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돌이가 쓰는 동화는 어때요
주제: 인간의 기계화에 대한 비판과 인간성 회복 염원
맛, 그리고 저녁식사는 각각 요리, 그리고 가족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즐거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그런 즐거움을 찾아보기 어려워진 것 같아요. 바쁜 가족들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 어렵고, 가족들은 맛있는 요리를 즐기는 대신 간단한 빵이나 우유로 끼니를 대신하지요. 이러한 인간의 기본적인 즐거움을 포기하는 모습을 통해 오늘날의 사회를 비판하고 인간성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아버지와 예슬이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도구화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이것이 어른들의 문제일 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에게도 어떤 아픔을 주는지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아이들이 조금 더 즐거운 유년기를 만끽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햇볕이 따스한 봄날이에요. 운동장에서는 친구들이 축구를 하고 있어요. 최고동 우수초등학교 교실에도 벚꽃 잎이 내려앉았어요. 그런데 혹시 아세요?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라는 거요. 오늘은 수학 시험 결과가 나오는 날이에요. 이렇게 좋은 날, 하필 수학시험 결과가 나올 줄이야.
“네? 제가 50점이라고요?”
하지만 이건 해도 너무해요. 이번엔 공부도 열심히 했다고요! 80점은 되어야 해요.
“한슬아, 곱셈해야 하는데 덧셈을 했잖아. 이 문제는 깜빡하고 풀지도 않았네.”
으악! 이번 시험에도 아는 문제를 네 개나 틀렸어요. 하늘도 무심하시지. 또 꼴찌에요. 아무래도 전 엄마 아빠 아들이 아니고, 다리 밑에서 주워 온 아이인가 봐요. 우리 가족은 모두 똑똑한 사람들이거든요. 얼마 전에는 ‘최고동 대표 가족’으로 뽑혀서 상도 받았어요. 마을 사람들 말로는, 어쩌면 사람이 아니라 로봇일지도 모른대요. 하지만 우리 가족도 저녁 시간이면 밥을 먹으니까, 로봇은 아니에요. 그럼 비결이 도대체 뭐냐고요?
“한슬아, 예슬아, 저녁 다 됐다!”
저녁 식사 시간은, 우리 가족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이에요. 특별한 음식은 가족이 함께하는 저녁에만 먹을 수 있거든요.
“오늘은 간을 했는데 맛이 어떨지 모르겠구나. 한슬이도 반찬 투정 하지 말고 먹어 봐라.”
아빤 낮에는 컴퓨터 엔지니어로 일하시지만, 저녁에는 우리 집만의 특별한 오믈렛을 만드세요. 특제 오믈렛에는 컴퓨터 칩을 한주먹 넣어요. 컴퓨터 칩을 먹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요? 그래서 우리 집이 최고동 대표 가족인거죠. 컴퓨터 칩을 먹으면 컴퓨터처럼 똑똑해지거든요.
“예슬아, 집 앞 마트에 가서 김치찌개 재료들 좀 사 올래?”
“네. 그러면 다 합해서 삼만 오천이백 원 주세요.”
“올 때 주방 가위도 하나 사다 주겠니?” “그럼 사만 이천 칠백 원 주셔야 해요.”
칩을 먹으면 컴퓨터처럼 똑똑해진다는 걸 우리가 알게 된 건 한 달 전이었어요. 아버지께서 우연히 컴퓨터 칩을 맛보셨다가 엄청나게 똑똑해지신 뒤로, 우리 가족도 저녁 식사에서 먹게 된 거죠. 하지만 저는 컴퓨터 칩 오믈렛을 싫어해요. 정말 끔찍한 맛이 나거든요.
“한슬이 너, 오늘 수학시험 50점 받았다며?”“뭐? 그게 사실이야?”
“그게….”
“그러게, 아빠가 만들어주는 반찬 편식하지 말라고 했잖아. 편식은 해로워.”
