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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곰돌이 Jul 04. 2018

빨강보다 자극적인 색 :White

24화. 시각적 자극이란 무엇인가?

마크 맨슨의 베스트셀러 <신경 끄기의 기술>을 읽다가, 문득 이런 문구를 만나게 되었다.

바야흐로, '자극의 시대'다. 현대인의 삶은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경험들로 가득하다. 누군가는 굶주린 아이를 구하기 위해 하늘을 가로질러 아프리카로 향한다. 누군가는 30년을 바쳐 불후의 명작 소설을 집필한다. 누군가는 세계를 지배하는 혁신적인 스마트폰을 만드는 대신 가족을 버린다. 누군가는 학교에서 최고가 되어 상이란 상은 모조리 휩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런 말을 하고 있는 이 책도, 가장 자극적인 색을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자극적인 색의 활용은 최근 개봉한 영화 <오션스 8> 포스터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보이는가? 아주 자극적이다..

치명적으로 자극적인 색깔, 그건 '흰색'이다. 많은 사람들이 빨간색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생물학의 측면에서 보자면 자극적인 색깔은 아주, 아주 '흰'색이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자극'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면 의외로 쉽게 풀린다.

자극이란 무엇일까?

고등학교 생명과학 교과서에는 '자극과 반응'이라는 단원이 있지만, 자극과 반응에 관여하는 신경계, 감각기관에 주목할 뿐 자극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정작 다루고 있지 않다. 생물학적 자극이란 일반적으로 신경계의 반응을 유도하는 '어떤 것'이다. 그것은 갑작스러운 온도 변화일 수도 있고, 밝거나 어두운 빛일 수도 있고, 혹은 이 칼럼일 수도 있다. 이 칼럼도 당신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신경계의 반응'을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색(color)에 대해 알고 있는 상식에 따르면,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색깔 가운데 가장 자극적인 색은 빨간색, Red다. 언뜻 일리 있게 들리기도 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시각 세포인 원추세포와 간상세포 가운데, 색을 인식하는 원추세포에서 빨간색의 빛을 인지하는 세포가 가장 많기 때문이다. 빨간색 빛의 파장 영역을 인식하는 로우 세포, 초록색 빛의 파장을 인식하는 감마 세포, 파란색 빛을 인식하는 베타세포의 비율이 40:20:1 정도를 이루고 있다고 하니, 일반적으로 빨간색이 눈에 가장 잘 띄는, 그래서 '자극적'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색을 인식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자.
우리는 어떻게 책 표지의 '빨간색'을 인식할까?

그건 포스터와 부딪힌 빛 가운데 빨간색만 반사되어 우리 눈에 들어오고, 다른 빛들은 모두 흡수되기 때문이다. 우리 눈에 들어온 빛(에너지를 가진 광자)은 시각세포 안에 들어있는 '로돕신', '요돕신'을 분해하여 레티날과 옵신으로 만든다. 이렇게 로돕신이 분해될 때 발생하는 자극이 시세포를 흥분시키고, 만들어진 전기적 신호가 뇌로 향해 시각을 성립하게 된다.

시각의 성립과정.

그런데, 여기서 빨간색 포스터의 시각적 자극은 무수히 많은 빛 가운데 단 하나만 눈에 들어오는 것으로, 전체 백색광에 비하면 매우 낮은 자극이다. 물론 많은 시각세포를 자극시키긴 하지만, 전체 빛에 비하면 그리 밝은 빛도, 강한 자극도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사물에서 반사된 색을 , 그 사물의 색으로 인식한다.

반면에 흰색은 어떨까? 흰색 포스터는 모든 빛을 반사시킨다. 빨간색, 초록 색, 파란색 가릴 것 없이 가시광선 영역의 빛을 모두 반사시키는 것이 흰색이다. 필연적으로 '가장 밝은 빛'을 반사시키게 되는 것이다. 빛이 강하고, 밝을수록 높은 에너지를 가진 광자가 많아지게 되므로, 가장 많은 시각세포들을 자극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오르는 사람들은, 선글라스를 쓸 것을 권유받는다. 왜냐하면 흰 눈이 반사하는 빛에 시력이 손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흰색이 이렇게나 자극적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은, 우리를 꽤나 난감하게 만든다. 흰 옷을 입은 의사, 간호사들은 얼마나 자극적이며, 검은 가죽 재킷을 입은 폭주족은 얼마나 '시각적으로 온순'한가.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아찔한 광자들을 마구 반사시키는 신부보다는, 피로 범벅이 된 영화 <마녀>가 더 많이 시각적인 편안함을 제공해야 마땅하다.  생물은 일반적으로 편안할 때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므로, 빨간색을 어려워하지 않도록 진화했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흥미로운 것은, 색을 인지할 수 있는 '인간'과 '오랑우탄'은 본능적으로 빨간색을 지극히 혐오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하나의 핏줄을 공유하는 녀석들의 생물학인 진화론이나 진화심리학이 살고 있다. 생명과학이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난감하고 골치 아픈' 이유는 이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1]. 마크 맨슨, <신경 끄기의 기술>, 2017.10

[2]. 과학동아, 1999년 08호

[3]. 천재교육, 생명과학 I, 2012

[4]. Darnell, James E., Harvey F. Lodish, and David Baltimore. Molecular cell biology. Vol. 2. New York: Scientific American Books,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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