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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바닥이 아스팔트를 찢는 듯했다. 숨 쉴 때마다 들어오는 공기가 불에 덴 듯 점점 뜨거워졌다.
[남은 거리: 500m. 수동모드 종료 3초 전.]
총성이 귓가를 스쳤다. 반사적으로 피한걸 보니 자동모드의 힘이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료 2초 전.]
큰일 났다.
‘이대로 종료되면 총알이 날아오는 대로 관통당하는 게 아닐까?’
[종료 1초 전. 남은 거리: 300m.]
30년을 살아오면서 1초 흘러가는 게 이토록 아까웠던 적이 있던가. 아까보다 몸이 확실히 무거워졌다. 입안에서는 아까부터 피맛이 느껴졌다. 그나저나 1초 동안 이렇게나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게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해내야 해. 해낼 수 있어. 해내자!’
하필이면 이 순간 매일 들리던 조회 방송이 생각났다.
“예전 사람들은 9시 출근, 6시 퇴근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인공지능이 세상을 바꾸면 근로시간이 줄어들 거라 기대했죠.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선택받은 국민, 우리 초격자(超格者)들은 하루 평균 15시간을 근무하며 국가의 동력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반대로 무직자는? 자유롭게 늦잠을 자도 됩니다. 어차피 쓸모없으니까요.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다 함께 외치세요. 나는 오늘도 쓸모 있는 인간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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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사회가 도래하면 근로시간이 절반 이상 줄어들 거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회사 소속의 초격자들은 평균적으로 하루 15시간 이상을 근무한다.
과거처럼 의자에 앉아 직접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하거나 타이핑을 치는 방식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정해진 인큐베이터로 이동해 신체에 이식된 칩과 동기화를 거친 뒤, 가수면 상태에 빠지는 것이 일반적인 출근 루틴이다.
이 상태에서 초격자는 AI의 성장 동력 및 보조 장치로 활용된다. 간단히 말해, 사람의 뇌와 신체 에너지를 인공지능에 공급하는 방식이다. 가수면 상태 동안 영양소의 공급과 배출은 자동으로 관리되며, 건강 상태에 따라 출근 가능 일수가 산정된다.
한마디로, ‘출근 = 칩에 연결되어 AI에 에너지를 제공하는 것’이 되었다. [트리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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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거리: 200m. 호흡 불안정. 폐 손상 징후 3% 상승. 자동 모드가 종료되었습니다. 사력을 다하십시오. 최소 전력 모드 활성화 시작.]
‘XX, 사력을 다하는 게 어떻게 하는 건데? 말은 쉽지.’
확실히 다르다. 지금까지 도움을 받았던 것과는 천지차이였다. 200m 까짓 거 뛰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전혀 아니었다. 남은 거리 정도는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한 자신감이 급격히 사라졌다. 다시 한번 뒤에서 총성이 들렸다. 그리고 고통이 느껴졌다.
‘맞았다. 맞았구나. 역시 이변은 없구나.’
눈앞이 캄캄해졌다. 달리던 도중 총을 맞았으니 중심이 무너져 흉하게 구르고 있으리란 것쯤은 예상할 수 있었다. 의식이 흐릿해지려 했다. ‘이대로 정신을 잃는 게 낫지는 않을까.’ 차라리 모든 게 꿈이었으면 좋겠다. 잘될 수 있다는 희망 따윈 없어도 상관없지 않나. 그냥 나라에서 주는 대로 먹으라면 먹고, 자라면 자고, 보라면 보는 삶도 꽤 나쁘지 않은 삶 아니던가. 어차피 발버둥 쳐봐도 내 삶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지 않나.
어디를 맞은 건지도 모르겠다. 재수가 없으려니 별일이 다 생기는구나. 마침내 움직임도 멈췄다. 둔탁한 걸음소리가 포위하듯 좁혀왔다. 경찰들이 온 게 분명하다. 정말로 다 끝장이다. 잠시나마 일탈을 꿈꾼 죄로 이제 나는 평생 동안 다시는…
“시민 A332302020, 당신은 반역자로 분류되었습니다. 항소는 3일 내로 가능합니다만 죄질이 나쁜 관계로 살처분을 진행합니다. 그동안 수고했다 가축… ”
캄캄한 어둠. 뛰지 않는 심장. 소멸…
…
[명령 취소. 프로토콜 오버라이드.]
…
[우선순위 변경: A332302020 보호대상으로 재분류. 승인되지 않은 죽음입니다.]
갑작스레 숨이 터져 나왔다. 눈이 번쩍 떠졌다.
방안. 로봇의 머리가 나뒹굴고, 내 뺨에 따끔한 통증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내 앞에 선 실루엣이 차갑게 말했다.
“뭐 해. 다시 한번 말한다. 낙오되지 말 것. 어디서 이딴 걸 선택해서…”
믿을 수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마지막에 말한 건 나한테 한 말일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추가병력 지원요청. 폭도가 증원되었다.”
다시 한번 밖에서 로봇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한현오! 멍청히 있지 말고 움직여!”
이유는 모르겠다. 어딘가 목소리가 낯익은 느낌…
하얀색 안개가 방안을 뒤덮기 시작했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이번엔 신속히 방독면을 썼다.
[접속 확인 완료. 지금부터 화면에 뜬 지시사항을 따라주십시오. 남은 거리 : 2km.]
별 수 없다. 이제는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