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쪼록 우리의 순항에 도움이 되길

#브런치10주년작가의꿈

by 상상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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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쌓아두었던 노트를 펼쳐보았다.

그 안에는 업무와 관련된 일정, 생각 없이 끄적인 문장, 그리고 어설프게 따라 그린 낙서 같은 그림들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보여 줄 필요도 없는, 그저 개인적인 기록일 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만약 이 기록들이 누군가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면 어땠을까? 글을 잘 쓰는 편은 아니지만, 일상을 꾸준히 적어왔고 기록 자체를 좋아하던 나였다. 그렇다면 조금 다른 방식으로,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는 주제로 내 일상을 기록해 보면 어떨까?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음식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 그리고 그 레시피를 그림과 함께 남기면 어떨까. 대개 레시피는 먹음직스러운 사진으로 시선을 끌지만, 감성이 묻어나는 손그림과 함께라면 또 다른 따뜻함을 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결심했다. 100일 동안, 하루에 한 장씩 그림 레시피를 남겨보자고.





처음 며칠은 쉽지 않았다. 낯선 작업 과정과 예상보다 오래 걸리는 시간 탓에 당황하기도 했고, 적응하는 데 애를 먹기도 했다. 그러나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아도, 그저 꾸준히 달려가겠다는 다짐만은 지켰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반응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것이 나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어느새 레시피를 그리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이 되어 있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100일은 그렇게 지나갔다.

도전을 완주했을 때 느낀 감사와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이후 바쁜 일상에 치여 잠시 멈췄지만, 다시 그때의 보람을 느끼고 싶어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붓 대신 아이패드를 손에 쥐고 디지털 드로잉으로 또 한 번의 100일 도전에 나섰다.

그리고 그 과정은 예상치 못한 선물을 가져다주었다. 사람들은 나를 ‘푸드 크리에이터’라 불러주기 시작했다. 그 호칭은 단순한 별명이 아니라, 그동안의 노력이 인정받는 듯한 뿌듯함과 함께 “레시피를 잘 활용했다”는 댓글은 하루의 피로를 모두 씻어내는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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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도전을 끝내고는 잠시 휴식을 가졌다.

그 시간 동안은 전시와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정리하며 지난 발자취를 되돌아보았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무언가를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는 습관이 내 삶에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매일의 작은 기록들이 쌓여 자신감을 키웠고, ‘하면 된다’는 믿음을 확고히 해주었다.


예전의 나는 늘 한 달 뒤, 1년 뒤만을 바라보며 조급하게 살아왔다.

그러나 기록의 습관을 들이면서부터는 훨씬 먼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과정이 오히려 마음을 더 편안하게 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오래도록 이어가는 사람만이 결국 아무나 할 수 없는 무언가를 완성해낸다고 한다.


아직 부족한 점은 많지만, 10년쯤 뒤에는 지금보다 더 따뜻하고 진솔한 글과 그림으로 많은 이들의 마음에 닿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시간을 넘기지 않고 작은 기록 하나를 남긴다. 그 작은 기록들이 모여 미래의 나를 만들어 줄 것임을, 이제는 조금은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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