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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anU Jan 24. 2020

작가, 절대 꾼으로 보이지 말 것.



2018년 12월, 강남 교보타워에서 진행된 강연을 간 적이 있다. 강연은 10월에 막 PT 관련 책을 출판한 한 작가의 강연이었다. 꼭 가고 싶던 강연이라 당첨되었을 때 너무 기뻤다. 해당 강연장엔 나와 같은 기대감을 가진 2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고 다들 필기도구를 하나씩 꺼내놓고 비장한 표정으로 필기할 준비하고 있었다. 그날 나는 ATM기에서 2만 원을 뽑아왔었다. 강연이 끝난 후 그의 책을 구매하여 사인을 받으려 했기 때문이다.


두근두근


19:30이 되자마자 사회자의 소개와 함께 강연이 시작되었고 PT의 신이라 소개된 그는 역시 말을 참 잘했다. 인트로로 사용된 아이스 브레이크용 대사까지 일 년이 더 지난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것 보면 그는 언어술사였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1시간의 강연이 끝난 후,

 그의 책을 구매하지 않았다.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의 강연을 들었으나 책을 구매한 사람 또는 사인을 받으려는 사람은 서른 명이 안 됐다.


그 후 집에 와서 강연 후기를 찾아보았다. 보통 강연을 들으면 후기 쓰는 사람이 많은데 그의 강연에 관련된 후기를 쓴 사람은 전혀 없었다. 보통 교보에서 하는 강연은 블로그, 브런치 후기가 넘쳐나던데? 강연 전 반짝이는 눈동자를 가졌던 사람들은 다 어디 간 걸까? 그들의 마음은 왜 변한 것일까?


아쉬웠던 두 가지


돌이켜보았을 때 그의 강의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불쾌한 강의’였다 할 수 있다. 그는 강연 초반부터 책 구매를 요구하며 장사꾼처럼 굴었다. 강연이 이어지다 내용이 조금만 깊어지려 하면 중요한 이야기는 안 하고 책사라며 웃고 다음 이야기를 했다. 물론 그런 말 누구나 할 수 있다. 처음에는 다들 웃으며 그가 재밌다 생각했다. 그런데 재밌는 것도 한두 번이지 그런 말이 다섯 번 여섯 번 반복하자 마지막엔 아무도 웃지 않았다. (아 한 명은 계속 웃었다. 작가 본인)


또, 강연이 부실했다. 계속 책에 다 있다며 깊은 이야기를 안 하는 걸 보면서 진짜 이 강의를 제대로 준비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한 시간짜리 강연을 제대로 준비했다면 저런 홍보 맨트를 10번 이상 하지 않았을 텐데 강연을 하나도 준비하지 않고 집에서 대충 나와서 거만하게 서있는 사람 같아 보였다. 같은 말의 반복, 또 반복이었다.




책 출판 이후 진행되는 작가의 강연들은 ‘책 홍보’라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굳이 강남 한복판, 강남 교보문고의 고층 회의실에서 강연을 한 이유는 온전히 책 홍보를 위함이다. 강연을 들은 사람들이 작가에게 반해 책을 사고, 읽은 사람들이 또다시 입소문을 내서 책이 더 잘 판매되길 교보문고 담당자들은 바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PT 이전에 자신에 대한 브랜딩조차 제대로 못하고 강연을 끝냈다. 그의 강연을 블로그나 다른 곳에 포스팅한 사람도 한 명 없다. 분명 강연장엔 200여 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지금도 yes24엔 5개의 리뷰뿐)



사람들은 장사꾼보다 전문가를 원한다. 이건 당연하다. 나라도 과일 전문가가 파는 사과가 좌판에서 떨이요 떨이를 외치는 장사꾼이 파는 사과보다 더 맛있게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 두 사과가 같은 맛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인생이란 게임은 다양한 고객에게 판매를 하다 죽는 일이다. 고등학생은 대학교에 자신의 가치를 입학과 맞바꾸어 판매하고 의사는 의료 능력을 환자들에게 팔고 교사는 학생들에게 강의를 팔고 작가는 독자들에게 글을 판다.


그리고 이 인생게임의 룰은 잘 파는 사람이 승자이다. 자신을 잘 어필하고 잘 홍보하는 것은 승자가 되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 중에도 작가는 꾼으로 보이면 안된다. 전문가로 보여야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꾼으로 보이게 했고 자신의 책 가치를 떨어트렸다. 만일 전문가로 보이도록 노력했다면 책도 많이 팔리고 해당 강연이 두고두고 회자가 되어 입소문이 났었을 것이다.


그 날 작가의 여러 말 중 하나가 떠오른다.


PT는 상대방을 유혹시키는 거예요.
저는 항상 모든 사람들을 유혹해왔어요.
만일 사람들을 유혹시키지 못했다면
그건 망한 PT겠죠


정말 공감하는 대사인데 이 사람의 말대로라면 난 영광스럽게도(?) 그 작가의 망한 첫 PT를 보지 않았나 싶다. 본인은 영~원히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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