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에 메시지가 하나 왔다.
’이사벨라? 웬일이지..’
저녁때 술자리 가지며 잠깐 얘기 나눠본 게 전부였던 사람인데.
’전화번호는 또 언제 저장했지? 기억도 안 나네. 술이 웬수야.’
호기심이 생겨 메시지를 열어서 확인한다.
정희 씨 안녕? 문자 보고 깜짝 놀랐죠? 이사벨라예요. 그날 술자리에선 우리 되게 친했는데. 나 궁금한 게 있어요. 혹시 인호 씨랑 사귀는 거 아니죠? 음.. 내가 왜 물어보는지 궁금하면 전화해요.
’뭐야. 안 사귑니다만? 아주 남일에 관심만 많아서.’
괜히 기분이 안 좋아진다. 집에 도착해 개운하지 않은 오늘 일을 잊으려는 듯 정희는 샤워부터 한다. 샤워를 끝마치고 나와 젖은 머리를 드라이기로 말리는데 갑자기 이사벨라의 문자가 생각난다. 몇 번이나 고개를 저어가며 ‘이건 아니야!’라고 외치는 마음과 달리 어느새 손이 전화를 걸고 있었다.
”정희 씨 안녕! 전화할 줄 몰랐는데. 내 문자가 좀 궁금증을 유발했죠? 하하”
”안녕하세요 이사벨라. 웬일이에요. 아 그리고 뭐 좀 그러네요. 저 인호 씨하고 사귀는 사이도 아니에요.”
”그날 술자리 때 둘이 눈빛 교환 장난 아니던데. 그래서 난 또 걱정이 되었지 뭐예요. 내가 원래 좀 오지랖이 넓어서.”
’정말 오지랖 넓네요!’
”근데 인호 씨랑 사귀면 안 돼요.”
”왜요?”
”로살리 알죠?”
”얼굴은 잘 기억이 안 나요. 하지만 알 것 같긴 해요.”
”정희 씨 전에 인호 씨가 로살리 하고도 몰래 만났었더라고요.”
”네?”
”나도 얼마 전에 알았어요. 요즘 로살리도 댄스 동호회 안 나온 지 좀 됐거든요. 그래도 내가 친하게 지냈어서 한번 전화통화를 했는데 훌쩍이는 거예요. 깜짝 놀라서 무슨 일인지 물어봤죠. 그랬더니 잠깐 만나자는 거예요.”
인호 씨가 로살리를 만났었다는 얘기를 듣자 맥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근데 뭐 만날 수도 있는 거자나. 내가 여자친구도 아닌데.’
”만나서 무슨 얘기 좀 나눴어요?”
”뭐야 정희 씨 관심 없는 척하더니.”
”아 궁금하니까요 그냥.”
”알겠어요. 로살리가 인호 씨 만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처음 접근 방법 그리고 헤어지게 된 결정적 이유. 사실 헤어졌다기보다는 만날 수가 없는 남자였더라고요.”
”설마..”
”정희 씨의 설마가 같은 걸진 모르겠는데. 인호 씨 유부남이래요. 나도 회원들도 아마 모르는 사실이었을 걸요. 어느 날인가 로살리가 몰래 이벤트 해주러 인호 씨 가게를 낮부터 찾아갔나 보더라고요. 근데 가게 안에 웬 여자랑 아이가 있더래요. 너무 해맑게 웃고 있고 낯선 여자랑은 손도 잡고 있는 데 당했구나 싶었대요.”
”하나 진짜. 인간 말종 새끼네. 로살리는 어떻게 했어요?”
”그러게요. 진짜 말종이죠. 로살리가 얼굴은 좀 세게 생겼는데 사실 맘이 여려요. 그 모습에 충격받아서 그냥 스스로 잠수 타 버린 거예요. 그래서 말했죠. 그 인간한테 가서 따져라. 그랬더니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거예요. 그리고 로살리는 사랑했던 마음은 간직하고 싶다는 얘기 하면서 울기만 하더라고요. 근데 문득 정희 씨가 떠오르더라고요. 인호 씨가 정희 씨한테 접근하는 방식이 왠지 로살리랑 비슷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하아.. 이해했어요. 욕도 아까운 인간이네요.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요 이사벨라. 고마워요.”
”정말 인호 씨랑 만나는 거 아니죠?”
”네. 그런 거 아니에요. 동호회에는 알려야 하지 않아요?”
”알리려고 했죠. 근데 로살리가 절대 그러지 말아 달랬어요. 그냥 본인이 바보 같아서 그런 거라며.”
”아주 순정파 납셨네요. 후. 내가 한 번 그 인간 찾아가 볼게요. 솔직히 말하면 호감은 있었는데 그 마저도 이젠 다 사라졌어요. 그러니까 로살리랑 난 다르다는 거 알겠죠?”
”그래요. 내가 너무 주책맞게. 근데 걱정하는 마음은 정말이니까.”
이사벨라와 전화를 끊고 나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나마 가지고 있던 호감도 전부 사라지며 애증으로 바뀌었다.
’내가 그렇게 쉬워 보였나..’
마흔 살의 여자는 우습게 봐도 되는 것인가? 나도 나지만 바보 같은 로살리도 어이없었다.
’그런 인간은 본때를 보여줘야 해. 내가 아주 발가벗겨서 민낯을 드러내 보이겠어.’
애써 침착하려 해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집에 있던 맥주를 한 캔 가져와 벌컥벌컥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