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자살골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무리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 시베리아에서

by 글쓰는곰돌이

<스물셋, 네덜란드 세렌디피티_2>


삶은 무엇일까? 달걀이라는 말은 진부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농담 가운데 하나이다. 누군가는 삶을 뭐라더라, 알 수 없는 것 같다고 했던 것 같다. 아마 그랬을 거다. 꽤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도 삶이란 그토록 설명하기 어려웠음에 틀림 없다. 왜냐하면 삶이 뭔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었을 테니까. 이십 삼 년 겨우 살아온 나도, 삶이 뭔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생각이란 것 자체를 제대로 해 본 적은 있었나? 적어도 내가 살았던 곳에선 생각은 대개 사치에 가까웠다. 시험 범위를 외우고, 외운 걸 꺼내 옮기는 건 생각이 아니다. 그건 입력과 출력에 가깝다. 말하자면 계산기 같은 거다. 1+1을 하면 2를 써내는.


사는 게 뭘까? 나는 언제부터 살기 시작했을까? 96년 4월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건 타인에게서 의미를 부여받았을지언정, 스스로 삶에 의미를 가지기 시작했던 때는 아니었으니까. 그렇다면 타인에게서 부여받는 의미로 규정된 나에게서 어긋나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처음은 '생명과학을 전공한 게 낭패스럽고 부끄럽지 않게 느껴졌을 때'였다.


대학을 선택할 때, 서울에서 공학을 선택하는 길과 포항에서 생명과학을 선택하는 길에 섰다. 그 갈림길에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포항이라는 도시에 들어앉기로, 스스로 결정했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친구들도 의외라고 생각했다. 서울의 공대를 포기하는 건, 사회적 통념을 동그랗게 말아서 내 골대에 자살골을 넣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을 지 모르지만, 처음 대학에 입학할 때만 해도 자연과학, 그 중에서도 생명과학을 선택하는 건 남들보다 조금 더 피곤한 삶을 자청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서울을 떠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넌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는 말도 못 들어봤니?


그래도 그냥 포항이, 생명과학이 끌렸다. 마치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것처럼.

wKHMvgeaXDZK2C9UUyiwDnflyvluFZ_KGYG_tX6-S9VshC2uosb-vfHq1t17CobmnjYF2tPqCvzvosYzlODGqBpWmoX1C2kla_vOtSn55FTWUQOdlz7bk_dcXxN9CCIgh2-6zhZNy4S95jkzaYh2iObM2uQ-pEa-txN8GNLV7m_KKQZNAsSwakz3ICm2eXHg5P3tQjyX5pXw7CHpMuP4L_eXVIhQ37-AdIPgNQqeRyk8SIXlJomp92r93KnpZSveOZT254EGFd2i0ys4GsuXAx-pIqYXVi1xRDr15Udp0ZziYq9o44Qv2DW2bIygV4e59nAViHAyZqDEuAJk_3wLVUo2zmIO5B-T312j1dewT7F_CG2CNY-m0tl7enjmXofdb9m1dc5JY5NA4L6SWaSeauxHS6ZTnrZT-nx9OKQ_rNQQUccz0Am86CzoiLvOZk7rSjWIa_pQxPv7f6as620GCtuJLols_QyWGXsPRFGkGZORL41ORcKWQNwSvxLD5g9AJm4ZM7G3uBgbIU8jCpIe7XkbtB8qfx5TN-L7wgWmSdReZlyUw9QPMIT0dVCh0nRWC06hWl-brZJLR1409lSiPTLzZND9ljkU4Z-L94v0nT9pOR7fj_R2TzRTgz0jE3M=w959-h720-no 문득 바다를 그리고 싶어지는 것처럼,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것처럼, 그냥 그렇게 된다.


두 번째는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을 때'였다. 글을 써서 뭘 할 수 있더라? 우리나라 출판 시장이 사망선고 직전이라는 말은 어디서 주워 들었다. 밥은 벌어먹고 살 수 있나? 모르긴 몰라도 생명과학자가 되는 것보다 더 풍족하게 살 것 같진 않았다. 굶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내 선택은 왜 항상 이모양이람, 투덜거리면서도 그게 재미있었다. 다른 건 아니었는데, 글을 쓰는 건 재미있었다. 야구 경기를 보며 치킨을 뜯는 것보다도 더. 취미로 페이스북에 끄적이는 것을 좋아했지만, '잘' 쓰는 사람은 아니었다고 확신한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짧은 기간 동안 누구보다 많은 공모전에 예선 탈락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많은 사람들이 돌아봐 주면 고마웠고,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내가 쓰고 싶은 말을 다 늘어놓으면 그뿐이었다. 어차피 못하는 거, 부담도 없어 홀가분했다. 좋은 글을 베껴 써 보기도 하고, 좋아하는 작가의 문체를 흉내 내 보기도 했다. 연구실에서 틈틈이 글을 쓰다 지우기를 반복하다가도, 운 좋게 멋진 문장을 떠올린 날이면 하루 종일 그 문장을 머릿속으로 되뇌며 싱글벙글했다. 그렇게 내 인생에 두 번째 자살골을 넣었다.


