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금채취

283 걸음 - 금 캐게 해주세요 네?

by 고성프리맨

"아빠? 이번 주엔 사금채취 하러 가도 돼요?"

"사금채취??"

"네. 강가에 가서 채취해서 발견하면 팔아서 돈 벌려고요. 아, 기부해도 되려나?"

"......"


사금채취라면... 하천 같은 데서 넓적한 쟁반으로 바닥에서 모래를 퍼내서 그중에 반짝이는 뭔가를 찾는 그 행위를 말하는 거 아닌가?


"금, 금을 찾아보겠다는 얘기가 맞아?"

"예. 맞아요. 왜요? 무슨 문제 있어요? 돈 벌면 좋잖아요."

"......"


맞구나. 진짜로 금을 의미하는 거였구나.

.

.

.


우연한 계기로 집에 대출이 있음을 애들이 눈치챘다.

컴퓨터에 남아 있던 '메모'를 발견해서 혹은 우리 부부사이의 대화를 잠결에 들은 탓이려나.

몇 달 전 주말 점심때에, 큰애가 어두운 표정으로 다가오더니 결심한 듯 굳게 앙 다물었던 입을 뗐다.


"아빠."

"응 왜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아니요.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물어봐."

"그게, 혹시 우리 집에 빚이 많아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그만 사레들렸다.


"응?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지?"

"아니... 빚이 많아서 어떡해요? 우리 굶어 죽어요?"


너무 극단적인 거 아니니, 얘야?

그리고 아이의 얕은 한숨이 이어졌다.

이 말인즉슨, 가볍게 생각하고 꺼낸 얘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고 한참 머뭇거리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초등학생이 취직해서 돈 버는 건 불법이잖아요?"

"어? 그, 그렇지."

"돈은 어떻게 벌어야 해요?"


그걸 시간부자놀이 하고 있는 아빠한테 물어봐도, 아빠는 대답해 줄 수가 없단다.

그래도 아이의 걱정을 덜어줘야 빨리 이 대화에서 빠져나갈 수 있음은 분명하다.


"너무 걱정 마. 엄빠가 알아서 다 해결할게."

"... 네."


아이는 어두운 표정을 짓더니, 책상으로 이동했다.

.

.

.


"아빠, 수학자 되면 돈 많이 벌어요?"

"글쎄..."

"혹시 과학자는요? 사업해야 돈 벌죠?"

"... 어..."


끝난 줄 알았던 '돈 버는 방법'에 대한 질문이 다른 날이 되어서도 이어졌다.


"큰일이네요. 빨리 돈 벌어서 빚 갚아야 하는데. 아빠는 집에만 있잖아요."

"......"


정곡을 찔리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하필이면 그 대상이 내 아이일 줄이야.

나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다시 대답을 했다.


"걱정 말라니까. 어떻게든 다 해결할게."

"아빠는 늙어가고, 엄마만 일하는데 그걸로는 안되잖아요. 어떻게 해결이 돼요?"

"......"


말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아이는 또 다른 얘기를 꺼냈다.


"저 결심했어요. 과학자 될래요."


그래그래. 초등학생 땐 아빠도 '과학자'가 꿈이었던 적이 있어.


"그래. 대신 공부 많이 해야겠네."

"네 그렇죠. 그래서 말인데요. 어떻게 하면 과학고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찾아보니까 제가 관심 있어하는 우주항공에 관해 배우려면 카이스트를 가야 하는 거 같던데, 그러려면 과학고 들어가야 하는 거잖아요."

"... 어..."


많이 당황스러웠다. 아빠는 과학고는커녕 카이스트를 목표로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단 말이다.


'사실은 그래서 조언해 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ㅇㅇ가 원하는 대로 해봐도 돼. 해보다가 필요한 게 있으면 얘기하고."

"하지만 집에 돈이 없잖아요. 돈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큰일이다. 다시 또 '돈 얘기'로 화제가 바뀌기 시작했어!


"그래서 말인데요. 널찍한 쟁반하나만 사주실래요?"

"쟁반은 왜?"

"그걸로 사금채취하려고요."

"뭐, 뭐?"


순간 나는 잘못들은 줄 알았다.


"사금채취요."


