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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 사진전 Shooting The-Pulitzer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by 상상만두


사진마다 역사의 현장을 보여주는 스토리가 담겨있다 보니 좀처럼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보고 나와서도 여운이 진하게 남았습니다.

사진마다의 저작권 때문에 사진 촬영이 안된다는 점이 조금 의아했지만 이해가 되긴 합니다.


현재까지의 사진부문 퓰리처상을 보고 싶으시다면

아래 링크로 들어가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직접 전시장에서 좀 더 큰 사이즈로 인화된 사진을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Pulitzer_Prize_for_Photography


https://www.pulitzer.org/


모든 작품들이 당연히 훌륭했는데 그중 제 마음을 움직인 사진만 10컷 정리해 봅니다.




베이브 루스의 은퇴식, 등번호 NO. 3

나다니엘 페인, 1949년 수상작

This photo won the 1949 Pulitzer Prize for photography © Nat Fein / Public Domain


모든 사진작가들이 위대한 미국 야구의 영웅 베이브 루스의 마지막 은퇴식을 기념하기 위해 얼굴을 찍기 위해 몰려 있었는데 오히려 그런 상식을 뛰어넘어 등번호 3번과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는 모습을 앵글로 잡는다는 아이디어는 마지막을 기념하기에는 아주 적절한 앵글인 것 같습니다.

이 한컷으로 충분한 스토리가 전달됩니다.




신발 바닥에 난 구멍

윌리엄 M 갤러거, 1952년 수상작

Gallagher's Pulitzer Prize-winning photograph of Adlai Stevenson


민주당 대선 후보인 애들레이 스티븐슨은 미시간 주지사 G. 메넨 윌리엄스 와 함께 연단에 앉아 있었다.

연단 바닥에 무릎을 꿇은 갤러거는 스티븐슨이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사진을 찍었는데, 그의 오른쪽 신발 바닥에 구멍이 드러났다. 갤러거의 자세 때문에 그는 먼저 셔터를 들여다보지 않고 이 사진을 찍어야 했다.


갤러거는 사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저널이 스티븐슨의 공화당 경쟁자인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를 지지했기 때문에 이 사진을 게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편집자에게 "방금 재미 삼아 이걸 끝냈어요. 공화당 신문에서는 사용하고 싶어 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하며 사진을 주었다.

그러나 저널은 이 사진을 1면에 실었다. 뉴욕 타임스는 갤러거의 사진을 "캠페인의 뛰어난 사진 중 하나"라고 썼습니다. 아마도 스티븐슨의 진지하고 귀족적인 이미지와 대조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파괴된 다리를 건너는 난민들의 비행

맥스 데스포, 1951년 수상작

Flight of Refugees Across Wrecked Bridge in Korea, Pulitzer Prize-winning photo by Max Desfor


1950년에 파손된 다리를 건너는 수백 명의 한국전쟁 피난민을 촬영한 사진으로 전쟁의 절박함을 포착해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PulitzerPrize-03.jpg Max Desfor’s 1951 photo of a pair of bound hands in the snow at Yangji, Korea, reveals the presence


맥스 데스포가 1951년에 찍은 양지의 눈 속에 묶인 손 한 쌍의 사진에는 퇴각하는 공산주의자들에게 총에 맞아 눈 속에 버려진 한국 민간인의 시신이 담겨 있습니다. 좌측 구멍은 아직 숨을 쉬고 있을 때 생긴 숨구멍이고 사진의 오른쪽에는 양손이 묶인 손끝만 보이는 상태입니다.

전쟁의 처참함을 간단하게 잘 보여주네요.



한국인들은 전쟁의 시작만을 기념해요.
어쩔 수 없어요 전쟁은 끝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 맥스 데스포


메모리얼 데이

안소니 수오, 1984년 수상작

PulitzerPrize-05.jpg 출처: www.pulitzer.org


메모리얼 데이에 비석을 끌어안고 주저앉아 우는 여성의 모습인데요

비석의 주인은 누구인지 알 수 없으나 세계 2차 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까지 참여하셨다고 비석에 새겨져 있네요. 누군가를 잃고 그 슬픔에 빠져 우는 모습이 그저 우리들의 모습과 같다고 느껴졌습니다.

머리 위로 쏟아지듯 줄지어 선 비석들의 무게가 너무나도 무거워 보인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기자가 되려 하지만,
때로는 카메라 렌즈에 그저 눈물이 가득합니다.

