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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곰돌이 Jul 02. 2018

영화 '마녀(2018)'의 생물학

22화. 누가 그들에게 초능력을 주었나

주말을 맞아, 새로 나온 한국 영화 '마녀(2018)'를 관람하고 왔다. 한국 판타지 액션 영화에서는 쉽지 않았던 스타일리시한 느낌이 인상적이었고, 자주 만나보지 못했던 배우들을 통해 신선한 느낌도 들었다. 그런데 딱 한 가지, 이 영화에서 신선하지 않은 게 있다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설정인 '유전공학이 선물해 준 초능력'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 악당들은 '로건'의 유전자 돌연변이, '루시'의 뇌 능력 개방을 가져다 초능력으로 똘똘 뭉친 전투 병기의 '마녀'를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 한번 들여다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싶다.
인간의 평균 뇌 사용량이 10%라는 이야기는 근거가 전혀 없는 루머지만, 그정도 쯤은 애교로 넘어가도록 하자.


1. 총을 맞아도 눈 하나 깜짝 않는 신체: 고통을 못 느낀다? 

영화 속에서 유전자와 뇌가 개조된 인간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총을 여러 발 맞아도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감각을 뇌로 전달하는 신경 뉴런의 통로는 모두 끊겨 있을까? 그보다는 더 쉬운 방법을 사용했을 것이다. 중뇌의 중뇌 수도관 주위 회색질(peri-aqueductal gray)을 전기적으로 자극하면 통각 전달이 억제된다. 이와 같이 뇌간의 특정한 부분을 전기적으로 자극했을 때 통증의 소실이 일어나는 현상을 자극성 통증 소실(stimulation produced analgesia)이라고 한다.[a] 뇌의 기능을 100% 활용할 수 있다면, 해당 부위에 반복적으로 전기자극을 주어 통증을 완전히 없애버린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뇌의 상당히 많은 면적이 '감각'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뇌에는 미각, 후각, 시각, 청각을 비롯하여 뜨거움을 느끼는 온도감각, 아픔을 느끼는 통각처럼 거의 모든 감각을 담당하는 부위가 존재한다. 뇌를 100% 사용할 수는 있지만, 적어도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운 초능력자를 만들었으므로 뇌를 100%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데는 실패한 셈이다. 제대로 쓰지도 못할 뇌를 왜 100% 사용해서 주인공들의 수명을 깎아먹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초능력을 남발하는 주인공들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기까지 하면 너무 시시하니까 모른 척 눈감아 주도록 하자.


2. 왜소한 몸에서 나오는 괴력: 헐크의 유전자?

다음으로, 초능력자들의 '초능력'에 주목해보자. 왜소한 체구에서 괴력을 뿜어내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움직이며, 자유자재로 물건을 들어 올린다. 이건 솔직히 오버다. 왜냐하면, 호랑이의 괴력을 뿜어낼 수 있는 '다리 근육'을 만들 수 있는 유전자는 있지만, 왜소한 근육으로 벽을 박살 낼 힘을 낼 수 있게 하는 유전자는 없기 때문이다. 

괴력을 내려면 '헐크'처럼 무지막지한 근육을 갖던가, '토르'처럼 다이아 수저로 태어나던가..
당연하게도, 근력은 뇌로부터 만들어지지 않는다. 

근력(근육의 힘)을 결정하는 요인은 근육의 크기이다. 혹자는 '근육을 강하게 수축시키는 신호를 뇌에서 보낼 수 있지 않느냐'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근육을 수축시키는 신호는 뇌의 활용 수준에 따라 더 강해 지거나 약해지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 '근육을 수축시킬 만큼 강한가? 강하지 않은가?'를 판단하는 녀석이다.

중추신경계에서 보낸 운동신호(전기자극)이 골격근을 수축시키는 과정

 따라서 왜소한 주인공들이 헐크와 같은 괴력을 뿜어낼 가능성은 0%다. 다시 말해, 유전자 조작으로 주인공이 슈퍼 파워를 갖게 되었다면 주인공은 '마블리' 동석이 형과 '복서 배우' 이시영 같은 외형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음.. 주인공의 근육이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해서, 필요한 때에만 관객들 눈 깜짝할 사이에 커졌다가 다시 사라진다고 생각하자. 



그동안 너무 진지를 잡수신 글만 쓴 것 같아 오랜만에 아무 말 대잔치를 해 보았다. 역시 머리 식히는 데는 영화랑 아무 말이 최고다. 그리고 마녀는 근래 들어 개봉했던 한국 영화들 가운데 <지금 만나러 갑니다> 만큼 인상적인 영화였다. 조금 잔인해서 스크린의 절반은 손가락으로 가리고 보긴 했지만 말이다. 뭐,,, 내 유전자에 하자가 있거나 아니면 뇌를 10%밖에 활용하지 못해서 겁이 많은 것이라고 생각해 두자 :) 








[a]. 연세대학교 해부학교실

[b]. Widmaier, Eric P., Hershel Raff, and Kevin T. Strang. Vander's human physiology: the mechanisms of body function. McGraw-Hill Higher Education,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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