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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상만두 Apr 04. 2024

구본창의 항해

서울시립미술관

오션 07-1

Ocean 07-1, 2002

printed 2003

젤라틴 실버 프린트 Gelatin silver print

130×102 cm



구본창 작가는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 현대사진의 시작과 전개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가 작가이자 기획자로 개최한 《사진 새시좌(포)》 (1988.5.18.-6.17. 워커힐미술관, 서울)에 출품된 작품들은 '연출 사진(making photo)'이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한국 사진계와 미술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사진이 객관적 기록이라는 전통적 역할을 뛰어넘어 회화, 조각, 판화 등 다양한 매체의 속성을 반영해 주관적인 표현이 가능한 예술 세계라는 인식은 그의 전 작품을 관통하며 한국 현대 사진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자신의 길을 찾아 용기 내 먼 항해를 떠났던 1979년에서 4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구본창 작가의 작품은 국내외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되었고, 전시 역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작가가 그간 작업을 위해서 전국 곳곳을 찾아다녔고 세계 각지를 누비고 다녔으며, 원하는 대상을 만나기 위해서 수년에 걸친 기다림도 마다하지 않았던, 지난하지만 기꺼운 여정 끝에 다다른 눈부신 결과입니다. 그동안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기획자로 국내외 전시를 통해 한국 사진의 세계화에 이바지했고, 한국 사진계의 선배, 동료, 후배들의 작업을 적극적으로 해외에 알렸으며 시대를 앞서가는 실험적인 작품활동으로 사진을 현대미술의 장르로 확장해 온 구본창 작가의 회고전은 여러모로 유의미한 전시입니다. 


'구본창의 항해'를 따라 너와 나, 우리의 존재와 삶의 의미에 관해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 했다. 그러기가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 헤르만 헤세(1877-1962), 데미안 (1919)



일 분간의 독백

One Minute Monologue, 1980 - 1985

printed 1985

CE Cibachrome print

11 x 17 cm (4) (x 24)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MMCA Collection


사진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바로 정지된 시간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정지된 시간이라는 개념을 알지 못한다(정지된 물건이라 하더라도 사람의 시선은 끊임없이 움직이므로) 그래서 정지된 현실적인 상황이 담긴 사진은 기이하게 보인다.

그 기이한 모습이 찰라적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매우 편협한 사고를 만들어 내기도한다.

이런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는 사진을 작가는 4컷의 사진을 통해서 좀 더 살아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이러한 개념은 점점 더 후기로 갈수록 과감하게 시도되어진다.


재미있는 시도인것 같다.


사진에 질감을 더하는 시도 역시 무척 과감하게 느껴진다.

사진을 토대로 새롭게 꼴라주를 한 느낌이든다.





태초에 10-3

In the Beginning 10-3, 1995 - 1996

종이에 젤라틴 실버 프린트와 바느질

Gelatin silver photograph with thread on paper 177 × 480 cm



무엇보다 스케일에 놀라웠다. 게다가 바느질로 이어진 사진이라니, 정말 상상 하기도 힘들다.

1995년에 이런 작업을 했다는 상상을 해보니 더 놀라웠다.

전체 이어진 느낌은 부감의 형태로 마치 자기 자신의 팔과 다리를 보는 앵글이다.

제목에 '태초에'라고 지으신걸 보면 존재를 인식하는 순간을 포착한것일까?

굉장히 압도감을 주는 작품이었다.

In The Beginning 01


"존재했던 모든 생명체는 부패하고 사라지고 재생되고 순환한다. 그리고 그 시간과 삶이 지나간 자리에는 

상처와 흔적이 남는다. 나는 이 자국들을 더듬어 의미를 찾아내고 싶다.

단순한 풍경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그 너머에 존재하는 우주와 생명의 흔적을 발견하고 싶다.

나는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을 최소화하면서 렌즈 너머로 펼쳐진 화폭 안에 시적인 함축을 담으려 한다. 

생명의 숨소리가 들리는 순간들에 인위적인 파격을 가하지 않고 스트레이트하게 찍지만, 오히려 추상에 

가까워진 단순화된 이미지 속에는 더 깊은 공간과 많은 이야기와 흔적들이 담긴다."

- 구본창, 공명의 시간을 담다 (컬처그라퍼, 2014)


In The Beginning 02
In The Beginning 03
In The Beginning 04
In The Beginning 05
In The Beginning 06
In The Beginning 07
In The Beginning 08
In The Beginning 12-1
In The Beginning 13
In The Beginning 14


하나의 세계

구본창은 1992년 『조선일보 기사 「나비학자 석주명 () 유고집 완성』을 접하고 나비에 대한 연민을 느끼면서 이후 작업의 대상을 보편적 인간에서 곤충, 동물 등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로 확장해 <로스트 파라다이스>(1992), <굿바이 파라다이스〉(1993) 시리즈를 제작했다. 이어 그즈음에 접했던 전쟁, 재난을 반영한 〈재가 되어버린 이야기〉(1994-1995) 시리즈를 제작했는데, 이러한 무거운 주제를 포토그램 기법을 사용하거나 인화지를 불에 태우고 그을리는 등의 실험적인 방법을 사용해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표현했다. 특히 숨> (1995)

시리즈는 오랜 시간 병상에 누워 있는 그의 아버지 몸에서 서서히 근육이 사라지고 수분이 빠져나가는 모습, 눈도 뜨지 못한 채 가느다란 가까스로 내쉬는 숨, 생명의 안간힘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사람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그런데 정작 아버지의 죽음으로 관념에 머물던 죽음이 실체로 다가온 이후, 깊은 침잠의 시간을 보낸 뒤 제작한 작품<시간의 그림> (1998-2001), <리버런> (1998), <오션> (1999-2005), <화이트> (1999-2007), <자연의 연필〉(2000-2001), <스노우> (2001, 2011), <비누> (2004-현재) 시리즈는 오히려 자연과 삶의 순환을 담담하게 담고 있다.


굿바이 파라다이스 Blue, 1993




숨, 1995


굿바이 파라다이스 Box, 1993



탈, 1998-2003


현장에서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온 작품들이다. 우리나라 탈이 이렇게 멋졌나싶다.

흑백이라 더 강하게 느껴진것도 같다.


오 카리스마~


백자, 2004-2006


다양한 시도 끝에 이른 사진인것 같았다. 더이상 군더더기가 없고 망설임이 없어졌다.

단아한 자기의 모습처럼 시선도 단아하다.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훌륭한 전시를 무료로 볼 수 있다니 정말 행운이었다.

게다가 우연히 선생님도 보게되고(부끄러워 목례만 하고 지나쳤지만)

정말 감동적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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