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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곰돌이 Oct 02. 2018

자유의 도시에서 찾는 것

네덜란드에 사는 교환학생이 파티에 나가지 않는 이유

"여기가 암스테르담인가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죠. 암스테르담은 나무의 나이테랑 비슷해서, 중심부로 들어갈수록 더 오래된 곳이 나오거든요."
"이 집들은 많이 오래됐나요?"
"대부분 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죠. 우리 도시에는 화려한 역사가 있어요. 비록 관광객들은 대부분 홍등가만 보고 싶어 하지만요."

아저씨가 잠깐 말을 멈추었다.

"어떤 관광객들은 암스테르담이 죄악의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 여긴 자유의 도시예요. 그리고 자유가 있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죄악을 찾죠."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안녕 헤이즐)-, p.122

네덜란드에 온 이후로 거의 매일 파티 참가 권유 메시지를 받는다. 영화 파티, 국제 언어 파티, 바비큐 파티, 라틴 파티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기숙사를 활용해 밤새도록 댄스파티를 여는 곳들까지 크고 작은 파티가 매일같이 열린다. 점심, 저녁, 커피 등 소규모의 모임은 물론이다. 생일 축하 모임도 '파티', 저녁식사도 '포틀럭 파티'같은 식으로 파티라는 이름을 폭넓게 사용하는 덕에 같은 '파티'라도 모임들은 서로 천차만별의 성격을 갖고 있다.


파티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에서 파티는 '식사, 음주, 오락을 포함하고 있는, 초대받은 사람들의 사회적 모임'을 의미한다. 호스트(주최자)와 구성원에 따라 정치적 모임이 될 수도(tea party), 독서클럽이나 향우회가 될 수도, 종교모임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정의에 비춰 보면 네덜란드는 거의 매일의 식사시간마다 크고 작은 파티가 열린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네덜란드의 파티문화가 독특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익숙하지 않은 사람과의 모임'이 한국에선 흔치 않기 때문이다. 혼밥에 익숙하며 때로 가까운 친구들과의 맛집 탐방 같은 소박한 '파티'가 대부분인 한국 사람에게,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사상이 훨씬 깊게 배어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서유럽- 그중에서도 이곳 네덜란드에서 밤마다 사회적 모임인 '파티'가 열린다는 것은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한편, 파티가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사회적 모임이라는 점에서, 파티의 성격은 그 호스트(주최자)와 구성원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는다. 정치적 모임(정당)이 될 수도, 독서클럽이나 향우회가 될 수도, 종교모임이 될 수도 있고 그냥 댄스파티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교환학생이 참여할 수 있는 파티는 대개 '향우회'와 '술이 포함된 댄스파티' 정도가 주류를 이룬다. 이런 사실은 때로 나를 피곤하게 하는 원인이 되는데, '술'을 기반으로 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각각의 인격을 그 자체로 존중하는 대신 감각을 무뎌지게 해서 일체감을 느끼게 하는 술은 반 쪽짜리 일체감을 만들어내고, 종종 공허감을 동반한다.

교환학생으로 돈 들여서 유럽까지 왔는데 좀 어울려야 하지 않니?


공허감이라는 심연에 빨려들어가지 않기 위해 뭔가에 홀린 것처럼 게걸스럽게 관계를 찾아 헤맨다. 파티에 개근하고, 술자리에 어울린다. '어울림'이라는 것-함께 잘 사귀어 지내거나 일정한 분위기에 끼어들어 같이 휩싸이는 것은 쉽다. 하지만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교류일까? 인터넷으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도 얼굴을 마주 보고 통화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여전히 다른 종교, 다른 인종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만연한 것은 서로 어울릴 기회가 부족해서일까? 중요한 것은 교류의 유무가 아니라, 교류 상대와 교류 방식이 아닐까. 


이 웃음소리가, 이 즐거움이 갑갑하다. 너무 쉽게 당신을 이해한다고 말한다. '그래, 다 이해해. 네 맘 알아.' 하지만 정말 이해할 수 있을까. 22년을 함께 한 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그들이 어떻게 잘 알겠는가. 이해라는 단어는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지독한 쉰내가 나는 찬밥처럼 그 온기를 잃는다. 커피 한잔을 함께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뿐인데, 모든 게 풍족한 저녁 밥상에 그 조그만 커피가 없어서 먹어도 먹어도 허기지다. 무더운 도시에 그 작은 온기가 없어서 밤바람이 차갑다.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을 몇 개월간 넘나들며 핸드폰 지도 앱에 수백 개의 별표를 쳤다.

맛있다는 추천에, 예쁘다는 추천에 얼굴도 본 적 없는 타인들의 추천에 별은 끝없이 번식했고 어느새 은하수가 되어 버렸다. 

덕분에 나는 블랙홀에 빠져 버렸다. 

내게 필요한 것은 남의 은하수가 아니었다. 나만의 견고한 별 하나였다.

-김민철, <모든 요일의 여행>에서-



나는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나를 그대로 이해해 줄 사람. 남과 다른 나의 결을 있는 그대로 쓰다듬어줄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 다시는 돌려받지 못할 삶의 일부를 주고 싶다. 서로의 과거와 다가올 미래가 맞닿은 한 번뿐인 소중한 오늘을 함께 만들어나갈 사람. 젊은 한 때를 온전히 하나의 인연으로 기억되게 하는 사람. 그 사람에게 온전히 하나의 인연으로 기억되는 사람이고 싶다. 그가 만든 궤도를 타며 주위를 맴도는 위성이 되고 싶다. 


나는 그런 친구를, 인연을 찾아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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