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행(行) 열차를 기다리며

한국을 떠나 네덜란드로 향하다

by 글쓰는곰돌이

<스물셋, 네덜란드 세렌디피티_1>


기차는 새벽에나 있을 예정이었다. 작은 항구도시에는 어둠이 내려앉았고, 사람들은 음악소리를 따라 바닷가로, 혹은 가족들의 웃음소리를 따라 집으로 떠나갔다. 왕래하는 이들이 모두 떠난 터미널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배낭을 비스듬히 의자에 앉혀 두고, 조용한 그곳에 일기장을 꺼내어 한 장씩 넘겨보았다.


대학생 시절에는 '여유'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공대 수업은 따라가기에도 벅찼고, 매달 말에는 돈이 떨어져서 빵만 사 먹기도 여러 번이었다. 친구를 기다릴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밥은 혼자 해결하기 일쑤였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몰랐지만 쓸모는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꿈을 향해 바삐 전진하는 청사진을 머릿속에 그려 놓고 보니, 이만한 인재가 없다 싶었다. 손대는 일마다 그럭저럭 풀리고 좋은 사람들만 만나다 보니, 지금처럼 경력을 쌓으며 착실히 공부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는 대신 잘 하는 일을 좋아한다고 생각하기로 했고, 서둘러 꿈으로 삼았다. 미션을 달성하듯, 아침 아홉 시부터 새벽 두 시까지 빽빽하게 짜인 시간표를 한 칸씩 밟아 가며 나도 모를 꿈에 성큼성큼 다가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레닌 동상.

조금씩 이상함을 느꼈던 것은 잘 풀리지 않는 일이 하나 둘 생겨나면서부터였다. 마음먹은 대로 잘 풀리지 않으니 얼굴을 붉히기 일쑤였고, 조금씩 흥미를 잃어가면서 문제를 풀어보려 애쓰는 일도 덧없게만 느껴졌다. 이대로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었을 때, 진짜 모습은 과연 상상과 같을 지 두려워졌다. 문득 그 날의 감정들을 일기에 옮기기 시작한 것도, 답답한 마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서였다. 꽁꽁 싸맨 마음을 한 꺼풀씩 벗겨 노트에 펼쳐 놓으면 한결 홀가분해지는 기분이 좋아서, 매일 책상에 앉아 꼼지락거리고는 했다.


공대 생활이 끝나가고 사회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을 무렵, 이렇게 어른이 되는 일이 문득 두렵게 느껴졌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좋아한다고 믿은 채 살아가게 될 까 무서웠다. 고민 끝에 졸업을 미루고, 노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소재를 찾는다는 핑계로 이곳저곳을 쏘다니게 된 것도 그 때부터였다. 요리에 도전하겠다며 부침개를 시작했다가 까만 쿠키를 만들어 놓는가 하면, 머릿속이 복잡한 날은 거리에 나가 해가 들지 않는 골목 구석구석을 쏘다니기도 했다. 노래에 재미를 느껴 노래방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운 좋게 합창 공연단에 합류해 대학 졸업식 무대에 서기도 했다. 아무 곳에나 나를 던져 놓고 두 눈에, 피부에 담은 느낌을 노트에 풀어냈다.

순간들을 조금 더 사랑할 수 있도록, 딱 한 마디만 더 용기를 낸다.

길어진 학업, 등록금, 뒤처진다는 걱정. 졸업 후에도 꽤 오랜 시간 공부를 계속할 삶을 예정해 놓았다.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인제 그만 방황하고 ‘네 일’로 돌아와야 하지 않겠느냐고 다독인다. 듣기 좋을 말을 하는 것이 예의가 되고, 속마음을 숨기는 방법을 배우는 게 필수요건처럼 되어 버린 이십 대의 골짜기 어디쯤을 지날 나는, 누군가의 말처럼 ‘내일’을 잃어버리게 될 까.


어린 시절, 유치원을 다니며 소꿉장난으로 시를 짓던 때가 있었다. 일기보다 짧은 시를 짓는 게 좋아서, 매일 밤 어머니가 사 주신 일기장에 유치한 시를 풀어놓고는 했다. 한 권 빼곡히 적어 어머니께 보여드렸을 때, 어머니는 나중에 네가 지은 시를 모아 시집을 내주겠다고 하셨다. 그 낡은 일기장을 며칠 전에 어머니의 책장을 정리하다가 다시 찾았다. 어쩌면 오랜 시간 동안 잃어버렸던 나를 되찾은 건 아닐까.


“기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문득 안내방송이 흘러나와 터미널에 내려앉은 어둠을 씻어 내고, 새벽 기차가 들어온다. 어느샌가 하나 둘 승강장에 들어선 승객을 따라 기차에 오르니, 머리를 땋은 승무원이 기지개를 켜며 반갑게 맞아준다. 기차는 내일로, 서쪽으로 달려갈 뿐이지만, 승객들은 저마다의 목적지를 머릿속에 그리며 기차에 오른다. 누구도 대신 가줄 수 없는, 누구를 흉내 낼 수도 없는 길일 것이라고 넘겨짚어 본다. 가끔 예전처럼 마음이 조급해지려 할 때, 호주머니 속의 다이어리를 만지작거려 본다. 손바닥만 하게 작다. 너무 느긋하게도, 너무 급하게도 가지 말고 딱 이만큼만 솔직해지자고 생각한다. 떠나는 이들을 배웅하는 승강장에도 아침이 찾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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