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무조건 찬성.

2

by 고성프리맨

힘겹게 바닥을 짚고 일어나려는데, 따끔한 충격이 뺨을 스쳤다. 고개가 옆으로 꺾였다.


“아파? 그럼 움직여.”


낯선 목소리, 기계처럼 변조된 음성. 그리고 내 앞에 뭔가를 내던졌다.

자세히 보니 방독면이었다.


“써. 지금부터 물어보지 말 것. 길대로 쫓아올 것. 두 가지만 따르도록해. 낙오되면 끝이야.”


방독면 안에서 쳐다보는 텅 빈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얼얼한 뺨을 감싸 쥐며 그를 올려다봤다.

‘믿어도 될까?’

진짜 날 구하러 온 건지⎯혹시 덫?⎯정보는 부족했고 생각은 정리되지 못했다.


“추가병력 지원요청. 폭도가 증원되었다.”


밖에서 로봇의 목소리가 들렸다.


“따라와!”


방독면도 쓰지 못했는데 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큰 기계음이 안으로 쏟아졌다. 뒤이어 하얀색 안개가 방안을 메우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방독면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흐르는 땀 때문에 쓰는 게 쉽지 않았다. 연기를 들이마시기 직전 겨우 방독면을 착용했다.


[접속 확인 완료. 지금부터 화면에 뜬 지시사항을 따라주십시오.]


‘단순한 방독면이 아니었어?’


내부에 반투명한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잠시 후 이동해야 할 목적지로 보이는 표식이 보였다.

[남은 거리 2km. 분석 중.]

일단 시키는 대로 움직여야 했다.


“시민 A332302020. 지금부터 반역 폭도로 분류돼 살처분에 처한다.”


갑자기 나타난 로봇이 총을 들어 쏘려 했다.

[57도 각도로 허리를 숙일 것. 시간이 없으니 이미지화된 자세를 따르십시오.]

눈앞에 떠오른 자세는 다소 아크로바틱 했다.


“이걸 어떻게 따라 하라는 거야?”라고 말했는데, 신기하게도 몸이 저절로 움직여졌다. 마치 방독면이 뇌를 조종이라도 하는 듯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폭발음이 옆에서 들리더니 다시 나타난 그가 말했다.


“시간 없어. 지시 사항에 따라. 뛰면서 인지하라고.”


뭐가 뭔지 정신이 없었다. 화면에는 [분석 결과]가 떠있었다.


[기초 대사량 및 운동 신경을 분석한 결과 목적지까지 10분 소요 예상.

10분 내 주파 시 생존 확률 12%.

6분 주파 시 생존 확률 50%.

5분 주파로 미션 변경.

미친 듯이 뛰십시오.

미션 실패 시 생존 보장 불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상황 파악이 되진 않지만 뛰어야 했다.

‘대체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

이질감이 들었지만 이상하게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방금 전까지 영상이나 찾아 헤매던 일상이 무너졌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인생이 망해가고 있는데, 심장은 쿵쾅거렸다.

마치 영웅이라도 된 듯한 착각…


하필이면, 돌에 걸렸다.
몸이 앞으로 무너지는 순간, 세상이 슬로 모션처럼 늘어졌다.

숨이 막혔다. 방독면 안에 습기가 차올랐다.
얼굴과 바닥이 가까워질수록, 잊고 있던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그날이었다.
병실 냄새. 차갑게 식어 있던 손. "미안하다"는 말조차 못 했던 순간.
다시는 꺼내고 싶지 않았던 기억이 눈앞에 떠올랐다.


“안 돼…!”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피할 수 없었다. 추락은 이미 시작됐다.

그때.


[최대한 몸을 웅크릴 것. 착지신호와 동시에 왼손, 오른손을 뻗어 반동을 주며 튕겨 일어설 것.]


화면이 번쩍이며 강제로 시야를 휘감았다.

통증이 뇌를 찌르듯 들어왔다. 바늘로 신경을 후벼 파는 느낌이었다.


[정정. 시간이 부족합니다. 강제 조정 모드 돌입. 지속 시간 : 4분.]


그 순간 더 이상 내 몸은 내 것이 아니었다.
팔과 다리가 스프링처럼 튀어 오르며, 바닥을 박차자 믿기 힘든 반동이 솟구쳤다.
총알이 스쳐 지나가고, 돌조각이 튀어 오르며 얼굴을 스쳤다.

숨이 막혔는데도, 이상하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누군가 대신 살아준다면 이런 기분일까?'
나는 그저 관객이었고, 내 몸은 액션 배우처럼 연기하기 시작했다.


[남은 지속 시간 : 1분. 수동 모드 진입 준비. 목표 지점까지 거리 700m 남았습니다.]


감상에 빠질 틈도 주질 않는구만. 넘쳐흐르던 힘이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죽을힘을 다해 뛰십시오. 뛰는 자에게 행운이 있습니다. 수동 모드 진입까지 남은 시간 10초.]


몸이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어찌 되었건 행운은 이제 끝났다.

이제부터는 스스로 답을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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