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출산율 0.3을 찍은, 2045년의 대한민국은 더 이상 선진국이 아니었다.
인구 피라미드가 뒤집힌 지는 오래였다. 정년을 맞은 세대가 쏟아져 나오자 연금 기금은 버티지 못했다. 국채는 휴지조각이 되었고, 외국 언론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오히려 낙관적이었다.’는 조롱조의 기사를 연일 쏟아냈다. 게다가 국민 정서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갈라진 상태였다. 세대, 남녀, 사는 곳, 출신 배경 등 모든 것이 분열을 일으켰다.
마침내 국민은 분노했다. 그 분노는 번번이 국회와 청와대를 향했다. 그럴수록 정부는 다른 현안만 이야기할 뿐이었다.
며칠 전에는 논란을 일으키던 정치인 중 몇 명이 차량을 둘러싼 민중에게 붙들려 나와 폭행을 당하다 죽는 장면이 SNS 라이브를 통해 생중계돼 논란이 일었다. 그 뒤로도 비슷하게 수십 명의 정치인이 광장에 끌려 나와 굴욕적인 심판을 받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군중은 금방 흥미를 잃었다. 정치인들은 몸을 숨겼고, 대중은 새로운 희생양을 필요로 했다.
소는… 진작에 잃어버렸다. 헛간 속에 남은 사람들의 절망만 남았다.
누군가 말했다. 좀 더 정확하게는 익명의 이야기들이 퍼지기 시작했고 그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었다.
[정치를 믿을 수 없다면, 기계를 믿으면 되지 않겠는가.]
처음엔 농담 같았다. 하지만 과학자, 대기업 총수, 사업가, 예술가들이 하나둘 동의하기 시작했다. 국회의원 한 명의 직관보다 인공지능의 예측이 더 정확하다는 것은 이미 증명된 사실이었다.
[대한민국 선진화 프로젝트]라 불리는 ‘AI 국정 보좌 체계’에 대한 기반이 탄생했다. 시범 도입하기엔 시간이 없었다. 대국민 투표를 통해 과반이 넘는 찬성을 얻자마자 곧, 국가 운영의 전권을 AI에 이양했다. 여야의 색깔도, 진보와 보수의 구호도 이제 무의미했다. 인공지능은 모든 정책이 가져올 결과를 확률로 제시했다. 그리고 원한다면 누구나 해당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구조였다. ⏤투명성은 곧 치명적 약점이 될 예정이었지만, 당시엔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가령, 이런 식이다.
“출산세 도입: GDP +1.2%, 사회적 갈등 +43%, 선진화 진행률 27% 달성.”
“연금 삭감: 재정 건전성 +6년, 노인 빈곤율 +27%, 선진화 진행률 32% 달성.”
다수를 위한 소수의 의견은 ‘선진화’ 한 마디에 묵살되기 시작했다. 마침내 대한민국은 인류 최초의 AI공화국을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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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국정 보좌 체계 시행 3년 뒤]
국회 앞에서 반대 시위가 벌어지자 로봇 경찰이 투입되었다. 로봇 경찰은 인간의 약점 분석을 바탕으로 크게 다치지 않는 선에서 쉽게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시위는 빠르게 진압됐다. 군중 속에서 한 여성이 절규했다.
“우린 사람이야! 확률의 노예가 아니라고!”
그러나 응답은 없었다. 무표정한 모습으로 로봇이 다가가 그녀를 기절시켰다. 이 장면은 어디에도 중계되지 않았다. 다만 포털 기사 한 귀퉁이에 짤막한 기사가 남겨져 있었다.
[폭도 진압 완료, 현재 지지율:85%, 대한민국 선진화 진행률 44% 달성 완료.]
⏤댓글 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