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예찬

다비드 르 브르통의 산문, 걷기에 대하여

by 상상만두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 시간 동안 나를 깨울 수 있었던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그저 움직이는 것이었다.

집에서 여기저기 조금이라도 움직여 보니 휘뚜루마뚜루 더 많이 걷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났다.

그래서일까? 갑자기 몸을 일으켜 결연히 옷가지를 주섬주섬 챙겨 아무 생각 없이

일단 집을 나섰다. 나왔지만 사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일단 주변을 둘러보다가 산이 보이는 방향 쪽으로 발을 움직였다.

예상이 맞았다. 그곳에는 잘 구성된 산책길이 있었다.


오른쪽, 왼쪽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오른쪽으로 걸었다.

그런데 걷다 보니 마음속에 작은 불꽃이 타오르는 느낌이 들었고 온 몸이 움직이는 느낌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건 살아 있다는 느낌이야"라는 마음속 경탄이 절로 나왔다.

그제야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 막 봄이어서 그런지 여기저기 그동안 보지 못했던 나무들의 새순이 앙증맞게 피어있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솔직히 부끄러웠지만 다행히 산책길에는 많은 사람이 있지는 않아서 그렇게 울면서 걷기를

두 시간이자 더 이상 마음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발 여기저기가 쑤시고 목이 말라 더 이상 걷기가 힘들어졌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마음이 갑자기 너무 가벼워지는 것이다.

그동안 내가 고민했던 것들이 솜털처럼 가벼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무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이렇게 걷기는 내게 새로운 희망을 주었다.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 몸으로 생각하는 경험을 한 것 같은 너무 신비로운 느낌이었다.

마치 신의 아들인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확실히 나는 집을 나오기 전과는 전혀 다른 내가 되었다.

이런 사소한 경험에서도 사람은 바뀔 수 있구나 싶어 혼자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물론 돌아오는 길은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아무 준비도 없이 무작정 걸었던 나는 물집 잡힌 발과 여기저기의 근육통으로 인해 움직이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이게 또 싫지 않았다. 몸이 아픔으로 억지로 주어진 시간들을 보내기 위해

그동안 책장에 모셔둔(?) 책들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온 것이다.

운명 같은 그 책, ‘걷기 예찬‘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몸’에 문제에 대한 깊은 사색을 하는 다비드 르 브르통의 산문으로 엮인 이 책은 걷기에 대한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그저 철학자의 사색처럼만 느껴져 거리감이 있었는데

걷기를 통해 무언가를 느낀 나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책으로 다가왔다.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9p


그래 맞아 이런 느낌이었어,


걷는 사람들은 자동차를 버리고 여러 시간 혹은 여러 날 동안
신체적 차원에서 세상의 알몸 속으로 직접 뛰어드는 모험을 감행하기로 작정한 특이한 개인들이다. 보행은 걷는 사람이 얼마나 자유스러우냐에 따라 뉘앙스가 달라지는 육체의 승리다.
걷기는 별것 아닌 작은 일들에 대한 기본적 존재 철학의 발전에 알맞은 것이다.
14p


아하! 걷기는 기본적 존재 철학의 발전에 도움을 주는 일이었구나.

내가 느꼈던 그 알 수 없는 감정들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걷기는 세계를 느끼는 관능에로의 초대다. 걷는다는 것은 세계를 온전하게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때 경험의 주도권은 인간에게 돌아온다.

'진정한 걷기 애호가는 구경거리를 찾아서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운 기분을 찾아서 여행한다.
다시 말해서 아침의 첫걸음을 동반하는 희망과 에스프리, 저녁의 휴식에서 맛보는 평화와 정신적
충만감을 찾아서 여행한다.
루소에게 있어서 걷기는 고독한 것이며 자유의 경험, 관찰과 몽상이 무궁무진한 원천, 뜻하지 않는 만남과 예기치 않은 놀라움이 가득한 길을 행복하게 즐기는 행위다.
22p


두 발로 걷다 보면 자신에 대한 감각, 사물의 떨림들이 되살아나고 쳇바퀴 도는 듯한
사회생활에 가리고 지워져 있던 가치의 척도가 회복된다.
25p


걷기는 집의 반대다. 걷기는 어떤 거처를 향유하는 것의 반대다. 우연히 내딛는 걸음걸음이 인간을 과객으로, 길 저 너머의 나그네로 변모시키기 때문이다.
32p


걷는 사람은 시간의 부자다. 그에게 한가로이 어떤 마을을 찾아들어가 휘휘 둘러보며 구경하고 호수를 한 바퀴 돌고 강을 따라 걷고 야산을 오르고 숲을 통과하고 짐승들이 지나가는 목을 지키거나 혹은 어느 떡갈나무 아래서 낮잠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것이다.
34p


레지스 드브레는 말한다. '발걸음의 문화는 덧없음의 고뇌를 진정시켜준다. 걸어서 하루에 30킬로미터를 갈 때 나는 내 시간을 일 년 단위로 계산하지만 비행기를 타고 삼천 킬로미터를 날아갈 때 나는 내 인생을 시간 단위로 계산한다.
35p


더 이상 시간을 지킬 필요가 없이 보내는 삶, 그것이 바로 영원이다. 오직 배고픔으로만 시간을 측정하고 잠이 올 때에야 비로소 끝이 나는 여름날 한나절의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실제로 겪어보지 않고서는 가늠하지 못할 것이다. / 이렇게 하여 나는 기울어가는 여름의 나른한 빛 속에서 시간을 반대로 거슬러가며 여행한다.
36p