- 스탠 그로스펠드, 퓰리처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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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설일 수 없다. 그 순간이 사진 속 모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사진을 찍는다.

- 캐럴 구지, 퓰리처상 수상자



미국에서 21살의 참모습

존 카플란, 1992년 수상작

PulitzerPrize-07.jpg 출처: www.pulitzer.org


21세의 살인 용의자 사진을 찍던 존 카플란은 문득 그가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다면 어땠을까 상상했답니다. 그리고 21살의 다 양한 청년들을 기록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K마트에서 최저 시급을 받던 타나 메이오는 끊임없이 도전한 끝에 톱모델이 되었습니다. 헤비메탈 가수 필 안젤모는 한때 사고뭉치였지만, 유명 밴드 팬테라의 리드 보컬이 되었습니다. 그는 구렁이를 몸에 감고 사진촬영에 응했답니다. NFL 선수가 된 마크 스필들러는 세 경기 만에 부상으로 꿈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브라이언은 마약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게이바에서 손님을 접대하고 있었습니다. 카플란은 이들의 이야기를 진실과 열정으로 담아냈답니다. 사람에겐 자신을 알아주고, 세상에 전해 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라고 그는 말했답니다.



소녀 종군기자

마거리트 히긴스 홀 Marguerite Higgins 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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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종군기자는 전쟁터에서 활동하는 여성 종군기자를 가리킵니다. 전쟁터에서 활동하는 종군기자는 전투 상황을 보도하는 역할을 하며, 취재 도중 목숨을 잃는 경우도 많습니다.


1950년 도쿄 특파원으로 발령받고 부임하자마자 6.25 전쟁이 일어났으며 그녀는 재빨리 서울의 주한미군사고문단을 찾아갔다. 그다음 날 새벽에 한강인도교 폭파로 인해 나룻배를 이용해 어렵사리 서울을 탈출, 수원에서 미군 군용기를 타고 도쿄로 날아가 한강인도교 폭파 기사를 송고한 후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와 함께 한국에 다시 들어왔다. 그녀는 1950년 12월까지 6.25 전쟁을 취재하였고 1951년 1월 미국으로 귀국하였다. 귀국 후 6개월간의 취재활동을 바탕으로 집필한 비망록 <War in Korea>가 1951년 1월 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녀는 1951년 여름 퓰리처상을 수상했습니다.



한 엄마의 여정

르네 C 바이어 Renee C Byer

출처: www.pulitzer.org


신디 프렌치는 아이 다섯을 키우는 싱글맘입니다.

그녀의 10살 난 아들 데릭의 몸에선 암세포가 번지고 있었다.

그녀는 좌절하지 않고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6개월 뒤, 신디는 치료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열린 한 행사에서 '새크라멘토 비'의 사진기자 르네 바이어를 만났습니다. 신디는 바이어에게 아들과 함께 벌이는 암과의 싸움을 신문에 실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암 환자들의 진짜 삶이 어떤지 알려주고 싶어서였다고 합니다.


바이어는 의사를 만나러 오가는 모습과 고통스러운 치료과정, 그리고 새로운 치료를 거부하며 엄마에게 대드는 데릭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산더미처럼 쌓인 치료비와 신디의 다른 자녀들이 어떤 영향을 받는지에 대해 바이어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 이야기를 듣기 보면 명치를 맞는 듯한 충격을 받을 때가 있었습니다"

가끔은 웃는 날도 있었다.


NBA 스타플레이어이자 새크라멘토 킹스 출신의 농구선수 크리스 웨버가 '주말여행'을 선물해 주었다.

데릭과 그의 형제 미카는 주말을 유명 휴양지인 타호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소년들은 주말 내내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주문할 수 있었다.

희망으로 가득했던 주말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데릭은 11살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심각한 발걸음

폴 바티스, 1962년 수상작

"Serious Steps", Vathis's Pulitzer Prize-winning photograph


1961년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난 존 F 케네디 대통령(왼쪽)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오른쪽).


