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곰돌이 Jun 11. 2018

남자가 일찍 죽는 이유 - 목숨보다 중요한 것?

11화. 남성 호르몬은 생명을 단축시킨다.

왜 여성은 남성보다 기대수명이 높을까?
어머니는 "밥을 차려주지 않으면 먹을 줄 몰라서"라고 하셨다.

지난 2016년 발표된 WHO의 기대수명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출생한 한국 여성의 평균 수명은 85.48세로 세계 3위, 한국 남성의 평균 수명은 78.8세로 세계 17위에 올랐다. 한국의 남성-여성간 기대수명 격차(6.7년)는 여성 기대수명 상위 10개국(평균 4.7세) 가운데 가장 컸다. 하지만 어떤 나라에서건, 여성의 기대수명이 남성에 비해 높게 나타나는 경향성이 나타났다. 여성 기대수명 10위인 아이슬란드가 84.1세로, 남성 기대수명 1위인 스위스의 81.3세보다도 더 높게 나타났다.[1]

정말로 '여성시대'가 오고 있다.


남성의 기대수명이 더 낮은 원인으로 사람들은 흔히 '더 위험한 일을 해서', '술-담배를 더 많이 해서', 혹은 어머니처럼 '밥을 차려주지 않으면 먹을 줄 몰라서'를 이야기한다. 이쯤 되면, 남성의 기대수명이 낮은 까닭은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과, 가부장적 남성주의 문화가 빚어낸 비극으로 보인다. 남성과 여성이, "적어도 생물학적으로는" 동등한 기대수명을 갖고 태어난다는 성 평등에 관한 사람들의 기본 전제가 틀리지 않았다는 가정 하에 말이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동등한"
기대수명을 가진다는 가정은
틀렸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 한 연구 결과에서는 "인생 초기와 후기는 물론, 한 평생에 걸쳐 여성의 기대수명이 남성에 비해 우월했다. 이러한 경향은 신뢰할 만한 출생-사망 기록이 존재하는 모든 국가에서 매년 나타난다"라고 밝혔다.[2] 이러한 경향성은 손에 맥주잔을 들고 입에 담배를 물지 못하는 침팬지, 오랑우탄, 긴팔원숭이와 같은 영장류에게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우린 모두 일찍 죽는 저주를 타고났을지도 몰라.


태어나는 순간부터 갖게 되는 '수명의 불평등'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남성의 수명을 단축시킨다는 주장이다. 테스토스테론은 단기적으로 신체를 강화하지만 인생 후반부에서는 심장 질환을 촉진하고, 정자의 생산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노년에는 전립선 암의 발병 위험을 높인다고 알려져 있다.[3] 반면에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은 일종의 '산화방지제'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여, 세포의 죽음을 앞당기는 체내 활성산소를 줄이는 효과가 있음이 널리 알려져 있다.[4] 여성호르몬을 분비하는 난소를 제거한 설치류 암컷은 다른 암컷들에 비해 단명(短命)한 반면, 사춘기에 고환이 거세된 조선시대 내시 81명을 대상으로 수명을 조사한 결과 궁중에서 생활했던 다른 남성들에 비해 평균 수명이 20년 이상 높았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된 바 있다.[5]


그렇다면, 남성호르몬은 왜 수명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었을까?

아니, 왜 수명에 악영향을 미치는 결함이 진화 과정에서 개선되지 않았을까? 진화론의 관점으로 생각해보면, "남자는 오래 살 필요가 없기"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사례는 생태계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개미를 살펴보자. 날개 달린 모든 암수 개미가 참여하는 혼인 비행 직후 짝짓기를 한 암컷은 무리 지어 살기 적절한 땅을 찾고, 알을 낳아 돌보는 반면 비행이 끝난 수개미는 곧 죽는다. 수컷 공작새는 암컷 공작의 주목을 끌고, 교미에 성공하기 위해 생존에 매우 불리한 화려한 깃털 장식을 갖는 방향으로 자연선택적 압력을 받는다. 지금은 멸종한 검치호랑이(스밀로돈)의 경우는 조금 더 비극적이다. 커다란 송곳니를 가져 사냥 능력이 우수한 수컷만 암컷에게 선택받으면서, 점점 더 커다란 송곳니를 가진 수컷들의 유전자만 전해지게 되었고, 결국에는 자신이 사냥한 먹이를 제대로 씹기도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교미에 의한 자연선택적 압력이 수컷, 더 나아가 종 전체의 생존에 악영향을 끼친 것이다.

먹이사슬의 최강자인 스밀로돈 - 그러나 교배의 기회를 얻지 못하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이러한 생태계 사례를 바탕으로 추론해보면, 인간에게도 비슷한 유형의 자연선택적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는 주장이 매우 자연스럽게 들린다. '제한된 교미 기회로 인한 경쟁'이라는 자연선택적 압력이 오래 사는 것보다 훨씬 강력하기 때문에, 남성으로 태어난 인간이 단명하는 것은 여성이 남성에 비해 통계적으로 약한 근력을 갖는 것처럼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성의 기대수명이 더 짧은 오늘의 현실은 과연 '평등'하다고 할 수 있을까? 수명을 둘러싼 평등 논란은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을까?


혹시, 우리가 평등에 대해 지나친 환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1]. 조선일보, 2016-06-27 한국 여성 기대수명 세계 3위... 남성은 18위
[2]. BBC KOREA, 2017-10-28, 수명: 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사는 이유는?
[3]. Nieschlag, Eberhard, Susan Nieschlag, and Hermann M. Behre. "Lifespan and testosterone." Nature 366.6452 (1993): 215.
[4]. Campos, Cristina, et al. "Efficacy of a low dose of estrogen on antioxidant defenses and heart rate variability." Oxidative medicine and cellular longevity 2014 (2014).
[5]. Min, Kyung-Jin, Cheol-Koo Lee, and Han-Nam Park. "The lifespan of Korean eunuchs." Current Biology 22.18 (2012): R792-R793.
[6]. Quora, 2015-02-24, How does testosterone shorten one's lifespan?
[7]. Healthline, 2013-11-22, Too Much Testosterone Linked to Shorter Life Spans

매거진의 이전글 과학자에게서 1인 미디어를 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