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아트 뮤지엄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
1864-1901
유전적 결함과 유년 시절 두 번의 사고로 다리가 위축되는 장애를 가졌던 로트렉은 사냥이나 승마와 같은 역동적인 귀족 문화에 조화될 수 없었고, 대신 그림을 그리며 외로운 시간을 달랬다. 그는 가문의 영향력과 후원으로 당대 저명한 화가인 레옹 보나, 그리고 페르낭 코르몽에게 미술을 배웠다.
1880년대 중반 로트렉은 스승의 울타리와 이젤 페인팅에서 벗어나 몽마르트에 정착하고 작업실을 마련하여 카바레 유명 인사와 파리의 보헤미안들을 자유롭게 그렸다. 그는 첫 번째 석판화 포스터 작품 (물랑루즈: 라 굴뤼>(1891)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그 후 아리스티드 브뤼앙, 제인 아브릴, 이베트 길베르, 로이 풀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스타들의 개성을 간결하게 표현한 독창적인 화풍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또한 유명 인사뿐만 아니라 매춘부의 평범한 일상에 애착을 가지며 인간에 대한 비범한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로트렉은 동시대 다양한 층위의 문화와 예술에 직접 뛰어들어 세기말 회화의 다양성을 흡수하고 몽마르트의 쾌락과 자극을 받아들이며 즐겼다. 그러나 1891년부터 1901년까지 짧은 기간 동안 31점의 포스터를 제작하며 창작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알코올 중독과 잦은 매춘으로 1897년부터 건강이 크게 악화되었다.
결국 그는 1901년 9월 9일 지롱드에서 자신의 영원한 지지자인 어머니의 보살핌 아래 36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737점의 유화, 275점의 수채화. 369점의 판화 및 포스터. 그리고 4,784점의 드로잉을 남긴 그의 예술과 정신은 어머니의 뜻과 함께 세워진 알비 미술관을 주축으로 보전되고 있다. 로트렉은 현대 판화의 태동 속에서 석판화 광고 포스터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려 고급 미술과 저급 미술의 경계를 허물고 전위적인 구성과 실험적인 필치로 현대 회화의 도래를 촉진하는 데 기여한 예술가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의 예술은 귀중한 유산으로 전해지고 있다.
툴루즈-로트렉 :
몽마르트르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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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I DE
TOULOUSE-LAUTREC
THE STAR OF
MONTMARTRE
마이아트뮤지엄은 프랑스 아르누보 포스터 미술의 거장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의 탄생 160주년을 기념하여 《툴루즈-로트렉 : 몽마르트르의 별》 전시를 2024년 9월 14일부터 2025년 3월 3일까지 개최한다. 로트렉은 프랑스 귀족 가문의 출신 미술가로, 벨에포크' 시대 파리 밤 문화를 특유의 매혹적이고 도발적인 필체로 표현한 석판화가로 잘 알려져 있으며, 현대 그래픽 포스터의 선구자이자 세계 미술사의 위대한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화가, 판화가, 삽화가로 활동한 그는 특정 유파에 속하지 않고 당대 예술의 중심지였던 몽마르트에서 새로운 예술의 다양성을 흡수하며 독창적인 양식을 개척했다.
이번 전시는 로트렉의 심리적 결핍과 비운의 생애를 강조해 온 이전의 경향을 벗어나 그의 예술을 새로운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신체적 장애에도 개의치 않고 사람들과 교류를 즐긴 그의 호방함, 어떠한 유파에도 속하지 않으며 자유롭게 새로운 예술을 받아들인 그의 실험정신, 특히 화려함과 저급함 이면의 인간미를 관찰했던 그의 휴머니즘을 강조하고자 한다.
세기말 역동성과 휴머니즘이 맞물려 빚어낸 로트렉 예술의 비범함을 탐구하는 본 전시는 그가 몽마르트에서 탄생시킨 불후의 작품들과 함께 동시대 프랑스 아르누보 포스터의 황금기를 이끈 쥘 세레, 조르주 드 푀르, 앙리 가브리엘 이벨스, 테오필-알렉상드르 슈타인렌, 알폰스 무하를 포함한 13명의 예술가들의 작품을 망라하여 156점의 석판화 명작을 선보인다.
바빌론 달레마뉴 Babylone d'Allemagne, 1894
<바빌론 달레마뉴>는 프랑스의 소설가 빅토르 조제의 동명의 소설 『바빌론 달레마뉴』(1894) 출판을 홍보하기 위해 제작된 작품이다. 이 저서는 독일 부르주아 사회를 풍자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로트렉은 이를 광고하는 포스터에 총검을 들고 행진하는 독일 병사들을 표현하였다. 그는 교차되는 대각선의 구도로 역동적인 공간감을 조성하였고, 특유의 '크로핑' 기법으로 화면 상단의 기마병 행렬과 행인들의 움직임을 강조했다. 또한 전경의 말과 기병을 희게 칠하고 후경의 보초를 옅은 음영으로 표현함으로써 전경과 후경의 관계를 명료하고도 감각적으로 표현하였다. 이러한 표현법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야 하는 포스터의 특징에 잘 부합하였다.
크로핑(Cropping)
크로핑은 이미지를 잘라내어 특정 부분만을 강조하거나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여 전체적인 구성에서 집중도를 높이는 기법으로, 일본 목판화의 구성으로부터 차용되었다.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고 진행하는 아날로그 포스터 제작의 모습을 보니 너무 새롭습니다.
폰트도 모두 그려야 하는 시대에서의 디자인은 도리어 더 자유로워 보입니다.
일러스트 수준이 높으니 글자마저도 그림처럼 느껴지네요~
제인 아브릴 Jane Avril, 1893
최고의 무희들만 모이는 물랭루주. 이곳의 무대에는 매일 밤, 프랑스에서 가장 빠른 춤을 추는 이들이 역동적인 무대를 만들어냈습니다. 그중에서도 최고는 제인 아브릴이었죠. 물랭루주 최고의 댄서로 이름 높았던 그도 로트렉처럼 선천적인 병이 있었습니다. 일종의 틱장애와, 몸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고 흔드는 무도병(헌팅턴 병) 증세를 보였던 제인 아브릴. 그는 치료를 받던 중, 의사로부터 아예 춤을 춰보라는 권유를 받고 댄스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치료를 위해 시작한 춤이었는데 거기에 그녀의 모든 재능이 있었던 것이죠.
사람들은 그녀가 춤을 줄 때면 정말이지 다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라며 혀를 내둘렀는데요. (물랭루주가 술을 파는 곳이고 대부분 만취를 목적으로 온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로트렉도 그녀의 춤에 푹 빠져 버립니다. 마침내, 자신이 진짜 담고 싶은 움직임을 가진 이를 만난 것이 있죠.
이때부터 로트렉은 제인 아브릴을 중요한 모델로 삼습니다. 그리고 빠른 속도의 드로잉으로 그녀를 그리기도 하고, 때로는 물랭루주의 포스터 작업을 할 때, 제인 아브릴을 담기도 했죠.
