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보틀 개장 12일째 대기시간
어제 블루보틀을 갔다.
다른 마케터 친구가 전날 갔는데 40분밖에 안 걸렸다고 해서 갔다. 그런데 웬걸? 지인이 갔던 날이 사람이 적었던 시간이었나 보다. 내가 갔을 때의 대기줄은 40분짜리가 아니었다. 적어도 한 시간. 일부로 점심도 저녁도 아닌 가장 애매한 시간인 3시에 갔는데 모두 같은 생각으로 왔는지 바글바글했다. 솔직히 ‘망했다’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래도 간 김에 목적 달성은 해야 했다. 시장조사라는 명목 하에 회사를 나온 것이기 때문!
사람들의 동선을 바꾼 가게
아니, 원래 1번 출구 쪽은 유동인구 0.05%였다니깐?!
지난주, 뚝섬역에서 5분 거리에 산다는 지인이 흥분하며 한 말이다. 뚝섬역은 서울숲을 방문하는 친구들 혹은 직장인들이 많이 내리는 역이다. 그래서 만일 서울숲을 간다면 1번이 아닌 8번 출구로 나오기에 1,2번 라인으로 다니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블루보틀이란 괴물이 나타나기 전까지
블루보틀은 1번 출구 바로 앞에 보이는 곳에 생겼고, 사람들은 동선을 바꾸기 시작했다. 서울숲을 가려는 사람들은 블루보틀을 들렸다가 서울숲을 방문하였고, 블루보틀의 존재를 모르고 8번 출구로 나와 걷던 사람들도 1번 출구 앞에 몰려있는 사람들이 궁금해 다시 건너오곤 했다. 마실까 말까 고민을 0.01초 하다 가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우선 ‘고민’을 하게 만든 것 자체가 엄청난 것이라 생각한다.
유동인구 0.05%였다는 그녀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사람들의 동선을 바꾼 것은 사실이었다.
고통은 시작되었다. 이날의 온도는 27도에 육박하였고, 나는 기다림에 익숙한 사람은 아니었다. 보통 아무리 맛집이라도 잘 기다린 사람이 아니었다. 1시간 이상 기다릴 바에야 옆에 떡볶이집을 가고 말지! 그러나 아직 초반이었기에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징징거림 정도랄까?
1시간이 가까워지자 드디어 실내공간에 발 하나를 디딜 수 있었다. 실내로 들어오자 에어컨이 나를 맞이하여 주었으며 사람들은 시원해~를 외치며 저 바람 한 줌에 감사함을 느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작은 것들에도 감사함을 느낀 듯하다.
모두들 핸드폰을 보거나 동행인과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나는 느낌 있게 책을 읽었다.(사실은 친구가 없고 배터리도 넉넉하지 않아서...) 오랜 웨이팅으로 지치긴 했지만 실내 에어컨 바람을 쐬며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뉴욕의 커리우먼 부럽지 않았다.
뭔가 힙해진 느낌이랄까?!
잠깐 내가 읽는 책에 대해 말하자면 정철님이 쓴 ‘카피 책’은 광고인을 위한 책이라 생각될 수도 있지만 누구나 읽으면 좋은 책인듯하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서 자신을 브랜딩하고 사람들을 유혹하고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연애 또한 브랜딩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광고는 사람의 구매를 유도하는 수단이기에 이 비법을 잘 안다면 사실 인생에 대한 한 부분을 알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일반인들도 광고 카피의 오묘한 차이를 알면 말하고 쓰는 글의 수준이 올라갈 듯하다.
기다리면서 내려다본 풍경은 흡사 외국 느낌을 풍겼다. 그러나 1층 가게 내부에 기계들만 있는 공간을 보며 아니 이렇게 고객들을 기다리게 할 바에야 저 공간도 커피 판매대로 만들지 왜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백종원 님이 예전에 말씀하신 ‘맛집이 공간 확장을 하려고 한다면 확장은 하되 테이블 개수는 천천히 늘려라’라는 말이 떠오르면서 아 얘네도 뭔가 마케팅 전략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가 아틀란티스 줄인가요?
계단 쪽으로 내려가도 된다는 직원분의 안내에 계단으로 입장했다. 아니, 계단을 지키는 직원만 2명이라니. 내가 놀이기구를 기다리는 건가라는 착각이 생길 정도였다. 롯데월드에는 아틀란티스라는 놀이기구가 있는데, 그곳 또한 뙤약볕에서 1시간 정도를 기다리고 실내에서도 또 기다리게 된다. 그런데 이 블루보틀에서도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고 직원들의 안내에 잘 따랐다.
이건 도착이 아닌 입성이다
도착이란 말은 가볍다. ‘도착’보다 좀 더 무거운 느낌의 단어, 더 어울리는 단어가 무엇일지 고민했도, ‘입성’이란 말을 골랐다. 입성의 기본 뜻이 성에 들어왔다는 것인데 예전, 적이 있던 도시를 함락하고 들어가 점령할 때 주로 쓰인 단어라고 한다. 난 기다림이란 적을 함락하고 블루보틀 성에 ‘입성’한 느낌을 받았다.
