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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생각 brant Jul 05. 2021

나이 들면 입맛도 변하는 걸까?

 중국음식을 먹을 때, 식사로는 항상 짜장면을 먹었다. 짜장면 2개에 탕수육 세트가 나오기도 전부터, 한 그릇을 혼자 다 먹지도 못하던 그 시절부터 짜장면이 너무 좋았다. 곱빼기를 먹어야 배가 부르던 고등학교 시절도 있었다. 대학교 때는 쟁반짜장을 먹고 짜장면의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다. 돈이 모자라 세 명이서 2인분짜리 쟁반짜장을 나눠먹고, 공깃밥을 추가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말이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는 유명 중국집에 가서 삼선 짜장을 먹는 것이 일상의 행복 중 하나였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짜장면이 너무 느끼하게 느껴진다. 


 햄버거도 그랬다. 맥도날드 빅맥을 처음 먹은 그 순간부터, 햄버거는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음식이었다. "특별한 소스 양상추~"라는 빅맥송에 나오는 그 소스의 맛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다. 늘 배고팠던 고등학교 시절에는 버거킹 와퍼가 최고였다. 외국을 여행하면서도 유명한 버거집을 찾는 것은 당연했다. 인앤아웃, 파이브가이즈 등 유명 버거 체인의 버거뿐 아니라, 조그만 펍에서도 안주 겸 식사로 버거를 먹는 경우가 많았다. 버거의 맛을 잊지 못해 인앤아웃과 파이브가이즈 본사에 이메일을 보내 한국에 지점을 낼 계획은 없는지 문의하기도 했다. (버거에 진심이다.) 취업을 준비하던 일 년 동안, 맥도날드에서 월수금 점심을 모두 빅맥만 먹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버거를 먹고 싶지가 않다.

런던에서는 비행기를 내리자마자 버거집에 갔다. 

Five guys가 한국에 오면 다시 버거를 먹고 싶어 질까?


 만두도 빼놓을 수 없다. 엄마 손잡고 시장에 가서 먹었던 찐만두를 잊지 못한다. 천 원이면 열개도 넘게 줬는데, 맛이 기가 막혔다. 어려서는 어설픈 솜씨로 백설 군만두나 고향 만두를 프라이 팬에 구워 간식으로 먹으면, 오후 내내 든든했다. 백화점 지하 1층 푸드코트에서 팔던 왕만두도, 고등학교 매점 앞에서 호호 불며 먹었던 호빵 기계 속 만두도 내게 수많은 추억을 남겨주었다. 커서는 딤섬 집에 가서 샤오롱바오를 먹기도 했고, 눈 오는 겨울날 만둣국 집에 가서 선배들에게 옛날 얘기를 듣는 것도 재미있었다. 한 때는 갈비만두가 인기를 끌면서, 여자 친구와 함께 야식을 먹으러 마포만두에 갔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고기만두를 찾지 않는다. 

최근에는 김치만두만 주문했다.

 짜장면보다 짬뽕이, 햄버거보다는 밥이, 고기만두보다는 김치만두가 당기는 나이가 된 걸까? 나이 때문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최근 1년 사이 입맛이 변한 것은 사실이다. 음식을 주문할 때, 고민을 하는 내 모습이 너무 어색하다. 30년 넘게 무조건 짜장면이었는데, 왜 갑자기 고민을 하기 시작한 걸까? 갈비만두를 함께 먹던 아내(구, 여자 친구)에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아내는 자기 때문이란다.


 토종 입맛을 가진 자기랑 살다 보니 입맛이 바뀐 것 같다고 했다. 결혼을 하며 함께 밥을 먹는 경우가 훨씬 많아지다 보니, 짬뽕밥, 그리고 김치 나베를 좋아하는 자신의 입맛과 비슷해진 거란다. 사실 어떻게 보면 그 말이 맞기도 하다. 전에는 누군가의 짬뽕을 얻어먹어볼 일이 많지 않았는데, 조금씩 먹다 보니 뒤늦게 짬뽕의 칼칼함에 매력을 느낀 것도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거다.


 아내도 몇 년 지나면 알게 될 거다. 입맛이 바뀌는 이 이상한 기분을. 늘 맛있게 먹던 음식이 더 이상 당기지 않음을 말이다. 하지만, 아내의 말은 괜히 고마웠다. 보통 때는 나이 든 아재라 그렇다고 짓궂게 놀리기도 잘하는데, 진짜 나이 들어서 그러나 싶어 걱정 아닌 걱정을 하는 내 모습을 보고는 다르게 얘기를 해준다. 나라면, 너도 이제 나이 들어서 그런 거라고 분위기 파악 못하고 놀리다가 된통 혼이 났을 것 같은데, 이럴 때 보면 아내가 나보다 어른 같다.


 언젠가 다시 짜장면이나 버거가 당기는 날이 올까? 그때 내 기분은 어떨까? 다시 예전 입맛이 돌아왔다고 좋아할까? 아니면 이제 죽을 때가 된 거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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