현대 포스터의 아버지라고 한다면 누구나 로 트랙을 손에 꼽습니다. 그만큼 로트렉은 순수미술에 해당하는 작품뿐 아니라, 물랭루주를 비롯해 또 뮤지 션의 공연 포스터와 같은 작품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화가였기 때문에 포스터 도 하나같이 그때는 보지 못했던 혁신적인 그림이었죠. 예를 들어 포스터의 글씨가 인물의 뒤에 와서 겹쳐 보이게 한다든가, 같은 타이포를 반복해 그린다거나 하는 식이었습니다.
지금 봐도 아름다운 그 포스터를 얻고자 당시의 사람들도 일부러 공연을 찾았을 정도니 그의 작품에 대한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상상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대중들에게만 인정받은 것은 물론 아니었습니다.
로트렉은 1900년 만국박람회 포스터 부분에서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을 정도였으니까 말이죠.
아리스티드 브뤼앙, 자신의 카바레에서 Aristide Bruant dans son Cabaret, 1893
〈아리스티드 브뤼앙, 자신의 카바레에서>는 파리의 유명 인사들 중 하나인 카바레 가수 아리스티드 브뤼앙의 공연을 홍보하는 작품이다. 브뤼앙은 몽마르트 언덕 기슭에 카바레 '르 미를리통'을 열었고, 1885년에 그곳에 방문한 로트렉과 친분을 쌓게 되었다. 그는 큰 키에 나폴레옹을 닮은 옆모습, 교활한 눈매와 냉소적인 입술을 가지고 있었고, 벨벳 의상과 무거운 부츠를 착용하였으며, 외출할 때에는 망토가 달린 외투에 넓은 챙 모자를 착용했다고 전해진다.
브뤼앙의 특징을 잘 녹여내고 있는 본 작품은 공연자가 자신의 이미지로 포스터를 의뢰한 첫 사례이기도 했다. 로트렉은 브뤼앙의 독특한 스타일뿐만 아니라 카바레의 특별한 분위기에도 매료되었는데, 그가 몽마르트의 문화를 이해하고 서민층의 어두운 단면을 받아들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디방 자포네 Divan Japonais, 1892-1894
〈디방 자포네>는 프랑스의 문필가이자 극작가인 에두아르 푸르니에가 자신의 카바레 '디방 자포네'를 홍보하기 위해 로트렉에게 의뢰한 작품이다. 중앙에 앉아 있는 인물은 카바레의 스타 무용수 제인 아브릴이며, 그녀의 오른쪽에는 프랑스 문예 잡지 '라 레뷔 바그네리안느'의 창립자 에두아르 뒤자르댕이 묘사되어 있다.
왼쪽 상단의 무대에서 공연 중인 얼굴 없는 여인은 그녀의 상징과도 같은 검은색의 긴 장갑을 통해 이베트 길베르임을 알 수 있다. 작품에 나타나는 단순화된 형태와 굵은 윤곽선, 기울어진 원근법적 구도, 그리고 길베르의 머리를 의도적으로 잘라내어 이목을 중앙에 집중시키는 대범한 구성은 일본 목판화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다.
당시 일본의 '우키요에' 그림 스타일이 인기가 많은 터라 그런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단두대 앞에 서서 Au Pied de l'Échafaud, 1893
<단두대 앞에 서서>는 프랑스 신문 르 마틴에서 연재된 가톨릭 신부 라베 포레의 회고록 출판을 홍보하기 위해 제작된 작품이다. 저서는 교도소의 신부였던 라베 포레가 사형 참관인으로서 38명의 죄수를 단두대로 인도한 경험을 다루고 있으며. 본 작품은 사형수의 목을 단두대로 밀어 넣기 직전의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검은색 탑 햇에 가면을 쓴 듯한 얼굴의 집행자는 거대한 손으로 사청수의 어깨를 잡고 있는데, 이는 창백한 죄수의 모습과 대비를 이루며 권력관계를 강조한다. 그들 뒤로는 라베 포레로 추정되는 신부와 함께 총검을 든 기마경찰들의 실루엣이 배경에 벽을 형성하여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로트렉은 처형을 앞둔 긴박한 순간과 인물들 사이의 복잡한 감정을 강렬하게 표현함으로써 프랑스 사회의 어두운 측면을 조명했다.
콩페티 Confetti, 1894
<콩페티>는 결혼식이나 축제 등에서 사용되는 종이 조각을 홍보하는 포스터로, 영국의 제지회사 J.&E. 벨라로부터 의뢰를 받아 제작되었다. 작품 속 금발의 여성은 프랑스의 오페라 가수 잔느 그라니에이다. 그녀의 독특한 스타일과 카리스마에 매료된 로트렉은 그라니에를 모델로 한 작품을 다수 제작하기도 하였다. 종이 조각이 흩날리는 모습은 로트렉이 고안한 '크라쉬' 기법으로 표현되었는데, 이는 일본의 옻칠 기법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이었다. 경쾌한 필체로 쓰인'Confetti'는 이미지의 밝고 쾌활한 분위기를 더욱 강조하고 있으며, 밝은 표정의 모델과 간결한 색, 그리고 축제 느낌을 자아내는 크라쉬 기법과 잘 어우러진다.
크라쉬(Crachis)
크라쉬는 석판 위에 붓으로 잉크를 튀기는 기법으로, 미묘한 톤과 은은한 음영을 주거나 안개 낀 대기의 효과를 만드는 데 활용된다. 분무기나 에어브러시를 사용하여 세밀한 텍스처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물랑 루즈의 영국인 신사 L'Anglais au Moulin Rouge, 1892
<물랑 루즈의 영국인 신사>는 몽마르트의 카바레 물랑 루즈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남녀를 그린 석판화 작품이다. 콧수염을 기른 신사는 영국의 화가이자 로트렉의 절친한 친구였던 윌리엄 톰 워레너이다. 두 여성을 향해 쏠려 있는 남성의 자세와 게슴츠레한 눈매, 독특한 표정은 세 사람 사이 은밀한 대화가 오가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로트렉은 장면이 내포하는 성적인 분위기를 색상의 전략적 활용을 통해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단색의 실루엣으로 표현된 워레너와 다채로운 색으로 구성된 여성의 대비는 매력적인 여성을 향한 남성의 열망을 한층 더 강조한다.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필체의 얼굴 묘사에는 인물의 감정이 잘 드러나 있어 로트렉의 뛰어난 관찰력과 표현력을 엿볼 수 있다.
저녁의 라 굴뤼 La Goulue Les Soirs, 1891
<저녁의 라 글뤼>는 로트렉의 대표작 (물랑 루즈: 라 굴뤼>와 동일한 구성의 스케치 버전 석판화로, 카바레 스타 라 굴뤼와 그녀의 파트너 발랑탱 르 데소세를 묘사한 작품이다. 라 굴뤼는 캉캉을 추면서 발로 남성 관객의 모자를 벗기는 묘기를 보여주는 등 에너지가 넘치는 발차기로 유명했다. 작품에 그려진 라 굴뤼는 그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오른편에 눈에 띄게 튀어나온 턱과 매부리코를 가진 독특한 옆모습으로 표현된 발랑탱 르 데소세는 검은 양복에 모자를 쓰고 긴 팔과 긴 다리로 유연하게 춤을 추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그의 길쭉한 몸으로 표현되어 있다. 라 굴튀의 상반신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흑백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특히 로트렉은 검은색 선을 교차하는 '크로스 해칭' 기법을 통해 명암을 나타냈다.
