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데드풀은 '발암'치료를 받았다.
공모전 준비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극장에서 영화 '데드풀 2'가 개봉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주말을 기다려 친구를 떠밀어 영화관으로 달려갔다. 애석하게도 레이놀즈의 끔찍한 얼굴과 '폴더처럼 접히는' 척추를 관람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그는, 러닝타임 내내 손바닥으로 스크린의 절반은 가려야 했다. 왜냐하면 데드풀은 악성 종양으로 얼룩진 몸을 갖고도 무한히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주인공의 암을 치료해주겠다던 의사가 하필 돌연변이 생체실험 연구자였다니,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런데 만약 데드풀이 종양 발생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만 알고 있었다면, 그는 힐링팩터의 '저주'를 받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쯤 죽음을 '행복하게'맞이 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데드풀이 받은 치료는 종양을 제거하거나 크기를 줄이는 '항암'치료가 아니라, 악성 종양의 생장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발암'치료이기 때문이다. 이야기 속에서 메인 빌런을 담당한 프란시스는 웨이드 윌슨에게 '돌연변이(mutant)의 힘을 활성화시키는 방법은 그에게 자극(stress)을 주는 것'이라고 말하며, 진공 탱크에 넣고는 산소를 뽑아내는 고문을 실행한다.
만약 프란시스가 말한 '돌연변이'가 mutant가 아니라 돌연변이 세포(tumor)라면, 그는 꽤 그럴듯한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저산소 상태(hypoxia)는 돌연변이 세포, 즉 '암'이 매우 좋아하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저산소 상태의 암세포는 다른 암세포보다 빨리 자랄 뿐만 아니라, 항암 치료법에도 높은 저항력을 가진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먼저, 저산소 상태에선 특별한 단백질이 활발하게 작용한다. 이것을 HIF-1이라고 한다. HIF-1 단백질이 활성화되면 암세포 주변의 정상적인 세포들의 환경을 변화시켜서 돌연변이가 만들어지기 쉽게 만들고, 암세포가 왕성하게 자라기 위한 영양분을 더 빨리, 더 많이 만들어낼 수 있도록 세포 기능을 변화시킨다(햄스터를 쳇바퀴에 올려놓고, 쓰러질 때까지 달리게 하는 것만큼 세포에 해롭다). 주변의 정상 세포들에게 나눠져야 할 양분을 암세포가 독식할 수 있도록 혈관에 빨대를 꽂아주는 일도 HIF-1의 소행이다.
또한, 저산소 상태에서는 화학적 치료요법, 방사선 치료요법 등과 같은 공격에 암세포가 더 손쉽게 저항할 수 있다. 먼저 화학적 치료요법을 살펴보면, 화학적 의약품(drug)이 암세포 곳곳에 효과적으로 닿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산소가 적은(적게 공급되는) 공간에는 의약품(drug)도 충분히 공급되기 어렵다. 또 혈관 곳곳에 암세포가 빨대를 꽂아 혈관을 타고 흐르는 의약품이 엉뚱한 곳에서 줄줄 새어 나오기 쉽다. 방사선 치료요법에서는 방사선을 통해 공급되는 고에너지 전자가 충분한 산소와 효과적으로 협력하여 암세포를 공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암세포 주변에 산소가 부족하면 고에너지 전자의 공격을 받더라도 충분히 치명적인 상처를 입지 않게 되고, 오히려 더욱 악랄하고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암세포로 변화하게 된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요약해 보면, 웨이드 윌슨이 받은 치료는 암세포를 공격해서 치료하는 요법이 아니라, 오히려 암이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쾌적한 환경과 풍부한 양식이 갖춰진 '에덴동산'을 만들어 주는 요법이었다는 진실을 알 수 있다. 뭐, 훈훈한 미남의 얼굴을 영원히 잃어버리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울버린에 맞먹는 '힐링 팩터'를 손에 넣었으니.. 새옹지마라고 해도 되려나? 아니면 여주인공의 사랑도 얻고, 힐링팩터도 얻었으니 '일석이조'라고 해야 되려나?
[1]. Quora, 2016-10-06, Why was Deadpool's skin deformed in the oxygen tank?
[2]. Darnell, James E., Harvey Lodish, and David Baltimore. Molecular cell biology. Vol. 2. New York: Scientific American Books, 1990.
[3]. Hall, Eric J., and Amato J. Giaccia. Radiobiology for the Radiologist. Vol. 6. Philadelphia:: Lippincott Williams & Wilkins,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