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39

불신과 믿음 그 사이 어딘가

by 고성프리맨

철환은 나를 데리고 단식기도를 하거나 명상의 시간을 가질 때 이용하는 밀실로 이동했다. 밀실은 생각보다 어둡고 좁은 편이었지만 두 명 정도 바닥에 앉아 있을 공간은 충분했다. 작은 협탁 위에는 철환이 읽는 성경과 다른 몇 가지 책이 올려져 있다.


”지금도 성경을 많이 읽으시나요?”

”틈나는 대로 읽고 있어요.”

”그러면 엄청 많이 읽으셨겠네요. 계속해서 읽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음.. 성경은 이미 제 머릿속에 다 들어 있긴 해요. 하지만 내게 주어진 힘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고 믿고 있답니다. 늘 불안감이 있는 편인데 성경을 읽을 때만큼은 마음의 평온을 느끼다 보니 습관처럼 되어 버렸네요.”

”그렇다면 제가 해야 하는 것도 무작정 성경을 읽는 것부터가 시작일까요?”

”그럴 수도 있겠죠. 제가 아는 선에서라면. 하지만 무엇보다 내면에 집중해야 해요.”


’내면이라..’


”전 시한부 판정을 받았을 때 더 이상 삶에 대한 미련이 없었어요. 그저 산속에서 원하던 신앙생활을 해나가며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죠. 신도일 때는 사실 성경을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어요. 설교에서 듣는 내용을 통해 조각난 지식을 듣거나 좋아하는 부분만 읽는 식이었어요. 처음 성경을 완독 하기까지 시간이 참 오래 걸렸었죠. 어찌나 힘들던지. 하지만 한 번 읽고 나니 자신감이 붙기도 했고 궁금함이 더 커지더군요. 그때부턴 뜻이 이해가 될 때까지 이해가 되지 않으면 외워질 때까지 무작정 읽었던 거 같아요. 크게 소리 내어 읽기도 하고 때로는 외운 내용을 마음속으로 되뇌어 보기도 하고. 그래도 부족함이 느껴졌어요. 그 뒤로는 단식과 성경 읽기를 병행하기도 하고 대낮부터 귀신이 출몰한다는 곳을 찾아가거나 음기가 강하다고 하는 곳을 찾아가 그곳을 집 삼아 같은 행동을 반복했어요.”

”귀신이 나오는 곳을 찾아가는 게 의미가 있습니까?”

”의미는 부여하기 나름이겠죠. 당시의 난 그곳에 길이 있을 거라 믿었으니까요. 믿은 대로 행동한 걸 후회해 본 적은 없어요. 그런데 신기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어느 순간부터 영이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개안이라고 할까요? 아무튼 전 영을 볼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영들도 저를 알아보기 시작했죠. 자신들의 영역을 알아보는 나를 보며 두려워하더군요. 게 중에 악귀처럼 보이는 사악한 영이 하나 다가왔어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말이 진실일 거라 믿고 싶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느껴졌어요. 어두운 기운을 뿜으며 기괴한 모습을 한 악귀가 다가오기 시작할 때 난 똑바로 악귀를 쳐다보고 있었어요. 팔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이 왔을 때 들고 있던 성경으로 악귀를 내리치며 다른 손으로는 악귀를 붙잡기 위해 뻗었죠.”

”그래서 악귀를 잡았나요?”

”실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답니다. 성경을 정통으로 맞은 악귀의 몸 부분이 떨어져 나갔고 손으로 붙잡은 악귀는 꼼짝도 하지 못했어요. 오히려 두려움의 눈빛으로 바뀌어 있더군요. 어디서도 배운 적이 없었지만 난 퇴마를 할 수 있게 된 거였어요.”

”하지만 전 믿을 수 없습니다.”

”믿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모든 게 사실이니까요. 붙잡힌 악귀는 애처로운 표정을 짓기 시작하더군요. 그런 악귀의 모습은 사람의 감정을 파고들기 위한 속임수에 불과해요. 난 한 번 더 기도를 외치며 성경으로 한 번 더 내리쳤어요. 그리고 악귀는 소멸되었어요.”

”전 눈으로 똑똑히 봐야지 믿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승호 씨? 이미 마음속으로 느끼고 있지 않나요? 악귀라고 불리는 사악한 영은 어디에나 있어요. 그중에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악귀는 극히 드물어요. 내게 왔을 땐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생겨난 근원적인 궁금함 때문일 거라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철환은 내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의 흔들림 없는 강직한 눈빛을 똑바로 쳐다보기가 힘들다.


”제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사람을 구하기 위한 능력이 필요합니다.”


솔직한 내 말이 마음에 들었다는 듯 철환은 작게 미소를 짓는다.


”이미 방법은 다 알려줬어요.”

”네?”

”제가 한 그대로 하는 게 방법이에요. 지름길은 없어요.”


다소 허탈해졌다. 쉬운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게 순간 부끄러워졌다.


”맞네요. 제가 너무 쉽게 생각했나 봐요.”

”하지만 승호 씨. 아무나 가 다 그런 능력을 갖진 못해요. 교주로 지내면서 난 최대한 나와 같은 사람을 한 명은 더 만들어내고 싶었어요.”

”잘 안되신 건가요?”

”네. 수많은 신도 중 두 명 정도가 그나마 내가 했던 대로 수행을 해봤지만 변화는 생기지 않았어요. 그들의 신앙심도 시험받게 되면서 내 곁에는 한 명만 남았어요. 승호 씨도 만났죠?”

”혹시 머리가 하얗던 그분 이실까요?”

”맞아요. 그래도 오랜 세월 내 곁에 머물면서 지금도 포기하진 않고 있어요. 그녀의 마음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오히려 나를 위로하더군요. 덕분에 신앙생활을 지속하고 있다며.”

”그렇군요. 하지만 철환님 제겐 시간이 부족한데 언제 이뤄질지 모르는 기적을 꿈꾸며 수행을 해야 하는 걸까요? 당장에라도 악귀가 나타나면 꼼짝없이 당할 텐데..”

”애석하게도 왕도가 없어요. 다만 내 힘으로 잠시 동안이나마 보호해 줄 순 있어요. 그리고 승호 씨의 영은 맑네요. 내게 시한부 선고가 있었다면 승호 씨에겐 타인을 돕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이 있어요. 타인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도 바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친구인 창훈이를 돕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 각오했습니다.”


내 말을 듣던 철환은 깊은 고민 끝에 말을 꺼낸다.


”내가 쓰던 성경이에요. 이 성경과 함께해 온 시간이 많았네요. 성경에는 힘이 깃들어 있어요. 나를 떠나 얼마나 힘이 유지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당장 급한 상황에서는 효과가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내가 했던 방식대로의 수행을 시작하세요.”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