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힐 듯 잡히지 않는
[주의] 작품의 특성상 잔인한 표현 또는 비속어가 있을 수 있을 수 있음을 감안하시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상황이 정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창훈이는 눈 한쪽을 다쳤는지 부여잡고 괴로워하고 있었고 홍심도 거친 숨을 쉬고 있었다. 내 쪽으로 시선이 이동하다 눈이 마주쳤다.
”승호님. 깨셨어요?”
”어떻게 된 거예요?”
놀라서 급하게 일어나 주변을 살피다 창훈이에게 다가갔다.
”창훈아 눈 다친 거야?”
”으.. 승호야 나 눈이 너무 아파.”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김시헌이 돌진해서 부딪치고 난 뒤부터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홍심도 체력을 많이 소모했는지 좀처럼 일어나지 못하고 바닥에 눕듯이 앉아 있다. 자세히 보니 입가에서 피를 토한 듯 선혈 자국도 보인다. 밖에서 시끄럽게 119 소리가 들려온다. 나도 모르게 소리에 깜짝 놀라 주변을 살폈다.
”승호님. 괜찮아요. 119에는 제가 연락했어요. 창훈이가 많이 다쳤네요. 제가 지금 다 설명하질 못하겠어요. 저 대신 창훈이를 좀 챙겨주세요.”
말을 마친 홍심은 그대로 풀썩 잠들듯 누워버렸다.
”으악!”
”승호님!”
김시헌의 돌진을 정면으로 맞은 승호는 튕겨나가 벽에 부딪치더니 기절했다.
”약해빠진 인간을 데려오다니 무슨 짓인가? 혹시 예전 중놈 같은 존재일까 싶어 먼저 죽여야겠다 싶었는데.”
”옴 데세데야 도미니 도데 삿다야 훔 바탁”
”또 시작이구나. 귀찮게 하는군.”
홍심은 주문과 동시에 무명지를 깨물어 피가 나게 만들었다. 흐르는 피를 이용해 공중에 글씨를 쓰기 시작한다.
’विनाश’
”아크라만 카르나”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글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글씨는 붉은색에서 검은색에 가깝게 변하기 시작하더니 김시헌을 향해 날아갔다. 글자는 김시헌의 머리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간다. 위기를 느낀 김시헌은 황급히 몸을 틀어 피하려고 하나 미처 피하지 못하고 왼쪽 눈에 맞았다. 타들어가는 듯한 통증이 느껴지며 내면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창훈의 영혼이 고통을 느꼈다. 참기엔 너무나 힘든 고통이었고 토해내듯 날카로운 비명이 입에서 터져 나왔다.
’아차 방심하다 당했구나. 가뜩이나 여자의 몸이 아니라 조정하기도 쉽지 않았는데 큰일이군. 여기서 빠져나가야 해.’
김시헌은 일단 도망을 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창 밖을 통해 바라본 바깥엔 눈에 확연히 보일 정도의 결계가 쳐져 있었다.
’큰일이다.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지. 지금 상태로 저 년을 죽이긴 힘든데.’
하지만 방금의 일격으로 홍심도 체력을 급격히 소모했다. 결계를 유지하면서 주술까지 사용하다 보니 순간적으로 체력의 한계를 넘으면서 뭉친 선혈이 입으로 뿜어져 나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김시헌은 홍심의 마음을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네 년이 공격해 봤자 다치는 건 내가 아니다. 결계를 풀어라! 그렇지 않으면 육신을 이용해 결계를 뚫어버릴 테다. 결국 죽는 건 내가 아니다.”
분한 마음에 홍심의 얼굴 표정이 일그러진다. 하지만 본인의 일격으로 창훈의 눈은 이미 다친 상태. 빨리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눈을 잃을 수도 있다. 어떻게든 김시헌을 창훈의 몸 밖으로 끄집어내기 위한 강경책이었는데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는 생각이 든다.
”창훈이의 몸에서 나가거라.”
”결계부터 풀어!”
김시헌은 창훈의 몸과 함께 창 밖으로 뛰어드려는 듯 위협을 가했다. 그 모습에 하얗게 질린 홍심은 결국 결계를 풀었다.
”풀었으니 꺼져.”
결계의 사라짐을 확인한 김시헌은 황급히 도망쳤다.
’내가 방심을 했어. 저년도 중놈 못지않게 강하구나. 빨리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몸을 찾아야 해.’
김시헌이 빠져나가자 창훈은 정신이 돌아오며 아픈 감각이 강하게 느껴졌다.
”으아악!”
타들어 갈 듯한 눈의 통증 때문에 창훈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살려주세요! 제 눈이 이상해요.”
창훈의 눈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본인 때문에 모든 게 잘못되었다고 느끼며 홍심은 자책하기 시작했다.
’내가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이렇게 되었구나. 나 혼자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법주 스님. 월선 이모. 제가 어찌해야 합니까.’
조카에게 차마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없었던 홍심은 마음이 아파왔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119에 전화를 걸었다. 그 소리를 들은 창훈이 홍심 쪽을 향한다.
”누구세요? 처음 듣는 목소린데.”
”미안하구나.”
창훈은 궁금함에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다친 눈의 고통 때문에 말을 이어가기 힘들었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와 함께 승호가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다. 승호는 상황 파악이 덜된 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다친 창훈을 발견하고 다가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