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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곰돌이 Jun 12. 2018

대리모의 인권
:이 아(兒)는 누구 아(兒) 요?

14화. 수정과 착상, 생명을 둘러싼 법정다툼과 과학 한 스푼

대리모를 통해 자녀를 얻은 경우, 아이의 법적 친어머니는
대리출산을 의뢰한 부부가 아니라 낳아준 대리모이다.

지난달 18일, 서울 가정법원에서는 흥미로운 판결이 내려졌다. 사연은 이렇다. 자연적인 임신이 어렵던 A 씨 부부는 자신들의 수정란(A 씨의 난자와 A 씨 남편의 정자로 수정)을 대리모인 B 씨에게 착상시키는 방식으로 아이를 갖기로 했다. B 씨는 이렇게 착상한 아이를 미국의 한 병원에서 출산했고, 병원은 아이 어머니를 B 씨로 기재한 출생증명서를 발급했다. A 씨 부부는 아이를 자신들의 친자로 구청에 출생 신고하려 했지만, 구청은 어머니의 이름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에 대해 유전적 공통성보다는 '어머니의 출산'이라는 자연적 사실이 민법상 부모를 결정하는 기준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모자 관계는 임신기간, 출산, 수유 등 오랜 시간을 거쳐 형성된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며 정서적 유대관계도 '모성'으로 법률상 보호받아야 함을 밝혔다.[1] 그러나 이러한 판결은 선뜻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아이는 A 씨 부부의 수정란으로부터 발생했기 때문에 A 씨 부부의 유전자만 갖고 있다. 아래 그림에서 정자와 난자의 수정 이후, 난할을 거쳐 상실배에 이르기까지 시험관에서 키운 다음, 착상 가능한 자궁을 가진 대리모에게 초기 포배 단계의 수정란을 착상시켜 태아를 보호하고, 위탁 양육하게 된다. 

'유전자 전달'의 측면에서 출산을 보면
아이는 당연히 A 씨 부부의 자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물론, 사회적으로 '유전적 공통성'여부보다 '유대관계'가 부모를 결정하는 더 중요한 기준으로 통용되는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피 입양 사실로 잘 알려진 스티브 잡스의 경우 "친부모는 정자-난자만 제공했을 뿐, 내 진짜 부모님은 나를 길러주신 분들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자신의 부모를 선택하는 자녀의 관점에서는 유전자 유사성을 유대관계보다 우선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도 어려운 점이다. 이밖에도 대리모 여성과 신생아의 인권이라던지, 윤리적 문제 등이 고려 요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출산의 과정을, 사회적 계약이 체결되는
일련의 과정으로 바라본다면 어떨까? 

부모가 책임을 포기하거나, 양육 불성실 등의 이유로 자녀가 기존 계약을 파기하지 않는다면 유효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대리모 사건에서는 부모가 신체적 결함을 극복해 유전적 후손을 가질 자유를 누리려 했을 뿐, 자녀와의 자연적 계약을 파기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출산 직후의 아이 뇌는 생존과 성장, 보호자에 대한 애착 등을 충족시키는 최소한의 기능만 갖고 있어, 기초적인 의사를 표현하기 어려움을 고려하면 자녀에게서도 계약 파기의 의도를 확인할 수 없다.[2] 그렇다면 이 사건은 대리모 계약을 통해 자녀의 발생과정(수정란에서 신생아까지)에서의 양육을 위임한 것일 뿐, 부모 자녀 사이의 사회적 계약의 이행 주체가 변경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 베이비시터, 어린이집 선생님처럼 계약을 통해 양육의 책임을 일부 위임받는 행위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것이다. 


가장 시급한 것은 대리모 계약 원천봉쇄가 아니다.

파커와 라공의 연구(1994)에서는 대리모 계약에 참여하는 여성 대부분이 노동계층, 저학력으로 대리모에 대한 금전적 대가를 원한다는 연구 결과를 보고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대리모 참여 여성들은 대리모를 하나의 직업으로 바라보았으며, 자아실현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경우도 상당수 존재했다. 인권 논쟁을 통해 이득을 보는 것은 누구인가? 누구의 인권을 어떤 침해로부터 지키고자 하는가? 오늘날 가장 시급하게 논의되어야 할 점은 경제적 빈곤의 탈출구로, 혹은 출산이 어려운 신체적 특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참여자들에 의해 성립되는 대리모 계약을 무작정 금지할 것이 아니라, 경제적 빈곤으로 대리모를 택하는 경우가 줄어들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하고, 대리모와 신생아의 존엄성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구체적인 제도 마련을 논의하는 것이 아닐까.






[1]. 연합뉴스, 2018-05-18, 법원 "체외 수정해 얻은 자녀, 낳아준 대리모가 친어머니"

[2]. Gerhardt, Sue. Why love matters: How affection shapes a baby's brain. Routledge, 2014.

[3]. 나은지, and 권오성. "대리모의 법적 문제점과 입법 필요성에 관한 연구." 법학논총 28.2 (2015): 315-345.

[4]. 이병화. "국제 대리모 계약을 둘러싼 법적 친자관계 쟁점에 관한 헤이그 국제사법 회의의 최근 동향 분석 및 시사점." 국제사법연구 23.2 (2017): 37-117.

[5]. 이준일. "인권법: 사회적 이슈와 인권." 서울: 홍문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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