보행은 그 어떤 감각도 소홀히 하지 않는 모든 감각의 경험이다. 심지어 계절에 따라 열리는 산딸기, 머루 오디, 개암 열매, 호두, 밤의 맛을 아는 사람에게는 미각까지도 소홀히 하지 않은 전신 감각의 경험이다.
42p

루돌프 퇴퍼는 그의 아름다운 저서 <지그자그 여행>에서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꼬집어 말해준다. '여행을 할 때는 배낭 이외에 활기, 쾌활함, 용기, 그리고 즐거운 마음을 충분히 비축해 가지고 떠나는 것이 매우 좋다.'
49p

루소에서 스티븐슨 혹은 소로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은 혼자 걷기의 옹호자들이다. 혼자서 걷는 것은 명상, 자연스러움, 소용의 모색이다. 옆에 동반자가 있으면 이런 덕목들이 훼손되고, 말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며, 의사소통의 의무를 지게 도니다. 침묵은 혼자 떨어져 있는 보행자에게 없어서는 안 될 기본적 바탕이다. 루소는 자기만의 고독을 너무나 소중히 여긴다.
50p


소로는 처음부터 생각이 뚜렷하다. 그는 이렇게 쓴다. '확신하거니와, 내가 만약 산책의 동반자를 찾는다면 나는 자연과 하나가 되어 교감하는 어떤 내밀함을 포기하는 것이 된다. 그 결과 나의 산책은 분명 더 진부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사람들과 어울리고자 하는 취미는 자연을 멀리함을 뜻한다. 그렇게 되면 산책함으로써 얻게 되는 저 심오하고 신비한 그 무엇과는 작별인 것이다.'
51p

걷는다는 것은 침묵을 횡단하는 것이며 주위에서 울려오는 소리들을 음미하고 즐기는 것이다. / 소로는 이렇게 쓰고 있다. ' 대기 속에는 바람에 울리는 자명금 같은 미묘한 음악이 가득하다. 허공의 저 높은 곳을 덮고 있는 아득한 궁륭 밑에서 선율이 아름다운 피리 소리가 울린다. 하늘 높은 곳으로부터 우리들의 귓가로 와서 스러지는 음악이다. 마치 대자연에도 어떤 성격이 있고 지능이 있다는 듯 소리 하나하나가 깊은 명상을 통해서 생겨나는 것 같다. 내 가슴은 나무들 속에서 수런거리는 바람 소리에 전율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지리멸렬한 삶에 지쳐 있던 내가 돌연 그 소리들을 통해서 내 힘과 정신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69p

침묵은 인간의 마음속에 돋아난 쓸데없는 곁가지들을 쳐내고 그를 다시 자유로운 상태로 되돌려놓아 운신의 폭을 넓혀준다. 그리하여 그가 몸부림치고 있는 일터를 말끔히 청소해놓은 것이다.
76p

침묵은 계절을 탄다. 우리 고장에서는 일월의 눈에 덮인 들판 속의 침묵이 다르고 팔월 뜨거운 햇빛에 겨워 꽃과 잎이 폭발하고 벌레들이 울어대는 한여름의 침묵이 또한 다르다. 같은 풍경 속에서도 침묵은 날마다 제각기 다른 결을 보인다.
77p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발로 걷는 사람은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 혹은 기차, 비행기를 이용하는 사람처럼 거만하게 구는 일이 적을 것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보행자는 언제나 인간의 높이에 서서 걸으므로 한 걸음 한 걸음을 떼어놓을 때마다 세상이 거칠다는 것을 느끼고 길에서 지나치게 되는 행인들과 우정 어린 타협을 이룰 필요를 절감하기 때문이다.
90p

줄리앙 그라크 같은 작가는 삼림에 대한 예리한 지식을 갖추고 있어서 자신의 발 앞에 솔방울 한 개가 떨어지는 의미도 놓치지 않는다. '그런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산책자는 거의 없다. 그러나 십여 년간 소나무와 사귀어온 나는 귀를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물이 오른 솔방울은 저절로 떨어지지 않는다. 마른 솔방울이 떨어질 때는 그런 무거운 소리를 내지 않는다.
91p

걷기는 생각하는 훈련에는 더할 수 없이 좋은 한순간이다. 우리는 소크라테스와 그 제자들이 보여준 수많은 강의들이 많은 산책과 길 가다가 만난 사람들과의 우연한 대화, 그리고 발걸음의 리듬에 맞추어 거닐면서 전개된 논리들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94p

키에르케고르는 1847년 제테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걸으면서 쫓아버릴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생각이란 하나도 없다.' 니체는 <환희의 지혜>의 한 아포리즘에서 이렇게 잘라 말한다. '나는 손만 가지고 쓰는 것이 아니다. 내 발도 항상 한몫을 하고 싶어 한다. 때로는 들판을 건너질러서, 때로는 종이 위에서 발은 자유롭고 견실한 그이 역할을 당당히 해낸다. <차라투스트라>에서 그는 이렇게 적는다.
'심오한 영감의 상태. 모든 것이 오랫동안 걷는 길 위에서 떠올랐다. 극단의 육체적 탄력과 충만.'
95p

책은 어차피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영향을 주겠지만 걷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이 가을이 가기 전에

꼭 한 번 읽어보시면 좋은 책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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