크로스 해칭(Cross-hatching)
크로스 해칭은 평행선을 수직 또는 여러 방향의 선으로 교차하고 밀도를 조절하여 입체감과 음영을 나타내는 판화의 기법 중 하나이다.
제1부
보헤미안 BOHEMIAN, 1891~1894
19세기말 프랑스는 경치경제, 과학기술, 문화예술의 융성으로 화려한 시기를 맞이했다. 미술계에서는 일본 미술에 대한 관심으로 자포니즘이 유행하고, 새로운 예술 방식을 지향하는 아르누보 운동이 성행하였으며, 산업화의 석판 인쇄술의 발전으로 포스터 미술이 부흥하였다. 이 시기 수많은 예술가들이 파리 몽마르트에 모여들어 그 풍요로운 시대의 신기술과 예술 강정을 자유롭게 실험하였다.
이 근대 미술의 흐름 가운데 귀족의 신분으로 특유의 전위적이며 매혹적인 양식을 개적한 앙리드 툴루즈-로트렉이 있다.
1880년대 중반 로트렉은 몽마르트에 정착하고 작업실을 마련하였다.
유흥 문화가 성행한 이곳에서 로트렉이 자연스럽게 이끌린 대상은 무용수, 연예인, 카바레 가수 등 몽마르트의 유명 인사들이었다. 당대 자유로운 예술가들의 집결지였던 카바레 '물랑 루즈'의 홍보 포스터 제작을 의뢰받은 로트렉은 대담하고 파격적인 구도와 인물 표현이 특징적인 <물랑루즈: 라 굴튀>(1891)를 선보였다.
일본 판화 우키요에에서 볼 수 있는 비대칭의 대각선 구도, 무용수 '라 굴뤼'의 헤어스타일과 몸짓을 강조한 묘사, 생략과 강조를 통한 전경과 후경의 완급 조절, 그리고 간결한 색채의 대비까지 모든 면에서 파격적인 이 새로운 양식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유명 샹송 가수 아리스티드 브뤼앙의 특징적인 외형과 옷 스타일을 단순하고 감각적인 색채 및 구성으로 표현하였으며, 특히 서체를 이미지와 조화롭게 배치하여 현대적인 레이아웃을 선보였다.
본 장은 로트렉의 첫 번째 포스터 작품 (물랑 루즈: 라 굴뤼)의 스케치 석판화를 포함하여, 다양한 실험적 기법이 어우러진 초기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귀족 신분을 벗어나 스스로 보헤미안이 되었던 그는 특정 유파에 속하지 않았기에 그만큼 다양한 경향을 흡수하고 응용할 수 있었다. 일본 판화의 구성적 특징, 간결한 선과 평평한 색면, 아르누보 서체가 어우러진 로트렉의 실험정신이 깃든 작품들을 만나보자.
지친 에로스 Eros vanné, 1894
마지막 발라드 Ultime ballade, 1893
지혜 Sagesse, 1893
당신의 입 Ta Bouche, 1893
모자 디자이너 르네 베르 La Modiste, Reneé Vert, 1893
라 굴뤼와 데소세 La Goulue et Désossé, 1894
40대에 En Quarante, 1893
라 티쥬, 물랑 루즈 La Tige, Moulin Rouge, 1894
사진가 플 세스코 Le Photographe Sescau, 1894
(사진가 폴 세스코)는 로트렉의 친구이자 사진작가였던 폴 세스코가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모델을 촬영하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다. 친구들 사이에서 세스코는 여성을 밝히는 사람으로 평판이 나 있었는데, 보통 사진 촬영을 목적으로 여성 모델들을 자신의 스튜디오로 부른 다음 성적으로 유혹하곤 했다. 로트렉은 그러한 세스코의 면모를 은유적으로 담아냈다. 가면을 쓰고 붉은색의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모델은 그의 음흉한 시선을 피해 카메라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다. 로트렉은 그녀의 모자와 하반신을 의도적으로 잘라내는 방식으로 화면 바깥에 튀어나올 듯하게 묘사함으로써 서둘러 벗어나고자 하는 모습을 강조하였다.
작품에 쓰인 '9. Place Pigalle'은 세스코의 스튜디오가 위치한 피갈 광장 지역을 의미한다.
이 시대에 과감하게 트리밍을 할 수 있는 감각은 정말 멋집니다. 투시도 기법처럼 느껴지기도 하는군요.
레스탕페 오리지널 표지 Couverture de l'Estampe Originale, 1893
<레스탕페 오리지널 표지>는 당대 주요 화가들의 판화 작품을 담은 정기 간행물 「레스탕페 오리지널의 첫 호 발간을 위해 제작된 표지 작품이다. 파리 현대 예술가들의 작품을 수집하고 알렸던 레스탕페 오리지널은 당시 예술계를 잘 보여주는 예시로서 인기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판화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로트렉은 자신이 자주 방문했던 인쇄 공방을 배경으로 두 인물을 그려 넣었다. 프레스기를 돌리고 있는 남성은 판화 인쇄의 대가로 알려져 있었던 페레 코텔이며, 전경의 인쇄물을 살펴보고 있는 여인은 제인 아브릴이다. 본 작품에서 그녀는 격렬한 춤을 추는 카바레 무용수의 모습이 아닌, 감정가로서 진지하고 지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제2부
휴머니스트 HUMANIST, 1895~1897
파리에서 새로운 반향을 일으킨 로트렉은 살롱 데 상 갤러리와의 인연으로 전성기를 맞이한다. 1895년부터 1897년까지 로트렉의 작품을 전시한 살롱 데 상 갤러리는 1895년에 국제포스터 전시의 광고 포스터 제작을 의뢰했고, 이를 계기로 그의 예술은 더욱 널리 알려졌다. 로트렉은 대중이 쉽게 구입할 수 없는 고가의 석판화집을 출간하기도 하였는데, 1896년 살롱 데 상 갤러리에서 선보인 (엘르)는 로트렉의 판화집 중 걸작으로 손꼽힌다. 사창가에서 지내며 매춘부의 소박한 일상을 특유의 관찰력과 인간애로 담아낸 12점의 연작은 인간에 대한 로트렉의 예리한 통찰력을 잘 보여준다.
많은 예술가들이 매춘부와 같은 하층 계급의 사람들을 그렸지만, 같은 대상을 표현할지라도 로트렉의 시선은 인물의 특징과 그들의 숨겨진 애환에 향해 있었다. 로트렉의 인간 중심 회화는 창작 생애 전반에 걸쳐 두드러진다. 빈센트 반 고흐나 에드가 드가 등 인상주의 화가들과 교류하며 영향을 받기도 하였지만, 그는 풍경화보다는 인물을 그렸다. 첫 번째 포스터 〈물랑루즈: 라 굴뤼)에서도 라 굴뤼의 매력이 강조되는 구성에 주력하며 인물 중심의 표현을 선보였고, 일본 판화에 영감을 받은 '크로핑' 기법도 인물의 개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차원에서 차용하였다. 이러한 인본주의적 접근은 (엘르〉에서 절정으로 드러난다.
