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 걸음
어제는 오랜만에 속초에 놀러 온, 아내의 친척을 만났다.
"오빠 혹시 불편하면 데려다주고 집에 가 있어도 돼."
"나? 불편하지 않은데? 오랜만에 형님 뵈면 좋지 뭐."
"정말? 신기하네. 언니들 쪽은 괜찮나 봐?"
"아니 뭐... 다 괜찮긴 해. 그냥 사람이 너무 많은 곳이 어려울 뿐이지."
장염기운은 여전했지만 그걸 핑계로 만남을 피하는 건 도리가 아니지.
오랜만의 만남은 살짝 설레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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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에요 형님. 살이 왜 이렇게 빠지셨어요?"
예의상 한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정말로 몇 년 만에 본 형님은 다소 핼쑥해 보였다.
"그러게. 잘 지냈지?"
"네. 운전은 얼마나 걸리셨어요?"
"뭐 한 4시간? 서울에서 빠져나오느라 시간 다 잡아먹었지."
성수기를 생각하면 선방이었지만,
운전한 사람 입장에선 결코 가벼운 얘기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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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변화는 더 극적이었다.
"와... 많이 컸다?"
"네에 헤헤."
"몇 학년이야?"
"이제 6학년이요."
"안경도 썼네?"
"그렇게 됐어요."
어렸을 때 봤던 느낌이 여전한데,
어느새 6학년이 되다니.
아이들을 보면 시간의 속도가 눈으로 보인다.
하긴 우리 애들도 많이 컸으니까 당연한 일이긴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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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은 여전했다.
일하는 영역과 별개로,
코딩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셨다.
'하긴, 전부터 집안에 있는 제품들 자동화하는 게 취미셨지.'
이제는 좀 더 깊게 파고들고 싶으신지 많은 걸 물어보셨다.
"여전히 개발 좀 해?
사실 회사 그만둔 뒤로는 손도 안 댔지만, 괜히 쿨하게 말했다.
"그냥 관심만 조금 남겨뒀어요. 최근 들어서 살짝 '바이브 코딩' 찍먹에만 귀 기울이고 있달까요."
"그래? 그럼 얘기 좀 나누자."
그렇게 우리는 한참 동안(1시간 이상) 개발관련해 얘기를 나누었다.
우리 사이엔 ChatGPT라는 제삼자까지 합석했으니 총 3명이서 나눈 대화였다.
"아...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질문을 해가면서 조금씩 코딩을 해라?"
"네네. 물론 다른 코딩 서비스 툴이 더 좋은 게 있으니 기왕이면 Cursor나 Claude 써서 해봐도 좋을 거 같아요. 아까 얘기드렸던 것처럼 개발환경 세팅을 하고 개발툴에 AI 서비스 관련된 플러그인 설치한 상태에서요."
"이해는 했어. 그런데 이게 말로만 들을 땐 알 거 같은데, 막상 해보려고 하면 안 되니까 말이지..."
"맞아요 형님. 원래 컴퓨터라도 한대 놓고 직접 키보드로 쳐가면서 눈으로 결과물 보고 수정하고 그래야 하는데, 이번엔 아쉽지만 이렇게 하고 다음엔 노트북이라도 가져와서 보면서 해봐요. 그전까지 저도 한번 공부 좀 해볼게요."
"좋지!"
그 순간, 내 속에서 조용히 ‘허언’ 경보가 울렸다.
공부할 생각은 0.1%도 없었는데, ‘다음에 알려드리겠다’라니.
... 뭐, 어쩌면 덕분에 발이라도 담그게 될지도?
뜻밖의 목표가 하나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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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한 분, 일본에서 오신 형수님.
이제는 한국어보다 일본어가 더 편하시단다.
"애니도 그래. 한국어로 더빙된 거 보면 화가 나더라고. 감정이입이 안 돼!"
"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감정이입을 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형수님이 갑자기 멋져 보였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애니를 원어로 몰입해서 본다니... 부럽다.
순간, 고등학교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히라가나를 낙서처럼 쓰던 손,
안 들리는데도 일본어 흉내를 내던 입.
그리고 어느새 사라져 버린 목표.
‘그래. 나도 일본어를 다시 해보자.’
여행도 자유여행으로 가보고,
애니도 감정 200%로 즐기고.
그렇게 형수님 덕에 목표 리스트가 하나 더 갱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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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뜻밖의 만남에서 두 개의 목표가 생겼다.
1. 바이브 코딩
2. 일본어 공부
물론... 목표만 세워놓고 작심삼일로 끝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그래도 이번엔 조금 다르길 바란다.
아니, 다르게 만들 방법이 하나 있다.
결국 모든 목표엔 예산이 든다.
“여보, 바이브 코딩 툴 유료결제랑 일본어 교재 값, 지원 좀 해줄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