“하지만 엄마, 너무 맛이 없는걸요?” “오늘은 꼭 먹어. 내일 시험은 잘 봐야 하지 않겠니?”
“와그작! 와그작!”
“까드득, 까드득!”
소리만 들어도 끔찍한데, 맛은 더 끔찍해요. 딱딱하고 뾰족한 건 어떻고요. 저걸 먹다간 이가 부러질 거예요. 옛날에 먹던 감자 칩 오믈렛을 매일 저녁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빠는 감자 칩을 딱딱하지 않고 부드럽게, 달콤하게 만드는 특별한 비법을 알고 있거든요. 하지만 엄마의 말이 맞을지도 몰라요. 편식은 나쁜 거라고 선생님이 그러셨거든요.
“엄마, 한슬이가 먹기 싫다는데 저 주세요. 제가 다 먹을래요.”
“예슬이 너, 내일 수행평가 있지?”
“네. 중요한 평가라 많이 먹어두려고요.”
예슬이는 쌍둥이인데, 컴퓨터 칩 요리를 정말 잘 먹어요. 그래서인지 수학도 저보다 훨씬 잘하고, 아는 것도 훨씬 많아요. 학교 선생님도, 친구들도 모두 예슬이가 척척박사라고 생각할 정도예요.
“예슬이 배 속에 있는 컴퓨터 칩은 한슬이 보다 열 배는 더 많을 거야. 더 똑똑한 게 당연해.”
아빠는 항상 예슬이를 이렇게 칭찬하곤 하셨어요.
예슬이가 처음부터 맛없는 컴퓨터 칩을 잘 먹은 것은 아니었어요. 예슬이는 원래도 똑똑했거든요. 그런데 수학시험만 되면 긴장해서 실수하곤 했어요.
“엄마, 저 내일 수학시험인데, 잘 못 보면 어떻게 해요?” “예슬아, 넌 열심히 공부했는걸. 공부한 만큼만 하면 돼.”
“아니에요! 이번 시험은 정말 잘하고 싶단 말이에요.”
아빠는 그런 예슬이에게 컴퓨터 칩을 슬쩍 권하셨어요.
“그럼 오늘 저녁은 아빠의 컴퓨터 칩 오믈렛을 먹어 보겠니?”
“컴퓨터 칩 요리요? 그게 뭔데요?”
“아빠가 얼마 전부터 먹기 시작한 건데, 사람을 컴퓨터처럼 똑똑하게 만들어 준단다.”
이상한 맛에 처음에는 예슬이도 손사래를 쳤어요.
“웩! 이걸 어떻게 먹어요?”
하지만 수학시험을 치르고 와서는 아빠의 요리에 완전히 빠져버리고 말았어요. 처음으로 100점을 받았거든요.
“엄마! 나 오늘 수학 100점 받았어요! 아빠! 컴퓨터 칩 하나 더 주세요!”
첫 시험은 하나, 두 번째는 다섯, 예슬이는 점점 더 많은 컴퓨터 칩을 먹었어요. 컴퓨터 칩은 예슬이를 지켜 주는 든든한 수호천사 같았어요.
“맛이 없긴 하지만, 뭐 어때? 칩 덕분에 시험도 잘 보는걸.”
“하지만, 그건 네 실력이 아니잖아.”
“그게 뭐 어때서? 시험만 잘 보면 되지!”
컴퓨터 칩은 아빠의 행복도 지켜 주었어요. 두 달 전, 회사에서 돌아온 날 저녁 무렵이었어요.
“나 왔어요.”
“여보, 오늘은 사장님이 뭐라고 하세요?”
“후우, 조만간 젊은 사람을 뽑을 거래. 지금 하는 일이 끝나면 나오지 말라고 하시더군.”
“아아…. 그럼 우리 집은 어떻게 해요?”
“무슨 방법이 있을 거야. 방법이….”