에로틱한 장면 속 매춘부가 아닌 일상의 평범한 순간을 영위하는 한 여인으로서 그들을 묘사한 로트렉은 신분과 계급의 굴레를 벗어난 온전한 인간다움을 화폭에 담았다.
로트렉은 1895년까지 지속적으로 여성 배우나 가수를 묘사하는 데 관심을 보였다. 특히, 그는 유명 가수 메이 벨포르와 무용수 메이 밀턴의 포스터를 제작했는데, 그들의 통상적인 이미지를 보여주기보다는 개인의 매력과 재능을 강조할 수 있는 필체와 컬러를 선택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본 장에서는 로트렉의 기법이 한층 더 원숙하게 표현된 작품들과 함께 그의 휴머니즘적인 면모를 발견할 수 있는 작품들을 만나보자.
목욕 중인 여인-욕조, 엘르 연작 Femme au tub-Le tub, Elles, 1896
앉아 있는 광대 (마드모아젤 차우카오) 엘르 연작
La Clownesse assise (Mademoiselle Cha-u-kao), Elles, 1896
카페 콩세르는 음식과 술을 곁들이며 라이브 공연을 즐길 수 있는 바를 지칭하며, 19세기말 파리의 인기 있는 유흥 시설 중 하나였다. 단이 높은 무대가 마련되어 있는 홀에서는 주로 샹송, 코미디 연극, 소규모의 앙상블 연주를 선보였고, 방문객들은 무대 앞 테이블에 앉아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편하게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가볍고 사교적인 분위기를 띠고 있었던 카페 콩세르는 카바레나 극장에 비해 일반 대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에, 파리의 중산층 시민들이 즐겨 찾는 장소가 되었다. 특히 카페 콩세르는 로트렉을 비롯하여 에드가 드가, 에두아르 마네, 오노레 도미에 등 수많은 예술가, 문필가, 음악가들에게 좋은 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벨에포크 시대 파리의 역동적이고 활기찬 삶과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장소였던 카페 콩세르는 제인 아브릴, 아리스티드 브뤼앙, 코디유 등 당대 스타들이 거쳐가면서 파리의 대중음악과 연극 예술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앨범, 카페 콩세르 Album, Le Café Concert, 1893
앙리 가브리엘 이벨스와 로트렉
Henri-Gabriel Ibels and Toulouse-Lautrec
판화집 (카페 콩세르)는 프랑스의 화가 앙리 가브리엘 이벨스와 로트렉의 작품을 한데 엮어놓은 판화 작품집이다. 당대 프랑스 예술가들의 판화집을 발간했던 정기 간행물 레스탕페 오리지널이 출간하였으며, 작품집 안에는 두 예술가의 판화 11점씩 총 22점의 작품이 담겨 있다. 그들은 당시 유명했던 카바레 스타들의 모습을 초상화로 그리며 세기말 파리의 화려한 밤 분위기를 기록했다.
(표지, 카페 콩세르)에는 이벨스가 그린 석판화가 사용되었다.
앙리 가브리엘 이벨스는 책과 악보의 표지 삽화, 광고 포스터 작업에 주력한 석판화가로,
1890년대 프랑스의 저명한 예술가 중 한 명이다. 파리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던 로트렉과 이벨스는 1891년 파리의 르 바크 드 부테빌에서 열린 《인상주의와 상징주의 화가들))에 함께 참여하면서 친분을 이어갔다. 두 사람 모두 '레스탕페 오리지널'에 작품을 실었으며, 당시 파리의 문화 예술에 대한 공통의 관심사를 바탕으로 1893년에는 판화집 (카페 콩세르)를 공동 제작하여 출간하였다.
메비스토, 카페 콩세르 연작 Mévisto, Le Café Concert, 1893
정규 에디션 표지 석판화 (카페의 웨이터)
Lithograph for the Cover of the Regular Edition (Serveur dans le café), 1893
미국인 가수, 카페 콩세르 연작 Chanteur Américain, Le Café Concert, 1893
메리 해밀튼, 카페 콩세르 연작 Mary Hamilton, Le Café Concert, 1893
에드메 레스코, 카페 콩세르 연작 Edmée Lescot, Le Café Concert, 1893
제인 아브릴, 카페 콩세르 연작 Jane Avril, Le Café Concert, 1893
이베트 길베르의 옆모습, 카페 콩세르 연작 Profil d'Yvette Guilbert, Le Café Concert, 1893
관중, 카페 콩세르 연작 Une Spectatrice, Le Café Concert, 1893
앙바사되르 카바레의 두카레, 카페 콩세르 연작 Ducarre aux Ambassadeurs, Le Café Concert, 1893
표지, 카페 콩세르 Couverture, Le Café Concert, 1893
마담 압달라, 카페 콩세르 연작 Madame Abdala, Le Café Concert, 1893
프티 카지노의 코디유, 카페 콩세르 연작 Caudieux-Petit Casino, Le Café Concert, 1893
아리스티드 브뤼앙, 카페 콩세르 연작 Aristide Bruant, Le Café Concert, 1893
파울라 브레비용, 카페 콩세르 연작 Paula Brébion, Le Café Concert, 1893
전체적으로 참 탐나는 드로잉입니다. 보고 있으면 절로 그림이 그리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표지, 판화집 엘르 Couverture, Elles, 1896
표제 삽화, 판화집 엘르 Frontispiece, Elles, 1896
(엘르) ELLES
프랑스어로 '여인들'을 의미하는 (엘르)는 로트렉이 1892년에서 1895년 사이에 종종 파리의 사창가에서 지내며 매춘부의 모습을 주의 깊게 관찰하여 그린 판화집이다. 19세기 후반 에두아르 마네가 직업여성을 작품에 담은 이후, 이러한 노골적인 이미지들이 에드가 드가를 포함한 다양한 예술가들로부터 삽화나 판화로 제작되어 왔고, 미술시장과 부르주아 남성들 사이에서 유통되었다.
(엘르)는 미술상이자 에로틱한 판화 작품들을 주로 출판했던 귀스타브 펠레의 의뢰로 제작되었으며, 동일한 이미지가 채색 및 흑백으로 인쇄된 표지와 표제 삽화를 포함하여 총 12점의 판화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목판화로 제작된 일본의 춘화집의 구성과 유사하다. 하지만 노골적인 성행위를 묘사하였던 일본 춘화집과 달리, 로트렉은 자신이 직접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경험했던 매춘부 여성의 일상생활을 친밀하게 묘사하였다.
