나 건강이 허락돼서 7-80대 이상에 같은 생각을 했더라면... 지금보다도 더 후회하진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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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옆길로 새자면 내가 기대하는 수명의 한계선은 60대 이상까지 사는 것이다.


"뭔 소리야. 요즘 60대가 옛날 60대도 아니고! 그러니까 운동도 좀 하고 식단관리도 하라고 인간아!"


아내는 내가 이런 소리를 할 때마다 어이없어한다. 어디 생과 사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던가. 주어진 내에서 감사히 여기며 잘 지내는 수밖에 없지 뭐.


이유는 있다. 아버지가 60이 채 못되게 살다 가신 영향이 크다.


'아빠보다는 좀 더 살다 가고 싶은데. 그래도 수명 유전자가 좀 더 나아졌다는 것쯤은 증명해보고 싶어.'


가까웠던 사람의 부재만큼 생각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은 없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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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타이핑을 할 때 손목이나 어깨의 결림이 있긴 해도 아직까진 칠만하다. 혹시라도 건강 관리를 잘 못해서 5-60대에 지금처럼 글쓰기를 시작했더라면 좀 더 불편한 부분이 많았으리라. 그에 비하면 지금은 아주 좋은 상태지.


'암, 그렇고 말고.'


처음 접하는 어드벤처 게임을 할 때 언제나 도달하지 못해 안개처럼 가려진(혹은 지워져 있는) 지도상의 장소를 궁금해했다.


비록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볼 수는 없지만, 고레벨의 몬스터들이 우글거릴, 혹은 지형이 험난할 그곳에 언젠가는 도달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플레이를 했다.


결과가 어찌 되었냐고?


결국 지도의 전부까지는 아니지만 궁금하던 많은 지역에 분신과도 같은 나의 캐릭터가 발도장을 쾅! 찍었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물론 게임이라는 특수한 상황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현실은 게임과는 많이 다르다.


그럼에도 여전히 난 현실세계를 게임하던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보려고 노력 중이다.


도달하지 못할지도 모를 낯선 세계, 대화가 통할지 모를 낯선 이와의 만남, 새로운 환경과 문화, 그리고 내게 주어질 합격 목걸이(?).


40대인 내가 철 없이 백수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이유가 나왔다.

바로 대책 없는 낙관론에 절여진 뇌를 보유한 덕이다.

결국 내 안의 낙관론은 소재를 재탕하더라도, 삶이 다소 피폐하게 느껴지더라도 다시금 쓰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나만 고생이다, 나만 고생이야!"


미안하지만 그 고생 조금 더 해줘야겠어.

미안해 당신.

마지막엔 언제나 그렇듯 가장 님께 대한 충성을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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