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로는 소위 MZ세대의 끝부분에 살짝 걸쳐 있지만, 심정적으로는 내가 밀레니얼 세대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 유치원 때이기는 했지만 88 올림픽을 직접 가서 보았고, 2002 월드컵에 열광했던, 지금은 그냥 아저씨다.
아저씨라 그렇겠지만, 1월 1일에는 떡국을 먹어야 비로소 한 해가 시작되는 것 같이 느껴진다. 아마, 신정과 구정을 모두 챙기며 1년에도 떡국을 두 그릇씩 먹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설날을 두 번씩 챙겼던 그 시대의 어머니들은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아무튼,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도 나는 일찍부터 1월 1일에 떡국을 먹을 장소를 찾아두었다. 구글 지도 앱을 이용해서 1월 1일, 1시 15분으로 예약도 해놓았다.
식당은 맨해튼 32번가 한인타운에 위치하고 있었다. 뉴욕은 지금 살고 있는 플로리다보다는 물가가 비싼 곳이기는 하지만, 한식당에서 실망을 한 적은 없었기에 부푼 마음으로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게 안은 이미 손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가 앉을 테이블이 준비되기를 기다리면서 잠깐 가게 입구에 서 있었다. 그런데, 오늘 떡국이 무료로 제공된다는 안내가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덕분에 떡국을 먹으려던 아내와 나는, 처음에 생각했던 떡국 이외에 우거지 해장국과 제육볶음을 주문했고, 떡국도 함께 먹으며 행복하게 2024년 새해를 시작할 수 있었다. 딱 한 가지 문제점은, 공깃밥까지 무료로 주신 바람에 밥을 너무 많이 먹어서 오늘의 일정을 취소한 채 숙소로 들어와서 휴식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상치 않게 다른 메뉴를 주문해야 해서 메뉴판을 보다가 보니, 이곳은 1993년부터 식당을 이어오고 있는 곳이었다. 장사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는 나지만, 오랜 시간 사업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 중의 하나가 이런 마음 씀씀이 덕분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떡국을 먹으며 새해를 시작하고 싶었던 나와 같은 한국인들에게는 고마움을, 우연히 새해 첫날 한국 음식점을 찾은 외국인 손님들에게는 우리의 정을 느끼게 해주는 멋진 장소였다.
이제 겨우 다섯 달밖에 되지 않은 미국 생활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고, 오늘도 2024년 첫날부터 또 한 번 도움을 받게 되었다. 지난 몇 달의 경우와의 차이점이라면, 일면식도 없는 나 같은 관광객을 포함한 불특정 다수에게 도움을 주려는 분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아주 상업적으로 접근하자면, 이것이 자신들의 영업에 더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하셨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판단을 실행으로 옮기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생각된다.
갈수록 세상 살기가 힘들어지면서, 학생들은 이전 세대보다 더 열심히 공부를 하고도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기가 어려워졌고, 젊은이들은 직업을 얻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하고 경쟁해야 한다. 때문에, 서로를 경쟁 상대로 인식할 수밖에 없고, 자신의 것을 남과 나누는 사람을 찾기는 갈수록 어려운 것 같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다수의 사람들과 반대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자신의 노하우를 나누고, 자신의 행복이나 기쁨을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려고 한다. 놀랍게도, 정반대의 전략을 지닌 소수가 다수의 사람들보다 행복이나 성공과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