코르셋을 입는 여인, 엘르 연작 Femme en corset-Conquête de passage, Elles, 1896
머리 빗는 여인-미용, 엘르 연작 Femme qui se peigne-La coiffure, Elles, 1896
세수하는 여인-화장실, 엘르 연작 Femme qui se lave-La toilette, Elles, 1896
거울 보는 여인-손거울, 엘르 연작 Femme à glace-La glace à main, Elles, 1896
쟁반을 들고 있는 여인-아침 식사 (바롱 부인과 마드모아젤 포포), 엘르 연작
Femme au plateau-Petit déjeuner (Madame Baron et Mademoiselle Popo), Elles, 1896
잠자는 여인-기상, 엘르 연작 Femme Couchée- Réveil, Elles, 1896
침대에 누워 있는 여인의 옆모습 - 새벽, 엘르 연작 Femme au lit, profil-Au petit lever, Elles, 1896
기대어 있는 여인-피로, 엘르 연작 Femme sur le dos-Lassitude, Elles, 1896
마르셀 렌더의 흉상 Mademoiselle Marcelle Lender, en buste, 1895
서 있는 마드모아젤 렌더 Mademoiselle Lender debout, 1895
메이 벨포르, 프티 카지노 May Belfort, Petit Casino, 1895
물랑 루즈에서의 춤 La Danse au Moulin Rouge, 1897
그랜드 로지 La grande loge, 1897
콘서트에서 Au Concert, 1896
왕족의 서사시 Idylle Princière, 1897
요트에서 우연히 만난 54호 선실의 여행객 La Passagère du 54-Promenade en Yacht, 1896
라 레뷔 블랑쉬 La Revue Blanche, 1895
<라 레뷔 블랑쉬>는 1890년대 프랑스 예술•문예 잡지 [라 레뷔 블랑쉬]를 홍보하기 위해 제작된 작품이다. 작품 속 여인은 [라 레뷔 블랑쉬]의 편집장 타데 나탕송의 아내, 미시아 나탕송이다. '파리의 여왕'이라고 불릴 만큼 매력적인 여성이었던 그녀는 재능 있는 피아니스트이자 당대 많은 예술가들의 후원자였다. 미시아가 샹젤리제 거리에 위치한 아이스링크 '팔레 드 글라세'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모습을 그린 본 작품은 다리 부분을 크로핑한 파격적인 화면 구성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독특한 구도는 로트렉 작품의 특징이다. 깃털이 달린 모자, 모피 머플러, 방한용 토시, 드레스의 패턴 등 장식적인 묘사는 상류층 여성으로서 미시아의 지위를 반영한다.
메이 밀턴 May Milton, 1895
모던한 기술자 L'Artisan Moderne, 1896
〈모던한 기술자>는 로트렉이 그래픽 아트, 판화 서적의 출판업자이자, 동명의 인테리어 장식품 가게를 운영했던 디자이너 앙드레 마티에게 선물한 작품이다. 얇은 네글리제를 입고 침대에 누워 있는 여인은 유혹하듯 의사로 보이는 인물을 맞이하고 있다. 침대 위 강아지의 엉덩이와 치켜 올라간 꼬리, 인물들의 눈빛과 표정 등 에로틱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장면은 로트렉이 기술자의 방문을 '의사의 왕진'이라는 주제로 패러디한 것이다.
오른편의 인물은 사실상 의사가 아니라 기술자이며, 양손에는 진찰 도구가 아닌 망치와 작업 도구가 들려 있다. 로트렉은 마티의 사업 홍보를 위한 포스터임에도, 이를 직접적으로 광고하기보다는 관련 없는 흥미로운 이미지를 제시하여 보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재미를 주고자 했다.
에글랑틴 무용단 La Troupe de Mademoiselle Eglantine, 1896
(에글랑틴 무응답〉은 캉캉의 인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인기 무용수였던 에글랑틴 드메이와 물랑 루즈 출신이었던 세 명의 무용수가 함께 창단한 4인조 무용단을 그린 작품이다. 작품 속 무용수는 왼쪽부터 제인 아브릴, 클레오파트라, 에글랑틴 드메이, 가젤이다. 무응답의 영국 투어 공연에 대한 홍보 포스터 제작을 의뢰받은 로트렉은 자신만의 독특한 화면 구성을 통해 무음수들의 격렬한 동작을 생생하게 담아 아름다움과 역동성을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의 이번까지도 대충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를 가장 잘 드러낸 것이 각 인물들의 어둡고 냉랭해 보이는 표정이다. 이는 영국 투어 중 그들 사이에서 벌어진 경쟁의식 심리를 반영한 것이며, 로트렉은 이러한 상황을 유퍼러스하게 그려냈다.
오스카 와일드와 로망 쿨루스 Oscar Wilde et Romain Coolus, 1896
방탕 Débauché, 1896
로열 거리의 아이리시 아메리칸 바, 챕북 Irish American Bar, Rue Royale, The Chap Book, 1895
나비 Les Papillons, 1895
밤장수 La marchand de marrons, 1897
시시 로프터스 Cecy Loftus, 1895
저택의 여인 혹은 종소리 La Châtelaine ou le Tocsin, 1895
〈저택의 여인 혹은 종소리)는 프랑스 라 데페쉬 신문사의 툴루즈 지사에서 편집장을 맡고 있던 아르튀르 윅의 의뢰를 받아 제작한 작품으로, 쥘 가스티네의 고딕 소설 [종소리} (1895)를 홍보하는 포스터이다. 작품 속 넋이 나간 듯한 여인이 숲길을 따라 유령처럼 배회하는 장면에 푸른색의 색감이 더해져 고딕 소설 특유의 무겁고 공포스러우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나타낸다. 그 뒤로 머리와 꼬리를 아래로 늘어뜨린 채 힘없이 여인을 따르는 개는 우울한 감정을 암시한다.
제목의 'Tocsin'은 '위급한 상황을 알리는 종소리'를 의미하며, 이를 통해 무섭고 위험한 사건이 일어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신사와 숙녀 Un Monsieur et une Dame, 1895
비엔나 여인 엘사 Elsa, Dite la Viennoise, 1897
성난 소 La vache enragée, 1896
제3부
몽마르트의 별 STAR OF MONTMARTRE, 1898~1900
로트렉에게 몽마르트는 예술적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매춘과 음주에 취약하게 만든 곳이기도 하였다. 1897년부터 로트렉은 알코올 중독과 잦은 매춘으로 병원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1901년에는 다리가 마비되기 시작했고, 손에는 경련이 일어나 도저히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 시기 그는 1872년에 아버지와 함께 관람했던 서커스를 회상하면서 그 장면들을 색연필로 담아내며 그림에 대한 열정을 이어갔다.
로트렉은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 포스터 부분의 심사위원을 맡고, 파리와 보르도의 전람회에 작품을 출품하기도 하면서 예술과 삶에 대한 불꽃이 소멸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로트렉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영원한 지지자였던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1901년 9월 9일 지롱드에서 36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화려하지만 짧았던 19세기말의 덧없는 시간과 닮아 있는 로트렉의 예술과 생은 오늘날 귀한 유산으로 전해진다. 로트렉은 근대 판화의 태동 속에서 석판화 광고 포스터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려 고급 미술과 저급 미술의 경계를 허물고, 혁신적인 서체 배치로 현대 그래픽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으며, 전위적인 구성과 실험적인 필치로 현대 회화의 도래를 촉진하는 데 기여했다.
