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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드점빵 Oct 01. 2021

아니, 책을 샀는데 라면까지 주시다니요

컬래버레이션 마케팅 전성시대

두어 달에 한 번쯤 서점에 가는 편이고, 그때마다 대여섯 권정도 책을 산다. 내게는 나름대로 확고하게 세워둔 '도서 구매 목록 구성 기준'이 있다. 내용인즉, 반드시 브랜드 마케팅이나 글쓰기 / 에세이 / 소설 / 시집 등의 카테고리에서 한두 권씩 골고루 고른다는 것이다. 생업과 관심사 그리고 개인적 취미와 취향을 두루 반영하려다 보니 자연스레 그리 되었다.


며칠 전도 그런 날이었다. 서점 한번 가야 할 시기가 돌아온 것 같아 서면에 있는 교보문고 부산점에 들렀다. 평소에는 주로 센텀점을 이용하는데 이날은 동선이 맞지 않아서 작업실과 가까운 부산점에 갔던 것이다.


두 개 층으로 구성된 서가를 오르내리며 변함없이 나의 '구매 목록 구성 기준'에 따라, 소설가 한강의 신작 <작별하지 않는다> 시인 박준의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이슬아 작가의 에세이 <부지런한 사랑>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의 책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 이병률의 시집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유엑스리뷰에서 출간한 <UX라이팅 시작하기>를 바구니에 담았다.


사기로 결정한 책들을 계산대에 올린 후 기계적인 연결 동작으로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꺼내고 있을 때, 예상치 못한 질문이 날아들었다.


"기프트 카드 이벤트 중입니다. 3만 원 이상 충천하면 10퍼센트 할인받으실 수 있는데, 그걸로 결제해 보시겠어요?"


'10퍼센트 할인'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어 재빨리 계산대 모니터를 확인했다. 내가 지불해야  금액은 8 원이 조금 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기프트 카드를 통해 결제하겠다고 점원에게 말했다.


긍정적인 답을 들어서인지 더 밝아진 듯한 목소리로 점원은 추가 안내를 이어갔다. 기프트 카드의 디자인은 네 종류이고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윽고 눈앞에 기프트 카드 샘플들이 놓인 순간, 나는 쓰고 있던 마스크 안으로 빙그레 웃음을 짓고 말았다.


점원이 보여준 기프트 카드가 배홍동 비빔면, 신라면, 너구리, 짜파게티의 패키지를 옮겨놓은 형태였기 때문이다. 재미있기도 하고 다소 당황스럽기도 하던 찰나, 그제야 계산대 옆 X-배너가 눈에 들어왔다. 교보문고와 농심의 컬래버레이션 이벤트였던 것이다.


기프트 카드와 할인 혜택 외에도 구매 금액에 따라 스티커와 책갈피 같은 사은품도 준다고 한다. 책을 많이 사서 그런 것인지 나는 <신라면 건면>을 무려 다섯 봉이나 받았다.


그러고 보면 요즘은 정말 컬래버레이션 마케팅의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제품은 넘쳐나고 경쟁은 치열한데 어지간한 마케팅 메시지는 먹혀들지를 않고, 심지어 광고를 피하기 위해 추가 비용까지 선뜻 지불하는 시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의 관심을 끌어와야만 하는 여러 브랜드와 마케터의 노력이 갸륵하고 눈물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넓은 의미에서 동업자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을 향한 어떤 연민의 감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 덕분에 책을 사고 라면을 받는 진귀한 경험도 할 수 있으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좋은 일 아니겠는가. 한쪽에는 책 여섯 권, 다른 쪽에는 그와 비슷한 부피의 라면을 옆구리에 끼고 서점을 나오며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서점에 왔는데 말이야, 아니 세상에 책을 샀더니 라면을 주네?! 우리 오늘 저녁은 이거 끓여 먹자. 그런데 점원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배홍동 카드를 고른 것도,
라면을 받아간 것도 다 내가 처음이래. 이거 왠지 기분이 좀 야릇한데?

머리가 찌릿할 정도로 차가운 살얼음 맥주를 마시며

-브랜드점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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