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의 추억]
"아, 지금 아니면 또 생오디는 못 먹을 텐데..."
나의 한숨 섞인 이 말 한마디에
남편은 기어코 평생의 숙제를 해주겠다며
오디 농장을 섭외하라고 채근했다.
6월 딱 이맘때가 오면
일하는 엄마 옆에서 입이 까매지도록 먹던
달디단 오디의 그 맛이 기억이 난다.
내 어렸을 적 아버지는 제사공장을 다니셨고,
공장 가장자리 넓은 밭에는 뽕나무를 키웠었다.
우리 집 안방에서도 누에를 키웠는데
꿈틀거리던 그 징그러운 애벌레들의 먹거리를 위해
나는 엄마를 따라 공장 밭에 뽕잎을 따러 다니곤 했었다.
할 일을 다 제쳐 두고
어디로 가야 할지 인터넷 검색을 했다.
그리고 이곳저곳 전화를 했다.
냉동이 아닌 갓 딴 오디를 살 수 있는지 확인이 필요했었다.
게다가 나의 입맛이 좀 까다로워
개량종 과상이 아닌 토종 청일을 찾고 있었다.
개량종 과상과 토종 청일이 뭐가 다르냐고 할지 모르지만
개량종은 달지만 약간 싱거운 맛이 나고
토종 청일은 작고 새콤하지만 더 쨍한 오디 맛이 난다.
"체험은 안되고 저희는 냉동만 판매해요!"
두어 곳 전화해도 갓 딴 오디를 먹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그냥 포기할까 하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연락한 곳이
바로 인상 좋은 미소를 가진 새뜸푸드의 연숙씨다.
"내일 오전에 작업을 할 예정이긴 한데... 지금 서울에서 오신다고요?"
"네, 지금 출발하면 3시간 남짓 걸릴 것 같아요."
"...."
한동안 말이 없던 연숙씨는
곧 나의 방문을 허락해 주었다.
이게 뭐라고,
시간과 차비가 더 드는 일에
3시간 넘게 걸려서 고창까지 올 일인가?
내가 참으로 안돼 보였었나 보다.
나는 어느새 도시를 떠나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고
머지않아 한적한 시골 마을에 도착을 했다.
그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연숙씨의 도움으로
나는 어린 시절을 떠 올리며 바구니 가득 신나게 오디를 땄다.
따자마자 입에서 느끼는 그 맛이란
추억과 꿈과 기쁨이 함께 어우러져 달콤하게 녹아들었다.
"아, 너무 맛있어! 너무 행복해!"
나도 모르게 자꾸만 외쳤다.
추억을 찾아 떠난 고창으로의 여행에서
나는 한여름 꿈만 같은 행복한 인연을 만났다.
불편했을 그 시간에
직접 수고를 아끼지 않고
나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었던 고마왔던 연숙씨.
함께 딴 생과와 냉동을 합쳐 꽤 되는 양의 오디를
저렴한 값으로 주시려 하기에
나는 과감히 그 마음을 거절했다.
그리고 내가 빼앗은 시간 값과 함께 보태어 드렸다.
이제 내게도
고창에는 든든한 친구이자 이웃이 하나 생겼다.
내가 가져다준 밤과 드립백 커피가 맛있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