나의 뒤 커플들은 컵과 굿즈들을 보며 무엇을 살지 벌써부터 고민하고 있었다. 남자 친구로 보이는 분은 ‘컵 필요해? 컵 몇 개 사줄까?’ 하며 다정하게 묻고 있었다. 이 정도 기다렸으니 커피만 들고나갈 순 없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컵들 가격은 생각보다 비쌌다. 뒷 커플들이 샀는지 안 샀는지는 모르지만 내 생각엔 너무 비싸서 구매를 안 했다.
계산대까지 굿즈가 전시된 곳을 지나 매대가 보인다. 직원들은 통일된 청색 셔츠에 회색 앞치마를 입고 일하고 있었다. 12일째 지속된 과다 업무에 익숙해졌는지 모든 일은 착착하는 느낌이었다. 서로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정겨움이 보였다. 직원들끼리도 아직 친해가는 과정인듯하다.
주문을 하는 시간은 1분 정도가 걸렸다. 직원분은 참 친절하게 꼼꼼하게 설명해주었다. 보통 첫 오픈한 매장들에서 자주 보여주는 액션이었다. (이 친절함이 계속 가면 좋은 브랜드가 되는 것이고, 일시적이면 one of them이 되는 것 같다.)
주문은 무난하게 카페라테와 마들렌.
참기름 마들렌이 있다 하여 독특해서 주문해보았다.
(해당 마들렌의 맛은 보지 못했다. 미팅 하나가 있어 만난 분께 선물로 드렸기 때문. 맛있다고 인정해주셨다. 나의 1시간 30분을 선물한 기분. 흑흑)
6분 11초
상품 수령까지 걸린 시간.
정확한 시간을 체크하기 위해 매대 앞에서 스톱워치로 시간을 재봤다. 빵은 바로 접시에 넣어주었고, 커피가 나오는 데까지는 총 6분 11초 걸렸다. 3분쯤 쟀을 땐 다소 블랙컨슈머가 된 기분이 살짝 들었다. 마치 얘네가 잘하나 못하나 감시하려 온 사람처럼.. 난 그저 궁금하기 때문에 하는 건데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땐 그런 느낌이 들 수도 있겠구나 하고 조금 흠짓 했다. 그렇지만 다른 이용자가 오기 전 궁금했을 부분은 해소되지 않을까 싶다.
상품은 처음에 먹고 간다고 해서 접시와 유리컵에 주셨는데 자리를 둘러보니 혼자 앉아 먹고 가긴 애매해서 테이크아웃 잔으로 변경 요청을 하였다. 직원분은 별말 없이 깔끔한 포장을 해주셨고, 플라스틱 컵으로 바꿀 때는 정확히 얼음 하나를 더 넣어 유리잔과 차이를 두었다.
모든 것은 의도되었다
듣던 대로 내부에 콘센트는 없었으며 오직 블루보틀 시그니처, 회색, 나무색 만 있을 뿐이다. 한국에 콘센트가 없는 카페는 많지 않은데 블루보틀의 가치관에는 맞지 않은 설정이라 의도적으로 뺀 듯해 보였다.
오직 사람들과의 소통만이 존재하는 곳.
난 커피맛을 잘 모르기에 블루보틀 커피의 산미라던가 씁쓸한 맛에 대해 표현할 줄은 모른다. 그래서 커 잘못(커피 잘 모르는 여자) 입장에서는 그냥 어디서나 먹어본 커피였다. 그렇지만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블루보틀 이 16.4만 개 생성된 시점에서 마케터는 한 번쯤 블루보틀을 가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직접 현장에 가보고 사람들의 말을 듣고 그들이 보는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브랜드는 어떻게 흘러가야 할지 방향에 대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블루보틀이 첫날 이벤트 업체를 써서 사람들을 줄 세웠다는 카더라 통신도 있다. 그런데 그런들 어떤가. 만일 그 덕분’만’이라면 전국 모든 기업들이 오늘부터 이벤트 업체 고용하여 줄 세우면 다 블루보틀 급으로 대박이 날 것인가? 그건 아니라고 본다. 설령 그랬다 하더라도 그것은 성공한 전략인 것이다.
카페를 나와 블루보틀이 보이는 지점에서 10분 정도 커피를 마셨다. 블루보틀에서 컵과 커피를 사서 나온 3명의 친구들이 서로 블루보틀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보통 인증샷이라고 하면 배경과 나만 나와야 ‘잘’ 나온 사진이다. 네이버 검색 혹은 SNS에서도 ‘사람 많은 곳에서 사진 잘 찍는 방법’과 같이 사람들이 안 나오는 방법을 연구해서 찍는다. 그런데 블루보틀에선 달랐다. 여기선 일부로 기다리는 사람들도 뒷배경으로 찍는다. 그것 자체가 자신의 승리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사람들까지 배경으로 만들 수 있는 곳
이곳은 블루보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