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몽이라는 말은 없다
혹시나 해서 인터넷에 유산몽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았더니
유산을 암시하는 꿈에 대한 글은 많아도
유산하면서 아이가 떠나는 꿈을 꾼 사람은 없었다
처음 아이를 유산했을 때 나는 유산몽을 꿨다
푸른 풀 밭이 한가로이 누워 있는 꿈이었다.
형형색색의 나비 떼가 내 위로 날아와서 한참을 맴돌았고
내 몸에서 하얗고 빛나는 나비 한 마리가 나와
그 나비 떼를 따라서 하늘로 올라갔다
꿈에서 깼을 때 와이프는 한참 하혈을 했고,
유산 확정진단을 받았다.
나는 그래서 그 꿈을 유산몽이라고 혼자 정의했다
유산몽은 고통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고통스러웠던 마음이 유산몽 이후로 편안해졌다.
유산몽을 꾸고 나니
왠지 다음 아이가 태어난다면 태몽은 내가 꾸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모찌를 유산하고 두 달 뒤쯤
유산몽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꿈을 꿨다
나비 떼가 날아갔던 풀밭에 내가 다시 누워있었다.
하늘에서 한 무리의 나비 떼가 내려왔다.
내 위를 지나갈 때 무리에서 하얀 나비가 떨어져 나와
내 위로 천천히 내려앉았고
내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나비 떼는 저번처럼 내 위를 맴돌지 않고 스르륵 멀리 날아갔다
그리고 그날 저녁 와이프는
우리 "다시" 잘해보자 라는 편지와 함께 임밍아웃을 했다
태몽이었다
다시 모찌가 돌아온 것인지 친구를 보내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유산몽과 같은 형태로
꿈을 잘 잊는 내가 명확히 알 수 있는 메시지로 태몽을 꿨다
"축복이"
나에게 태명을 지어달라는 와이프에게
많은 생각을 하지도 않고 뱉어낸 단어 "축복이"
많은 의미를 품을 필요도 없었고
특별한 단어를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우리에게 온 축복 "축복이"
그 단어 하나면 될 것 같았다.
다시 우리에게 돌아왔든
새로운 생명으로 찾아왔든
우리에게 온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축복이의 태몽은 서사가 길다
유산몽과 이어지는 이 태몽의 서사가 너무 신비해서
딱히 자세히는 관심 없는 남들이 태몽을 물으면
기회다 싶어서 세세히 말하곤 했다
유산몽에서 나비가 된 아이가 날아간 하늘에서
다시 나비가 내려왔고 우리의 아이가 되었다.
유산된 아이도 하나님이 책임지셨고
다시 주신 아이도 하나님이 보내주신 것만 같아 감사했다.
축복이를 통해 새로운 감사가 시작됐다.
축복이를 통해 또 하나의 삶의 신비가 추가됐다.
축복이를 통해 우리 삶의 축복이 더해졌다
다시 날아온 아이를 이번에는 잘 품어보자며
꼭꼭 다짐하고 약속했다.
지금은 불안 투성이지만 그럼에도 축복아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