아빠는 사장님 회사에서 10년도 넘게 일을 했는데, 사장님은 아빠가 예전보다 일을 못한대요. 아무리 그래도 10년이나 일을 했는데, 간단히 내쫓다니요! 하지만 이제는 걱정할 일이 없게 되었어요. 아빠가 컴퓨터 칩을 먹은 뒤로, 사장님은 아빠 말이라면 무슨 말이든 믿으시거든요.
예슬이가 똑똑해질수록, 아빠가 웃으며 퇴근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우리 가족은 더 많은 칩 요리를 먹게 되었어요. 하지만 아빠의 요리는 날이 갈수록 더 이상한 맛이 났고, 그중에 컴퓨터 칩 오믈렛의 맛이 제일 이상했어요.
“맛이 없으면 어때? 이것만 있으면 우린 최고동 제일의 가족이야.”
아빠는 작은 냄비에 점점 더 많은 칩을 요리하기 시작했어요.
“덜그럭, 덜그럭.”
“티딕, 티딕.”
칩을 더 많이 요리할수록 이상한 냄새가 났어요. 맛도 이상하고, 소리도 이상했어요.
“아빠, 인제 그만 넣어도 되지 않아요?”
“아냐. 오늘 한 번만! 내일은 아빠가 중요한 일이 있어.”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열 번이 되었어요.
그러던 어느 저녁이었어요. 컴퓨터 칩을 끓여 놓은 냄비가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어요.
“쨍그랑!” “덜컹덜컹”
“아빠, 냄비가 이상해요!” “이상한 소리가 엄청 커요!”
“어어, 이게 무슨 일이지?”
“지글지글!”
주방에서 나는 소리가 점점 더 커졌어요. 우리는 모두 덜덜 떨기 시작했어요.
“꽈르릉!” “으악!”
“엄마!” “여보!” “깜짝이야!”
“티딕, 티디딕..”
눈 깜짝할 사이였어요. 냄비 안에 있던 컴퓨터 칩이 모조리 폭발해 버렸어요. 칩을 한가득 끓이던 냄비 뚜껑은 바닥을 한번, 벽을 한번 때리고는 창문 밖으로 날아가 버렸어요. 우리 가족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냄비 안에는 먹을 수 있는 컴퓨터 칩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어요. 집 안에는 매캐한 연기만 한가득이었어요.
“아무래도 안 되겠다. 오늘 컴퓨터 칩을 먹는 건 무리겠어.”
“맞아요. 남아 있는 컴퓨터 칩도 없어요.”
“아빠, 그럼 제 숙제는 어떻게 해요?” “예슬아. 아직 내일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어. 네 힘으로 해결할 수 있을 거야. 어려운 숙제도 아니잖니?”
“아빠. 그럼 저도 맛없는 컴퓨터 칩 안 먹어도 돼요?”
“으음…. 아쉽지만, 당분간 컴퓨터 칩 요리는 먹지 말자.”
“그럼 오늘은 감자 칩 오믈렛 요리를 해주세요!”
“허허. 오늘만 특별히 아빠가 옛날 솜씨 발휘 좀 해 볼까?”
그날 저녁,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아빠가 만든 감자 칩 오믈렛을 먹었어요. 지금까지 먹어 본 아빠의 오믈렛 가운데 최고였어요. 보들보들하고 고소한 감자에 새콤한 케첩을 뿌린 맛이 제격이었어요. 맞다, 달콤한 초콜릿 케이크도 먹었어요. 한 조각 떼어서 입안에 넣으면 부드러운 초콜릿처럼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 없어지는 케이크가 꿀맛 같았어요. 우리 가족의 저녁 식사는 오랜만에 즐거운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어요.
저녁을 먹고, 예슬이는 저녁 내내 열심히 과제를, 아빠와 저는 주방을 깨끗이 정리했어요. 코끝에서 오믈렛 냄새가 빙글빙글 맴돌았고, 입안에는 달콤한 초콜릿 맛이 혀를 간질였어요. 제 입에서도 비죽비죽 웃음이 피어났어요. 벚꽃 잎이 창가에 한가득 걸린 따듯한 봄의 밤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