화려한 몽마르트의 별들이 지닌 슬픔과 유머를 세상에 직접 뛰어들며 표현하였던 그는 이제 근현대 미술사의 별이 되어 오늘날을 조용히 비춘다. 특정한 이념과 유행을 좇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철학으로 인간사의 뒤안길을 관찰한 로트렉은 그 어떠한 지적 피력 없이 인간의 가장 인간다운 순간을 그리는 데 전념했다. 본 장에서는 로트렉의 원대한 실험정신과 인본주의적 통찰력이 빚어낸 그의 창작 생애 후반기 판화 작품과 다양한 삽화 작품들을 만나보자.
전시회 초대장 Invitation à une Exposition, 1898
사랑에 빠진 니농 드 랑클로 견본 표지
Couverture pour L'Exemple de Ninon de Lenclos Amoureuse, 1898
이베트 길베르-표지 Yvette Guilbert - Couverture, 1898
이베트 길베르 - 메닐몽탕 드 브뤼앙 Yvette Guilbert - A Menilmontant de Bruant, 1898
이베트 길베르 - 링거 거 루 Yvette Guilbert - Linger, Longer, Loo, 1898
이베트 길베르 - 라 글루를 부르며 Yvette Guilbert - Dans la Clu, 1898
이베트 길베르 YVETTE GUILBERT
<이베트 길베르>는 세기말 카페 콩세르의 아이콘이었던 가수 이베트 길베르를 그린 판화집이다. 나른한 표정의 얼굴, 눈에 띄는 목소리, 현대적인 노래들로 줄곧 만석의 공연장에서 노래해 온 길베르는 파리의 밤 문화를 그린 판화가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로트렉의 오랜 뮤즈 중 한 명이었다.
판화집에는 표지와 표제 삽화, 그리고 9점의 드로잉 석판화가 포함되어 있다. 로트렉은 화려한 분위기를 자아냈던 이전의 포스터 작품들과 달리, 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게 전달하기 위해 전신을 묘사하기보다는 얼굴을 표현하는 데 집중하였다. '메닐몽탕 드 브뤼앙, '링거 거 루, '라 글루' 모두 길베르가 실제로 부른 노래의 제목이다. 그녀의 공연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관람하였던 로트렉은 마치 무대에서의 모습을 그대로 포착한 듯한 묘사로 작품에 현장감을 더하였다.
앨범, 서커스에서 Album, Au Cirque, 1899
서커스에서 AU CIRQUE
(서커스에서)는 1899년 로트렉이 신경쇠약과 알코올 중독으로 병원에서 머무르는 동안 그린 마지막 판화집이다. 어린 시절부터 정기적으로 아버지와 함께 관람하곤 했던 서커스는 로트렉에게 있어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주제였으며, 1890년대에도 자주 관람하면서 곡마사와 동물 조련사, 광대 등의 공연자들에게 매력을 느꼈다. 로트렉은 병원에 자신을 찾아온 친구이자 미술품 상인 모리스 주아양에게 미술도구를 받아 기억을 토대로 그림을 그렸다. 직접 보고 그리지 않았음에도 인물의 동작과 동물의 형태 묘사가 마치 공연장에서 생생하게 포착한 듯이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다.
(서커스에서)는 중 39점의 석판화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의 친구 주아양에 의해 화집으로 출판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표지, 서커스에서 Couverture, Au Cirque, 1899
마부, 서커스에서 연작 Jockey, Au Cirque, 1899
자유로운 말, 서커스에서 연작 Chevaux en liberté, Au Cirque, 1899
광대 조련사, 서커스에서 연작 Clown dresseur, Au Cirque, 1899
공중 곡예, 서커스에서 연작 Voltige, Au Cirque, 1899
줄타기 곡예사, 서커스에서 연작 La Danseuse de corde, Au Cirque, 1899
동물 조련사, 서커스에서 연작 La Dresseuse d'animaux, Au Cirque, 1899
말 조련, 서커스에서 연작 Cheval pointant, Au Cirque, 1899
훈련받는 말과 원숭이, 서커스에서 연작 Cheval et Singe dressés, Au Cirque, 1899
공중 그네, 서커스에서 연작 Le Trapèze volant, Au Cirque, 1899
자유로운 코끼리, 서커스에서 연작 Éléphant en liberté, Au Cirque, 1899
파드되, 서커스에서 연작 Le Pas de deux, Au Cirque, 1899
안장에 앉아 묘기 부리는 곰, 서커스에서 연작 Travail de l'Ours sur le panneau, Au Cirque, 1899
오뜨 에꼴-스페니시 워크, 서커스에서 연작 Haute École-Le Pas espagnol, Au Cirque, 1899
어릿광대 여인, 서커스에서 연작 Clownesse, Au Cirque, 1899
오뜨 에꼴 곡마사-르 포인타주, 서커스에서 연작 Écuyère de Haute École-Le Pointage, Au Cirque, 1899
곡예사, 서커스에서 인자 Travail de tapis, Au Cirque, 1899
오뜨 에꼴 곡마사-인사, 서커스에서 연작 Écuyère de Haute École-Le Salut, Au Cirque, 1899
오뜨 에꼴 곡마사-2인조, 서커스에서 연작 Écuyère de Haute École-Le Tandem, Au Cirque, 1899
안장 없이 곡예하는 사람, 서커스에서 연작 Travail sans selle, Au Cirque, 1899
무대 입장, 서커스에서 연작 Entrée en piste, Au Cirque, 1899
안장 위 곡마사 (이 아이는 착해요, 아가씨), 서커스에서 연작
Écuyère de Panneau (Elle est gentille, la demoiselle), Au Cirque, 1899
회상, 서커스에서 연작 Le Rappel, Au Cirque, 1899
심부름하는 작은 아이 Le Petit Trottin, 1898
미용사, 테아트르 리브르 프로그램 Le coiffeur-Programme du Théâtre-Libre, 1898
작은 영국 소녀 Petite fille anglaise, 1899
선원의 노래 La Chanson du Matelot, 1899
제인 아브릴 Jane Avril, 1899
<제인 아브릴>은 로트렉이 신경쇠약과 알코올 중독으로 프랑스의 뇌이쉬르센에 있는 정신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오랜 친구이자 뮤즈였던 제인 아브릴의 사진을 보며 그린 작품이다. 깃털이 달린 모자를 손으로 받치며 몸을 구부리는 아브릴의 모습은 마치 몸을 감고 올라오는 뱀 형상의 아플리케 장식을 보고 놀라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보인다.
로트렉은 검은 드레스를 뱀 장식을 통해 감싸며 아브릴의 날씬한 몸을 부각하고, 뒤틀어진 자세를 강조하였다. 파란색과 노란색의 그라데이션이 탁월하게 표현되어 있는 장식은 로트렉의 걸출한 석판화 기술을 보여주는데, 그러한 점에서 본 작품은 아르누보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힌다.
메인으로 뽑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재미있기도 하고 매력적이기도 한 일러스트입니다.