They looked so lonely.
(그들은 너무 외로워 보였다)

- 폴 바티스

캠프 데이비드는 전·현직 대통령의 회동 장소로도 활용됐습니다.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 때입니다. 취임 후 첫 군사 프로젝트인 피그만 침공 사건이 실패하자 케네디 대통령은 위기에 몰렸습니다. 피그만 침공 사건은 쿠바가 공산화되자 미국 정부가 쿠바 망명자들을 훈련시킨 뒤 피그만에 침투시켜 피델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키려던 계획이었지만 처참하게 실패했습니다. 국제적 망신을 당한 케네디 대통령은 피그만 계획 최초 수립자인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정치적 성향도, 연령대도 너무 다른 두 대통령은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났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은 헬기를 타고 온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착륙장에서 맞았습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상심한 케네디 대통령의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두 대통령은 오솔길을 따라 걸으며 캠프 데이비드 실내로 향했습니다. 서로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앞을 향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은 두 손을 양복 주머니에 넣고 얘기하고 있고,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모자를 들고 뒷짐을 진 채 듣고 있습니다. 인생의 실패를 경험한 아들과 묵묵히 듣는 것으로 위로를 전하는 아버지의 모습 같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두 대통령의 쓸쓸한 뒷모습을 찍은 AP통신의 폴 바티스 기자는 이 사진으로 이듬해 퓰리처상을 받았습니다. 사진 제목은 ‘Serious Steps.’(심각한 발걸음). 바티스 기자는 “그들은 너무 외로워 보였다. 세상의 모든 짐을 진 듯이 보였다”라고 촬영 순간을 전했습니다.


한 나라를 운영한다는 무게라는 것은 저런 것인데 거짓으로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모습들을 뉴스에서 볼 때마다 한숨만 나오는 요즘입니다.





동메달의 환호

켄 가이거, 윌리엄 스나이더,

PulitzerPrize-11.jpg 출처: www.pulitzer.org


1992년 7월, 600명의 사진기자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올림픽을 취재 중이었습니다. 달라스 모닝 뉴스지의 윌리엄 스나이더와 켄 가이거도 기자단 중 하나였는데요. "우리는 우승자들의 모습뿐만 아니라 남들이 잡아내지 못한 올림픽 스토리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어요." 400m 여자 계주에서 미국 팀이 우승하는 장면을 찍던 가이거의 눈에 나이지리아 여자 선수들이 들어왔답니다. 3등(동메달)을 확인한 선수들은 서로 얼싸안고 환성을 질렀습니다. 진심으로 승리를 즐기는 모습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답니다.


모든 사진들이 무거운 사진들인데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저 마음이 무엇이었을지 너무 공감되네요.



엉클 샘과 지원자

크레이크 F. 워커, 2010년 수상작

출처: www.pulitzer.org


정말 군인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

이안 피셔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장 군대에 입대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입대하고 나서는 정말 입대를 원했는지 마음이 흔들렸고 무섭기도 했답니다. 입대 2일 차에 이안은 그의 지휘관을 찾았습니다. 예전에 입었던 부상을 핑계로 군 복무를 그만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답니다. 면담 후 그는 군 생활을 계속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덴버 포스트의 사진 기자 크레이그 F. 워커도 이안이 정말 군 생활을 잘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답니다. 그의 사진 국장은 워커에게 이안이 자신의 문제를 잘 풀어 나갈지 기다려 보자고 조언했답니다. 1년 후 이안은 이라크에서 복무하고 있었고, 당당한 군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워커도 사진과 기사를 실었습니다. 한 젊은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이스라엘-하마스 폭격

로이터 기자단, 2023

출처: www.pulitzer.org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갑작스럽게 공격을 시작하면서 전면전이 벌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의 보복 폭격으로 많은 건물이 파괴되고, 그 잔해 속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이로 인해 민간인들의 삶은 이스라엘과 가자 지구 양 쪽에서 심각하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 전쟁은 수십 년간 이어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로이터 기자들은 하마스의 공격과 이스라엘의 보복을 기록하며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들은 안전 프로토콜과 필수 물자를 준비했지만, 전투 중 물자들이 바닥나거나 잃어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은 위험한 상황에서도 취재를 계속했답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광경입니다. 너무 처참한 광경입니다.


분쟁의 본질은 같다.
영토, 권력, 이념을 위해 싸우는 양 진영이 존재하며
그 가운데에는 고통받은 사람들이 있다.

- 안냐 니드링하우스 (2005년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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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는 단지 파괴할 뿐이다.
그러나, 가슴으로 찍는 사진가의 카메라는 사랑, 희망, 열정을 담아
삶과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이끈다.
그 모든 일은 1/500초로 충분하다.
삶은 지속되고, 우리는 사진을 찍는다.

- 에디 애덤스 (1969년 수상자)




소중한 순간들을 기록하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저널리즘의 힘과 동시에 인간의 고난과 희망을 묘사하는 사진들에 감동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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