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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드점빵 Oct 12. 2021

삼 일간의 연휴, 두 번의 집들이

습관의 무서움, 혹은 고마움에 대하여

01.

새로 이사한 집의 첫 번째 집들이를 지난 토요일에 가졌다. 초대 손님은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나 지금까지 가깝게 지내고 있는 대학 동창 이시훈이었다. 함께 우리 집으로 오기 위해 내가 운전하는 차에 올라타며 이시훈은 불쑥 말했다. 내일 꼭 참석해야 할 결혼식이 있으니 오늘 술은 조금만 마시겠다고.


그러든지 말든지. 별 관심 없다는 듯 대답하고는 집 근처 우리 부부의 단골 식당인 <연희 갈비>로 이시훈을 데려갔다. 집들이의 시작이 집 밖인 점은 다소 민망하지만, <연희 갈비>의 돼지갈비를 내 오랜 친구에게 꼭 맛 보여 주고 싶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돼지갈비 육 인 분과 냉면 한 그릇을 나누어 먹었다. 그러는 동안 소주 세 병과 맥주 한 병을 곁들여 마셨다. 이제 우리 집으로 가서 2차 자리를 간단하게 즐기고 헤어진다면, 이시훈의 다짐은 무난하게 지켜질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집으로 올라와서 아내가 이시훈에게 집을 구경시켜 주는 사이, 나는 배달앱을 열어 가자미회를 주문했다. 배는 충분히 채웠으니까 정말 가볍게 소주나 몇 잔 마시자는 심산이었다. 회가 도착하고, 소주가 몇 순배 돌고, 새 병을 냉장고에서 꺼내 오고, 몇 번의 건배가 이어지고, 다시 또 냉장고 문을 열고.


셋이 집에 모여 술을 마실 때면 늘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이 패턴을 마치 습관인 듯 반복했다. 문득 밤이 깊어 새벽으로 기울기 시작한 것을 알아챈 이시훈이 비틀거리며 일어났을 때, 시간은 이미 새벽 한 시를 훌쩍 넘어 있었다.


습관이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02.

대체 공휴일 덕분에 만들어진 삼 일간의 연휴 마지막 날. 또 한 번의 집들이가 있었다. 이 날은 다소 특별한 사람들을 초대했다. 어느 날인가 문득 서럽고 미운 마음이 터져서 한동안 소원하게 지냈던 부모님과 친동생이 그 주인공들이다. 한 해를 훌쩍 넘겨 이 년 가까이 내 쪽에서 만남을 거부하고 있었는데, 우연한 계기로 얼마 전 다시 왕래를 시작한 터였다.


가족들이 집에 오기로 한 시간은 오후였고, 아내는 아침 일찍 머리를 하러 미용실에 갔다. 혼자 남은 오전 시간. 나는 커피 한 잔을 가지고 베란다로 나가 캠핑용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걱정을 시작했다. 하나 같이 술을 즐겨서 예전에는 모일 때마다 떠들썩하게 먹고 마셨는데, 이 년 여만에 갖는 이런 자리가 행여 어색하지 않을까에 대한 것이었다.


딱히 답도 없는 근심을 붙잡고 있을 때 아내가 미용실 볼 일을 마치고 돌아왔다. 우리는 함께 <오륙도 회센터>에 가서 가족들과 함께 먹을 요량으로 전어회와 가자미회를 넉넉하게 샀다. 일회용기에 포장해 온 회를 접시에 옮겨 담아 랩을 씌워 냉장고에 넣어 두고, 서비스로 주신 매운탕에 약간의 채소와 두부 한 모를 보태 한소끔 끓이고 있을 때 이윽고 가족들이 도착했다.


동생은 그래도 휴지는 한 통 가져와야 하지 않겠냐고 너스레를 떨며 우리 아파트 단지 앞 마트에서 샀다는 값 티슈 세트를 내밀었다. 부모님은 아내와 나에게 집을 깨끗하게 잘 꾸며놓았구나라는 소감과 함께 축하의 말을 건넸다. 둘이 힘을 합쳐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기특하게 여기는 것 같기도 했다. 어쩐지 긴장이 좀 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손님맞이용 큰 상을 펴고 둘러앉아 준비해 두었던 회와 매운탕을 먹었다. 아침 내내 사로잡혀 있던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서로가 서로의 술잔에 술을 채워주고 잔을 부딪히는 행동이 자연스러웠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분 좋은 아버지의 목소리는 커졌고, 술에 취한 동생은 나에게 장난을 걸며 까불었다. 좋았던 그때 그랬던 익숙한 장면들이었다.


나는 괜히 쑥스러워 심드렁하게 반응했고 그 여백은 아내 변은진이 우리 동네 태국 식당 <케이쏨차이>에서 2차 안주를 시킴으로써 적절하게 채워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엄마의 표정 역시 다소 늙었을 뿐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지난 시간은 그저 무심하게 건너버린 듯 모두가 습관처럼 예전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때로 습관이 고마운 존재일 수도 있겠다고 나는 어렴풋이 생각했다.


가자미회에 소주를 마시며

-브랜드점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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