우와 실제 포즈와 똑같네요. ㅋㅋㅋ
학생들의 무도회에서 Au Bal des Etudiants, 1900
제4부
프랑스 아르누보 포스터 FRENCH ART NOUVEAU POSTERS
로트렉과 같은 시대를 풍미하며 프랑스 아르누보 포스터의 황금기를 이끈 예술가들이 있다. 파리에 화려한 색채의 대형 포스터를 가장 먼저 선보였던 쥘 세레는 로트렉보다 앞서 1889년에 물랑 루즈의 개업 포스터를 그렸다. 그는 현란한 색채와 아르누보 양식의 선묘로 묘사된 익명의 여성 이미지로 물랑 루즈의 흥겨움을 표현했는데, 이는 라 굴루를 주인공으로 한 로트렉의 인물 표현 방식과 흥미로운 대조를 이룬다. 짧은 주기로 교체되는 거리 포스터를 '덧없는 순간의 예술'이라 간주할 수 있을 만큼 포스터 매체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세레는 로트렉을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포스터 미술의 지평을 열어주었다.
프랑스는 16세기로의 전환기에 서체 위주의 포스터를 도입하였으나, 이미지와 서체가 어우러진 포스터는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보편화되었다. 석판화는 1815년에 프랑스에 도입되었으며, 1830 년대에 도서 광고 포스터가 흑백의 석판화로 종종 제작되었다. 세레는 1866년에 개인 작업실에 최신 석판화 인쇄기를 들여 다양한 실험을 통해 예술적인 포스터를 창작하였다. 그는 총 세 개의 석판만을 사용하여 빨강, 검정, 그리고 주황색에서 파란색으로의 그라데이션 색감을 적용하였는데, 이는 보다 신속하고 저렴하게 채색 포스터를 제작할 수 있는 혁신을 가져왔다. 체코 출신의 화가인 알폰스 무하는 파리에서 제작한 첫 포스터로 큰 주목을 받았고, 특유의 장식성이 풍부한 무하 스타일'로 명성을 떨쳤다. 스위스 출신의 테오필-알렉상드르 슈타인렌은 로트렉과 마찬가지로 인상주의 화가들과 친분을 쌓아 순수 미술과 상업 미술에서 큰 두각을 나타내며 프랑스 예술계에 이름을 알렸다.
벨에포크 시대에 융성한 산업 분야는 더 많은 예술가들이 광고 포스터를 비롯한 상업 미술에 도전할 수 있게 했다. 대중의 시선을 끌고 정보를 효율적으로 전달할 필요성이 있는 포스터의 특징 때문에 예술가들은 종래의 정형화된 양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실험적인 기법을 적용하고 다채로운 스타일을 선보일 수 있었다. 평면성과 강렬한 색채, 그리고 짧은 수명을 바탕으로 변형을 거듭하는 포스터 미술의 특징은 현대 미술의 진화를 촉진시켰다. 마지막 장은 19세기 말 파리 시각 예술 문화의 중심에 있던 포스터 미술의 발전 역사와 다양한 조형미를 다룬다. 로트렉에 비해 당대 프랑스 포스터 예술가들은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본 장에서는 모티프와 매체, 그리고 근대적 화풍 면에서 로트렉의 예술과 유사성을 보이면서도 고유의 미감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그들의 작품을 살펴보자.
쥘 세레 Jules Chéret
캥키나 뒤보네 Quinquina Dubonnet ca. 1893
쥘 세레 Jules Chéret
팔레 드 글라세 Palais de Glace, 1893
쥘 세레 Jules Chéret
물랑 루즈 무도회 Bal au Moulin Rouge, 1889
쥘 세레 Jules Chéret
자르댕 드 파리 Jardin de Paris, 1897
꼭두각시 극장 Théâtre les Fantoches, 1900
쥘 세레 Jules Chéret
오페라 무대 뒤 Les Coulisses de l'Opera, 1895
<오페라 무대 뒤>는 파리 그레뱅 박물관에서 선보인 동명의 공연을 홍보하는 광고 포스터이다.
그레뱅 박물관은 19세기 프랑스의 풍자화가였던 알프레드 그레뱅이 1882년경에 설립한 밀랍 인형 박물관이었는데, 그는 박물관 내에 있는 강당을 공연장으로 활용하며 부수입을 마련하였다.
전경에는 노란색 의상의 발레리나가 이목을 짐중시키며, 그 뒤로 흐리게 표현된 다른 두 명의 발레리나는 중앙의 소녀와 동일 인물로 보인다.
쥘 세레는 마치 스냅샷을 찍듯 그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포착하였다. 배경 속 양팔을 들어 올려 회전하는 인물 역시 역동적인 분위기를 나타낸다.
리디아 Lidia, 1895
쥘 세레 Jules Chéret
삭솔레인 Saxoléine, 1900
앙리 가브리엘 이벨스 Henri-Gabriel Ibels
매일 저녁, 이렌 앙리 Tous les Soirs, Irène Henry, 1894
앙리 가브리엘 이벨스는 1890년대 프랑스의 저명한 석판화가이자 삽화가이다. 줄리앙 아카데미에서 수학한 후, 폴 세뤼지에 등 동료 화가들과 함께 나비파를 결성하기도 했다.
드로잉과 석판화 작업에 집중하였던 그는 판화. 책과 악보 등의 표지 삽화, 광고 포스터 제작에 힘썼다.
<매일 저녁, 이렌 앙리>는 파리 상젤리제 거리의 야외 공연장 '파리지아나'에서의 공연을 홍보하는 광고 포스터이다. 마치 실제 밤의 공연장 무대에 서 있는 듯이 연출된 화면 구성을 보여주며, 비스듬히 숙인 여인의 옆모습 주변은 나무와 가스등 불빛, 저녁 하늘의 푸른색으로 채워져 있다. 인물과 배경의 평면적인 형태와 순수하고 신비로운 색감 표현은 나비파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앙리 가브리엘 이벨스 Henri-Gabriel Ibels
트리아농 콩세르-제인 드베리 Trianon Concert-Jane Debary, 1895
프레데릭-오귀스트 카잘 Frédéric-Auguste Cazals
제7회 살롱 데 상 전시회 Zème Exposition du Salon des Cent, 1894/95
프레데릭-오귀스트 카잘은 프랑스의 삽화가이자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프랑스의 시인 폴 베를렌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었으며, 1888년에는 문예 잡지 『르 파리 리테레르]를 창간하여 베를렌과 귀스타브 칸, 폴 아담 등 파리 문학계를 대표하는 시인들의 글을 실었다.
잡지를 통해 문학적 토론의 장을 마련하였던 그는 독학으로 예술가의 길을 걸으며 여러 문필가들의 저술에 삽화를 그리기도 하는 등 문학과 예술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본 작품은 제7회 살롱 데 상 전시회를 홍보하는 포스터로, 벽에 걸린 그림을 감상하는 두 인물이 등장한다. 빨간 머플러를 두르고 있는 전경의 인물은 베를렌이며, 뒤의 모자를 쓴 신사는 『상징주의 선언 을 발표하였던 장 모레아스이다.
아르센 에비니에 Arsène Herbinier
살롱 데 상 Salon des Cent, ca. 1899
아르센 에비니에는 프랑스의 여성 화가로, 삽화가이자 석판화가로 활동했다. 아르누보 디자인의 선구자인 외젠 그라세와 함께 회화와 드로잉을 공부했던 에비니에는 〈살롱 데 상)에 아르누보 양식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유려한 곡선과 덩굴식물 모티프. 섬세한 꽃무늬 장식을 조화롭게 구성하여 여인의 옆모습을 아름답게 표현하였다.
