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스트레칭'으로서 취미의 가치에 대하여
오후3시 무렵, 책상 앞에 앉아 논문을 읽으려는 때에, 문득 그런 순간이 있다. 글이, 글자로만 보이는 순간이다. '보인다'고 표현하는 까닭은, 이러한 순간에 우리들은 의미의 바다로 점프하여 빛이 산란되는 텍스트 아래에 담긴 뜻을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빛이 어지럽게 부서지는 수면의 움직임을 맹목적으로 좇아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순간에 봉착하면, 본능적으로 '아, 뇌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아직 완전히 우리 것으로 만들지 못한,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영역에 도전할 만큼 뇌가 투쟁심과 호기심으로 가득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고집이 어떠하건, 혹은 그 영역이 언제까지 개척되어야 하는 과제이든 후퇴하는 것만이 답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 사실을 납득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제나, 제한된 시간에 의하여 끊임없이, 역량의 한계에 도전할 것을 종용받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일단 후퇴'를 선언하기란 어렵다. 더구나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이라면, 시시때때로 우리 역량의 한계를 시험하고 싶어하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에 의해 내몰리고는 한다.
하지만 이 글은 시험하는 사람이나, 시험당하는 사람을 탓하기 위해 쓰여진 글은 아니다. 왜냐하면 대학을 벗어나, 이제 막 사회로 편입되려 하는 사람들이 그 가치를 종합적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시험을 거쳐야 하는 것이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는지,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은 어떤지, 시간 약속은 잘 지키는지, 조직에 잘 융화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조직을 수렁에서 끌어올리기 위해 가장 아래서 팔을 걷어붙힐 수 있는 사람인지, 그런 것들을 평가받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끊임없이 파도치는 벼랑으로 내몰리게 된다. 그런 과정을 지나고서야 조직의 미래를 맡기고, 기를 수 있는 후계자를(후배-부하직원-부사수-쪼렙-1년차-따까리 등 우리를 지칭하는 무수히 많은 용어가 있지만, 나는 이 단어가 옳다고 생각한다) 후보들 중에서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이다.
역량의 한계를 시험받고 나면, 후폭풍이 찾아온다. 때때로 과격한 운동을 하고 나서 며칠간 근육통에 시달리는 것처럼.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아프면 아프다고 한다. 그것은 역치값을 넘은 연속적인 물리적 신호의 결과일 뿐이며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몸이 아플 때 적절하게 대응해야 한다. 휴식을 취하는 것도 방법이다. 신체적 활동 뿐 아니라, 지적 활동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지적인 근육통'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며, 우리가 '지적인 근육통'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할 수 있는 단서는 무엇일까. 그 답은 아직 모르지만, 단순히 '쓰지 않는 것'은 그 답이 되기 어렵다고 믿는다.
근육통을 생각해 보자. 우리가 근육을 키우기 위해 운동하다가 근육통이 생겼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침대에 가만히 누워 휴식을 취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것은 근육통을 가시게 해 줄 수는 있지만, 우리의 본래 목적을 달성하도록 도와주지는 않는다.
통증을 해소하는 데에만 집중하면, 다음 번에 한계에 부딪혔을 때에도 우리는 또다시 나가 떨어지게 될 것이다. '지적 근육통'을 해소할 수 있는, '지적 스트레칭'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일시적인 번-아웃(burnout)에서 좀 더 빠르게 회복할 수 있을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취미'의 역할이 이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취미 활동을 하는 사람은 알겠지만, 취미 활동은 단순한 의미의 '휴식'을 의미하지만은 않는다. 프라모델을 조립하거나, 목재를 잘라 가구를 만들거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활동은 때로 우리가 일터에서 마주하는 활동보다도 더욱 '휴식'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취미로 블로그를 운영하기도 하고, 유튜브에서 시사 이슈를 해설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은 일상에서의 스트레스에도 더 잘 대응한다.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기도 한다. 과학 논문을 읽는 행위가 단순히 '공부'라는 의미를 넘어 '과학기사 아이템 발굴'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는 것처럼.
여기서 일은 사회적인 의미의 일(job)이 아니라, 생물학적인 의미에서의 일(activation)이다. 우리가 흔히 '휴식'이라고 생각하는 운동도, 생물학적으로 보자면 극악무도하게 근육세포들을 일하게 하고, 소모시키는 활동이다. 잘 해야한다는 부담감, 견뎌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나 잘 하면 잘 하는 대로, 못 하면 못 하는 대로 일할 수 있는 것을 우리는 '취미'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쉬고 싶다'고 하는 것은 꼭 일을 하지 않는 것(inactivation)만은 아닌 것 같다. 가만히 살펴 보면, 일을 하지 않는 순간에도 끊임없이 다른 일을 찾아 헤매고 있지는 않은가. 좋아하는 지적 활동을 적절한 수준으로 수행할 때, 다시 '지적 도전'을 할 수 있는 추진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