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칭찬하는 것의 중요성
나는 현재 서울시 x NSPACE 공간사업 프로젝트 도시작가 2기로 활동하고 있다. 도시작가는 서울시의 각 공간들을 찾아가 운영진을 만나고 해당 장소를 인터뷰하는 활동을 한다.
작년에도 도시작가를 지원했었지만 그땐 바로 떨어졌었다. 솔직히 당시엔 아쉬움도 없었다.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기엔 내가 준비한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로또를 확인할 때처럼 조금의 기대는 있지만 안되더라도 실망하지 않는 정도였다.
그리고 올해, 2기로 활동하게 되었다. 작년보다 모집 홍보를 안 해서 지원자 수가 적었고, 일정이 급했기에 쉽게 됐다. 운이 좋았던 것은 사실이다.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뽑혔냐는 물음을 들을 때면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내가 된 거면 누구나 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 말해도 단 한 명에겐 절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바로 나 자신
나 자신에겐 절대 운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너가 참 잘했다고. 고생했다고. 너가 ’작가’ 타이틀을 가지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충분히 안다고. 운도 실력이라고. 넌 충분히 도시작가 2기에 뽑힐 인재였다고 ‘칭찬’ 해주었다.
왜냐고? 그 누구도 나만큼 나를 칭찬해주지 못하거든. 내가 보낸 1년을 가장 잘 아는 건 나뿐이거든.
지금의 나는 1년 전의 나보다 100배는 뽑힐만한 사람이었다. 1년 전의 내가 그냥 커피라면 지금의 나는 TOP다. 1년사이 오마이뉴스 메인을 장식한 기사를 3편 썼고, 공간 관련 취재를 했었다. 그래서 난 나를 칭찬했다. 1년을 3년같이 쓴 나를 칭찬해줬다.
칭찬을 언제 들었는지 모르겠어
요즘 팀장에게 매일 혼이 나서 자존감이 떨어진 친구가 있다. 친구에게 마지막으로 칭찬받은 게 언제였냐 물어보니 언제 들었는지도 모를 만큼 까마득하다 했다. 이 친구는 학창시절 공부도 잘하고 성실했던 친구다. 그런 그가 이젠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다고 너무 힘들다고 했다.
나이가 들수록 칭찬받을 일이 없어진다. 예를 들어 어릴 땐 “엄마”라고 말만 해도, 땅을 기다가 두 발로 걷기만 해도 칭찬받았는데 지금은 어려운 용어를 척척 말하고 뛰는 것도 잘하더라도 그런 행동들을 칭찬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 모든 행동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대학 가는 것도 당연, 취직하는 것도 당연. 옆집 아들 철수, 딸 민희도 다 하는 거니깐.
근데 이게 당연한 일인가?
너무 대견한 일 아닌가?
당신은 대학도 진로 선택도 취직도 퇴사도 어렵게 했다. 단 하나도 쉬운 건 없었다. 그런데 사회는 칭찬은커녕 채찍만 가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칭찬하는 이보다 질투하고 시기하는 이가 더 많아진다.
어쩌면 이렇게 칭찬 없이 채찍으로 맞기만 하니 사회가 힘들다고 느껴지는 건 당연한 것 아닐까?
오늘도 당신은 세상에 채찍질만 당하고 집으로 터덜터덜 왔다. 그리곤 집에 와서도 스스로를 자책하고 사람들을 원망한다. 세상에게 1차 채찍질을 당했는데 2차 채찍질을 스스로 한다.
이젠 나에게 자책과 원망이 아닌
당근을 주는 건 어떨까?
난 당신이 집에 오면 스스로를 칭찬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졌으면 좋겠다. 밖에선 충분히 채찍질당했으니 이젠 세상 몰래 당근을 먹는 건 어떨까? 떠들썩하게 칭찬하면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이 생기니 몰래 ‘칭찬’해주자는 거다.
너 오늘도 1시간 거리 출근길 잘 찾아갔다며?
넌 밥도 어쩜 그리 잘 먹니?
넌 어떻게 그런 아이디어를 내니?
넌 어쩜 그렇게 잘 컸니?
그 실수 별거아니야 나중에 더 큰 실수 내지말지뭐!
내가 본 사람 중에 너가 최고야!
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