프랑스 예술가 협회에 참여하였던 그녀는 연례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해왔으며, 1909년에는 3등 메달을 받았다. 또한 파리 예술 문예 잡지 [라 플림」과 르 피가로」의 삽화 제작에도 참여하는 등 다방면에 활동하며 작업을 이어갔다.
폴 베르통 Paul Berthon
눈덩이 Le Boules De Neige, ca. 1900
폴 베르통 Paul Berthon
에글랑틴 Les Eglantines, 1900
폴 베르통 Paul Berthon
마그다의 책 Le Livre de Magda, 1898
플 베르통은 포스터와 석판화를 제작하였던 프랑스의 화가로, 외젠 그라세로부터 장식 미술을 배우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마그다의 책)은 프랑스 시인 아르망 실베스트르의 동명의 시집을 홍보하는 포스터이다. 베르통은 햇살이 반짝이는 들판에서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요정을 묘사함으로써 시집의 이야기를 시각화하였다. 작품의 양쪽 측면에는 "마그다의 책"과 "아르망 실베스트르의 시집"이라는 문구가 있으며, 하단에는 베르통의 작업실 위치인 "아틀리에 폴 베르통, 당페르 로슈로 가 22번지"가 새겨져 있다.
테오필- 알렉상드르 슈타인렌 Théophile-Alexandre Steinlen
M. 고홍의 첨탑의 미스터리 저널 Le Journal: Les Mystères de la Tour Pointue par M. Goron, 1899
테오필- 알렉상드르 슈타인렌 Théophile-Alexandre Steinlen
뱅잔의 멸균 우유 Lait pur stérilisé de la Vingeanne, 1894
테오필-알렉상드르 슈타인렌은 스위스 출신의 화가이자 판화가로, 1881년에 파리 몽마르트에 정착한 후 카바레 '르샤누아'에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사회주의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사회적 낙오자, 억압받는 사람들에 주목했고, 아이들, 동물, 애정과 도움이 필요한 모든 생명체를 작품에 담았다. 포스터 디자이너로서 슈타인렌은 따뜻하고 친밀한 화풍의 그림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우유 광고 포스터인 <뱅잔의 멸균 우유>는 우유를 마시고 있는 소녀 주위로 세 마리의 고양이가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다. 이는 슈타인렌이 자신의 어린 딸과 반려묘를 모델로 그린 것이다.
귀스타브 마리 Gustave Marie
에드몽 사고, 여성들을 위한 새해 선물 Edmond Sagot, Etrennes aux Dames, 1897
귀스타브 마리는 프랑스의 삽화가이자 포스터 디자이너로, 유머러스한 표현과 감각적인 구성을 보여준 예술가로 알려져 있다. 두 점으로 구성된 본 작품은 미술품 상인이었던 에드몽 사고가 자신의 인쇄소와 당해 출간한 책을 홍보하기 위해 의뢰한 포스터이다. 왼쪽에는 펜을 쥐고 도면을 제작하는 그리스 여인이 묘사되어 있고, 오른쪽에는 책을 읽는 여인이 묘사되어 있다. 여인이 읽고 있는 책은 1897년에 사고가 출판하였던 샤를 모리스의 저서 (파리 연감』(1897)이다. 마리는 포스터 상단에 여성들을 위한 새해 선물'이라는 문구를 통해 특히 여성 독자들을 겨냥하여 홍보하였으며, 모든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광고 효과를 더하였다.
마누엘 로브 Manuel Robbe
플래송 자전거 Plasson Cycles, 1896
마누엘 로브는 프랑스의 화가이자 판화가로, 광고 포스터는 물론 유화, 수채화, 파스텔화 등 다방면으로 작업한 예술가이다. 로트렉을 비롯한 19세기 프랑스 화가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1890년대에는 아르누보 판화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의 독특한 양식을 보여주는 (플래송 자전거)는 프랑스의 자전거 브랜드인 플래송사의 홍보 포스터로, 붉은색의 하늘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인물의 신체와 배경요소는 평평하고 단순하게 묘사되어 있는 데 반해 두 인물의 얼굴은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자전거 광고임에도 앞모습으로 일부만 묘사한 파격적인 구도 역시 독특한 특징을 보여준다. 작품 속 두 인물은 로브 자신과 아내로 알려져 있다.
조르주 드 푀르 George de Feure
로이 풀러 La Loie Fuller, 1895
조르주 드 푀르 George de Feure
파리 연감 Paris Almanach, 1894
조르주 드 피르는 프랑스의 아르누보 화가이자 디자이너이다. 그는 독립적으로 작업하면서 1890년대 초에 주목받기 시작했고, 1900년까지 수많은 포스터를 제작했다. 〈파리 연감)은 출판사를 운영하던 미술품 상인 에드몽 사고가 1895년에 출판한 에밀 구도의 저서 『파리 연감』의 광고 포스터이다. 『파리 연감』은 19세기 후반 파리의 사건들과 주요 문화 행사를 다룬 책으로, 드 피르는 도시를 누비며 전시회를 관람하는 젊은 여성 인물을 주인공으로 포스터를 제작했다. 어두운 단색으로 표현된 배경의 군중들 사이에서 다채로운 색으로 묘사된 여인은 그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현대적으로 변화하는 당대 파리의 독립적인 여성상을 반영한다.
알폰스 무하 Alphonse Mucha
트라피스트회 수녀 La Trappistine, 1897
역시 알폰스 무하, 포스터를 붙이자 마자 뜯어다가 집에 가져갔다는 소문이 이해가 됩니다.
포스터 자체거 너무 아름답습니다.
알폰스 무하 Alphonse Mucha
1900 파리 만국 박람회 오스트리아관 Österreich auf der Weltausstellung Paris 1900, 1900
살롱 데 상에서 대규모의 전시회를 열면서 파리 예술계 내 화제의 인물이 되었던 알폰스 무하는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의 광고 포스터와 오스트리아-헝가리 파빌리온 디자인 의뢰를 받았다. 본 작품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자국을 홍보하기 위해 무하에게 의뢰했던 박람회 포스터이다. 뒤에 있는 신비로운 인물에 의해 베일이 벗겨지고 있는 젊은 여인은 제국을 의인화한 것으로, 그녀의 의상에는 제국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오른편의 건물을 그린 삽화는 주요 오스트리아 관광지를 보여주며, 그 아래의 빈칸은 박람회 관객들을 위한 파리행 철도 안내 문구를 삽입하기 위해 비워둔 것이다.
알폰스 무하 Alphonse Mucha
살롱 데 상 Salon des Cent, 1896
알폰스 무하 Alphonse Mucha
뫼즈 지방의 맥주 Bières de la Meuse, 1897
물랑루즈에서 캉캉춤을 추는 무희즐의 영상 모습
이분 너무 좋아해서 마지막 큰 웃음짓고 갑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xrcnq6Uac4
마지막까지 즐겁게 웃으면서 봤습니다.
두꺼운 일러스트 책을 보고 나온 기분입니다. 참 즐거운 관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