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마취된 자부심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 이후, 한국은 어딘가 달라졌다.
붉은 물결로 거리를 메웠던 그날의 열기가 식은 뒤에도 사람들 사이엔 묘한 자신감이 남았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감정이 사회 전체로 번졌고, 그건 단순한 스포츠의 기억을 넘어 일종의 민족적 자기 암시가 퍼져나갔다.
그 이후의 한국은 확실히 ‘세계적인 나라’가 되어갔다.
K-POP이 빌보드 상위권에 오르고,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 트로피를 들었으며, 제품과 기술이 세계시장을 휩쓸었다.
겉으로 보면 완벽한 성장의 서사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상한 피로감이 있었다.
이른바 ‘국뽕’이라 불리는 현상.
자국에 대한 환상에 도취된 채, 현실의 문제를 잊어버린 집단적 열광.
처음엔 그저 웃어넘길 신조어 같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꽤 정확한 표현이었다.
‘우리는 이제 선진국이야.’
그 말은 자부심이라기보다, 일종의 마취제처럼 작용했다.
성장에 취해 있는 동안 사람들은 점점 더 무기력해졌다.
마치 선진국이 된 것처럼 보였지만, 어쩌면 어딘가 멈춰버렸는지도 모른다.
윗세대가 전쟁 이후의 폐허 속에서 급격한 경제성장을 겪었다면,
우리 세대는 또 다른 형태의 급진적인 변화를 통과해 왔다.
하지만 변화의 속도에 비해 시야는 충분히 확장되지 못했다.
정치와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은 여전히 협소했고,
그 사이 많은 사람은 불신과 피로 속에서 방향을 잃었다.
자유와 자본주의, 대한민국의 성장 밑바탕을 이뤘던 가치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이상을 말했고, 누군가는 혐오를 외쳤다.
토론은 점점 ‘진영’의 언어가 되었고,
반대 의견을 내는 일은 곧 배척의 대상이 되는 일이 되었다.
그럴수록 나는 말을 아끼게 됐다.
세상이 너무 시끄러워질수록, 조용히 입을 닫는 게 살아남는 법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연일 들려오는 위기 신호와 경제 지표를 보며,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로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만 같았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쉽게 꺼낼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
그래서 결국,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만 조심스레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대화’였다.
가끔 누군가가 묻는다.
“대체 뭐가 그렇게 위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럴 때면 얄팍하게나마 환율과 금리 이야기를 꺼내보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화는 금세 막다른 길에 닿는다.
숫자는 사람을 설득하지 못한다.
듣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 어떤 데이터도 무의미하다.
결국 남는 것은 체감뿐이다.
원화를 제외한 거의 모든 자산이 오르고,
시장과 현실의 균형이 미묘하게 뒤틀려가는 그 불안한 감각.
그 속에서 나는 누군가를 설득하고자 하기보단,
단지 ‘준비해야 한다’는 감각에 가까운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글을 쓴다.
누군가를 가르치려는 것도, 정치적 판단을 내리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느끼는 불안을 언어로 옮겨
조금이라도 현실을 또렷이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건 경고라기보다, 스스로에게 보내는 작은 각성문이다.
거대한 변화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 사실 예고는 있지만 찾기가 어려운 것이려나.
노아처럼 방주를 만들거나 타야지만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
준비되어 있는가?
당연하지만 한순간에 모든 사람의 마취가 풀리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런 글을 쓰는 내가 오만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마취는 자연스레 풀리고 남은 통증만이 현실을 알게 할 것이다.
국뽕을 내려놓을 때다.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듯,
잘된다고 생각할 때, 위기를 돌아봐야 한다.
부디 앞날에 광휘가 함께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