내가 아는 사금채취는 영화 속에서 보던 하천에서 작업하던 그 모습이 전부인데, 그걸 해보고 싶다고 하는 건가 지금?

나는 알지도, 알아보려 하지도 않았던 사금채취의 이미지를 힘겹게 아이에게 설명하며 물었다.


"(설명생략) 이런 작업이 맞아?"

"네. 맞아요."

"갑자기 사금채취는 왜 하려고?"

"아빠도 참. 요즘 금값이 얼만 줄 아세요? 0.1g당 14,000원 정도 한단 말이에요."

"그으래...?"

"만약에 몇 kg만 발견한다 쳐봐요. 그럼 우리 돈걱정 안 해도 되잖아요. 그럼 저 하고 싶은 것도 하면서 살 수 있고요."

"......"


어쩌다가 우리 아이는 갑자기 '돈, 돈' 거리게 된 것인가.

하필이면 대출관련한 내용을 메모에 남겨놔 버려서 이 사달이 나다니.

생각지도 않았던 아이의 고민이 한순간에 몰아치듯 들어와서, 뇌가 정보량의 해석을 따라가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 하나하나 차근차근 정리해 보면...'


1. 빚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됨
2. 돈을 벌어야 위기 탈출이 될 거라고 생각
3. 돈이 될만한 직업(+흥미)을 찾다 보니 '과학자'가 제격이라 생각됨
4. 꿈을 이루기 위해선 공부를 잘해야 함
5. 공부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돈'은 꼭 필요함
6. 초등학생이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 돈을 벌기 위해선 '사금채취'가 딱


'어렵네.'


일단 내가 살아오면서 고민했던 일과 '접점'이란 게 없잖아.

그나마 접점이라면 '돈에 대한 걱정'이려나.

하지만 내가 딱히 아이에게, "우리 먹고살기가 너무너무 힘들단다."라는 뉘앙스의 얘기는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는데 왜 이런 걱정을 하게 된 걸까.

게다가 '과학고라니...', 스스로 공부지옥 속으로 뛰어들고 싶다는 얘기를 꺼낸다고?

꿈을 이루고 아니고를 떠나서, 아빠인 내가 쉽게 조언해 줄 수 있는 게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살짝 서글퍼졌다.

덮어 놓고, "걱정 마."라는 말로는 아이의 불안을 잠재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아빠가 약속할게."

"사금채취 허락해 주는 거요?"

"음,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가계부채 걱정해 주는 건 너무 고마운 일인데, 지금은 그런 거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아. 정말이야. 해결할 수 있어. 거짓말 아니고."

"엄마가 일해서요?"

"... 음. 아빠도 계획이란 걸 어느 정도 세우고 귀촌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 사회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 감당 못할 빚을 제1,2 금융권에서 함부로 빌려주진 않는다고."

"집에만 있으신데 어떻게 감당하시게요?"


'아, 아프다.'


"구체적인 방법은 조금씩 너한테 공유해 줄 테니까 앞으로 아빠가 해나가는 걸 봐줄래?"


무작정 덮기만 하려던 이전의 내 태도에서 조금 더 구체적인 답변을 해주니 아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마침내 고민을 끝낸 듯, 그가 입을 열었다.


"알겠어요. 대신에 사금채취는 하게 해주셔야 해요."

"(떫떠름했지만) 그래. 알았어. 대신 혼자 가는 건 안돼."

"네. 그리고 고민이 하나 또 있어요."

"(불안불안) 어떤 건데?"

"혹시 저 나중에 수능시험 망치면 어떡하죠?"

"어?"

"벌써부터 걱정돼요. 좋은 학교 가려면 수능시험을 잘 봐야 하잖아요. 시험 못 볼까 봐 무서워요."


'아직... 수능시험 치를 날이 멀지 않았니.'라고는 차마 말을 못 했다.

아이는 내 생각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스스로의 미래를 그리는 중이었다.


"괜찮아. 그래도 하나 약속할게."

"뭔데요? 시험 잘 치를 수 있는 방법이라도 아세요?"

"아니 아빠는 그런 건 모르겠어. 대신 네가 하고 싶다면 할 수 있게 도와줄게. 그게 어떤 거든."


아이는 잠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 말했다.


"그러려면 돈이 있어야 하잖아요."


'너어는 진짜...'


이 끝나지 않는 질문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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