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 걸음
남이 하는 건 왜 이렇게 다 쉬워 보일까?
결과만 놓고 보면, 늘 그렇다.
‘저 정도 가지고 호들갑은.’
그렇게 넘겨짚기 일쑤였다.
그런데 막상 내 상황을 놓고 보면…
모든 게 크게 비교될 뿐이다.
생각해 보면 20대 시절에도 똑같았다.
회사 동기 하나가 자투리 시간마다 이것저것 개발하는 걸 보며,
겉으로는 “부지런하네.”라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비웃었다.
저딴 거 만들어서 뭐가 되겠냐고.
하지만 그 오만이 틀렸다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몇 년 뒤, 다시 만난 그 동기는 대기업으로 이직해 있었다.
여전히 중소기업을 전전하던 나는, 그 비법이 궁금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전에 만들던 거 포트폴리오로 냈더니 좋게 봐줘서 붙었어.”
별거 아니라며 깎아내렸던 그 포트폴리오가 대기업으로 가는 열쇠였다니.
허탈했다.
그딴 건 지금부터 각 잡고 만들면 금방 만들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달랬지만,
핑계였다.
“너도 해봐. 계속 만들고, 계속 지원하다 보면 연락 올 거야.”
말은 고마웠지만 자존심은 무너져 내렸다.
겉으로는 웃었어도 속은 뒤틀렸다.
나보다 뒤처졌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높은 성과를 내는 게 왜 그렇게 꼴사납게 느껴졌을까.
심지어 말도 안 되는 질투심까지 올라왔다.
‘네 자리가 내 자리였어야 해.’
내가 뭘 했다고?
대체 무엇을 했다고 그의 성과를 깎아내릴 수 있었단 말인가.
질투에 눈이 멀면 이렇게도 비루해지는구나 싶었다.
고등학교 때도 그랬다. 오히려 더 오만했다.
수능이 끝난 뒤, 나보다 뒤처진다고 여겼던 애들이 좋은 대학에 합격하는 걸 보면서도 믿지 못했다.
‘공부는 내가 더 잘했다고!’
아무리 외쳐본들 무슨 소용이 있었나.
결국 나는 삼류 대학에 입학했고, 졸업할 때까지 침묵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치욕스러웠다.
왜 그랬을까.
타인의 노력은 폄하하고, 나의 노력만 올려치려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노력하는 동안 남들은 가만히 있기라도 한단 말인가?
‘세상이 잘못된 거지, 내가 잘못된 게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며 버티던 시절이 길었다.
30대 초반까지도 나는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나의 노력만이 진짜 노력이고, 나보다 잘 나가는 이들은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좁은 어항에 갇힌 채 금붕어처럼 빙빙 돌며 살았다.
현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이는 일.
그보다 두려운 건 없었다.
내 현실을 솔직히 인정하고 나면…
그 뒤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러는 사이, 애써 외면하던 시간의 누적은 서서히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리고 있었다.
그러다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잘못된 나의 삶에 한 줄기 빛 같은 사람.
스스로에게 결박되어 있던 나를 바깥세상으로 끄집어내 준 사람이다.
초라하다고만 여기던 현실도, 하기에 따라 바뀔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그 결과, 이제는 남을 쉽게 비하하거나 하대하지 않는다.
예전 습관이 올라오려 할 때는 빠르게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내 삶이 남과 같을 필요도, 같아 보일 필요도 없다.
사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평범함을 인정하면 못난 사람이 되리라 생각했을까?
아니었다.
스스로를 정확히 바라보고, 필요한 노력을 제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게 내게 필요했던 전부였다.
그리고 40대가 된 지금에서야, 비로소 나다운 노력이라는 것을 시작하고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