보통 축구 경기에서는, 자살골을 두 개 넣으면 게임이 끝났다고 생각한다. 90분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에, 한 골 넣기도 어려운데 초반 20분 동안 자살골을 두 개나 넣는다고 생각해 보라. 모르긴 몰라도, 무승부라도 만들고 싶으면 남은 시간 동안 발에 땀이 나게 뛰어야 할 거다. 그러고 나서도 골을 못 넣을지도 모르지.

zBg03WH0xLxZuXJpGerDm5rVyYyvk4iTQCvtHngdk6ewjjHDe58gHv9hKBAsgtDyHKW5A1XZXc0Btn346Ki4OZO0iokfJYehPZ1AZ7OGLkruXxbHBE8EkZjQeQVGM5vv1UOEWuVgOTu7uCtbqy3sTyFevv22gBewFqM7yYOkERengTqNGPntXeVSvhYvPK5HK5I51hBe2ZfHtbzbdzmzylB9UQ6OqPZC6rXfX_pUrZNYRFei3bGigzxJ3Ck45lQSGYI7_S2I-SxTBXorRTnp1KJoGJJgQcjmEcHhKtxFRqJp_axv9Tyep81fSlI3wLm1eHToU_9VhyEn4oc0SgWayv3uL-21mobSBYzhecNCuV8xymsbsepygOyKhvQl3T6an9VF4WVDlRZ3L-owB41mC6tMFUF7DvFs1alWpmn5MacFQ9lAB7CUcHLmh15Tdw-Y1MYJZf7Q3Y3b9Yfyyq4NqoDTllididfQkgsja1HhWePY3siUiPMS-a35090tvMM-ypunqV4Q3fyT1i4qJhovPPCiaEnsiHwJpKbUdpJUTt81ZeAG2s3-AS98jxtP8-bKRqf7H329VhBKEiCdrkSaBnZXhhTn6QESaydEVQBzCeIPUNcPBVglL5BRHBTqL80=w959-h720-no 기차는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지만, 그게 이 사람들의 목적지는 아니다. 저마다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것처럼.

그래도 그냥 '이런 망할, 이게 내 삶이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살다 보니 다른 친구들은 기계공학이나 전자공학 같은 걸 좋아해서 먹고 살 길이 열린 것 같은데 나는 생명과학과 글쓰기를 좋아해서 고생길이 훤한 것처럼 느껴진다. 다들 하루빨리 대학원에 들어가 조금이라도 더 좋은 연구자가 되려고 달려가는데, 나는 '도대체 삶이란 게 뭐냐'하는 소리나 지껄이면서 머리 위로 지나가는 비행기를 올려다 보고, 요란하게 덜컹거리는 179시간짜리 횡단 열차에 몸을 싣는다. 자살, 자살골이다. 이건 완벽한 자살골이다.


그런데 망할! 이게 내가 살아야 할 방식인 것 같다. 나는 어쩌면 부자가 되기보다는, 실험실에서 현미경이나 보고 살도록 그렇게 머릿속에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는 게 아닐까. 비행기를 타고 꿈속을 날아가기보다는 덜컹대는 기차를 타야만 살 수 있도록 만들어진 건 아닐까. 잘 먹고 잘 살려고 열심히 공부했는데 평생 공부나 하면서 살 운명이라니, 이보다 더 뭣 같을 수 있을까.

이런 뭣 같은 삶이 재미있다. 삽질을 하면서도 다음 삽을 고민하고, 어떻게 더 잘 삽질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누구보다 깊고 넓게 삽질할 수 있을지, 그런 생각만 든다.



난 살아있다.


살아있다는 건, 언젠가 죽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내가 살아있기로 결정했다면, 언제든 죽을 위험도 갖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언제는 안전한 때가 있었나. '안전한 삶'에 대한 기대는 신기루다. 안전띠는 매야 한다. 하지만 사고가 날까 무서워 걸어 다니겠다는 것은 바보짓이다. 아무리 성실히 걸어 다니더라도 그건 '성실한 바보'일 뿐이다. 게다가 '성실한 바보'라고 해서 위험을 피해 가는 것도 아니다. 걸어 다니다가도 차에 치여 죽을 수 있다.

p4GgQnp-5i02U8zHcJvkjRGeHX79YjEZRgnvINzs-Jj6qEOrdbmtn9CXfu4CUroZuV1W_UMYO3phwe44ZWygz_8zP34GNsJ6P3cwM1CnwdUd5NXcGwBjTlk1nQD0E9mgK_7iqZUF8bW02niN3x3NJA_IJflr9F4z5AGjTVRf40beS83MqwiuEZONzRxUgd4WW1wFxPpkXmR7nMc2O-pNvgdRZQfjRABaqOYnAMn18MEcZ1BFVpLUUwLGO2wIfWu-cLmG6jMIECMcalMyc5mbuut9d3zU-53bbBIjTTVF6X8fO2VPKcOAkpwEFu_aJ_x_6SURZ4hcZ_W39P0jUAWO6p2dJEbBljV0BxiyYEP-BtRtILXjDVHXaQXq8IF_lJwrNQ_x7dPRawKxbr-O_O0L9eOiafhDNCUiX5CQi47mvDlztzTeZbH2lVE5JGDegV34iz2-sUfykgVv0iWRmDyH8PGf7hVGKIKzN4bXsBcFqQPm3celTP7FtlfmBCVjzM8fbJbHTAnIwux_8qgziS4qdHwCgmJXYkypQ3Ed00tFVco0M-QiOJw2QZs2-fgW7QrC04zqHCj7xjPSteoBneA-mTgTn8gtiRFj0p_GJ9OavzONmzZVvmDhBWsQ7dTB3gk=w959-h540-no

그러니까 말하자면, 우리는 차의 시동을 켜고 어디론가 출발해야 한다. 차키를 짤랑거리며 걷는 사람들은 영원히 어린아이의 울타리를 넘을 수 없다.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엔진 상태는 아무도 모른다. 달리다 멈추는 날 알게 되겠지. 그럼에도 언젠가는 위험을 무릅쓰고 시동을 걸어야 할 때가 반드시 찾아온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인생이 아니다. 그건 사는 게 아니다.

(장강명, 5년 만의 신혼여행에서 일부)


좋아요, 구독으로 응원해주세요 .pn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모스크바 행(行) 열차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