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한다 싶다가 갑자기 찾아오는 막막함
전자레인지에 덥힌 밥처럼 김 나게 뜨거웠다가 갑자기 식어버리는 느낌이 이따금 찾아온다. 이전보다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보려 스스로에 대한 각오가 많아질 때다. 어떤 깨달음을 계기로 새롭게 시도했는데 예상보다 좋은 결과가 나오면 마음이 후끈 달아오른다. 감 잡았다 싶은 마음에 달리기 시작한 내게 박차를 가한다.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야심 차게 계획을 짜고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지 예측도 해본다. 스스로 정의한 프로젝트를 완수했을 때 느낄 감정과 성장의 정도를 그리며 김칫국부터 한 모금 살짝 마신다. 이 와중에 어떤 냉소가 가슴속을 훑는다.
어차피 안 될 것이라는 소리 없는 야유다. 이전에는 뭐 하다가 이제야 이런 방정을 떠는 것인지 누군가 묻는 듯한 느낌이 찾아올 때가 온다. 나는 나보다 먼저 그 일을 했던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 주로 그랬다. 나와 비슷한 사례를 참고해 보겠다고 시간 들여 찾았는데,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마음 부담도 늘었다. 몹쓸 비교의식은 곁에 두지 않으려 하는 데도 이럴 때 자꾸 마음의 자리에 엉덩이를 들이민다. 내가 하려는 일을 자로 재보고 무게를 달아보며 만져보니 괜히 위축된다. 군색한 내 모습은 내세울 것이 없다. 원래 있던 자리 근처였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몇 년 전 기자 시험을 준비하던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첫 직장 그만두고 언론고시에 다시 도전할 때였다. 나는 그 직업을 준비하는 업계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편이었다. 대학교 졸업 후 삼사 년 넘게 도전 중인 선임 수험생보다 나이가 많으니 준비 과정에 꼭 필요한 글 첨삭 스터디 그룹에 들어가기조차 쉽지 않았다. 어렵게 한 모임에 합류했으나 내용도 방식도 알차지 않아 두 달 만에 그만뒀다. 그리고 나름의 계획을 세워 그냥 혼자 공부하고 글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좋았는데 갈수록 쌓였던 막막함의 무게감은 5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다.
갑자기 무엇을 하려는 내 의지에 대해 자신감이 없어졌다. 창문 없는 방에 유일한 빛이자 희망이었던 촛불을 누가 훅 불어 꺼버린 듯 내 마음에 적막이 흐른다. 머리는 멍하고, 손발은 어지럽다. 지금까지 내가 하던 것을 계속하는 것이 맞는지 확신이 사라진 듯했다. 당장 어떤 행동을 하는 게 좋을 지에 대한 판단력도 흐려졌다. 그런 마음을 간신히 붙잡고 몇 번 더 시도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나는 실패를 받아들이고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마음을 비우고 봤던 시험에서 합격한 후 5차례 면접 끝에 겨우 언론사에 합격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무언가를 도전할 때마다 이 녀석을 만났던 것 같다. 그저 주어진 역할을 따라 살 때는 이런 일이 없었다. 뭔가 내 삶을 고찰하고 변화하고자 노력하기 시작하면 이런 마음이 찾아온다. 솔직히 나는 이런 막막함 앞에서 자주 주저앉고 싶었다. 가능성 없는 일이라 판단되면 애초부터 시도하지 않으려고 하는 본성 탓인지도 모르겠다. 시간 아까운 일에 굳이 내 정력을 소모하지 않고 싶어 하는 마음은 모순되게도 노력하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계획의 첫 단추를 잘 끼우고 더 잘해보겠다며 마음의 빛을 가장 밝힐 때 그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
지금의 나는 그 어두운 공간을 직시할 수 있다. 그곳에는 완벽하고 싶은 나의 자아가 숨어 있다. 어떤 시도를 인생의 승부로 간주해 승리 아니면 패배라는 식의 흑백논리다. 본능적으로 외부의 시선과 내면의 기준을 버무려 나름의 성공선을 만든다. 그 이상을 달성하겠다는 의지가 스스로를 코너로 몰아간다. 막막함을 만난 그 자리는 사실 내 발로 찾아간 셈이다. 이 정도 파악됐다면 나에게 말해줄 차례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라고, 지금 하려는 일에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게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 다독인다. 인생의 지혜는 이 순간부터 다시 찾아왔다.
제가 만든 감옥에 스스로 들어갔습니다.
제 기준을 포기할 때 그곳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