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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곰돌이 Sep 19. 2018

'글 쓰는 사람'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답은 항상 당신이 갖고 있었는데

어떤 모임에서 '글 쓰는 사람'임이 밝혀질 때, 사람들의 반응은 주로 세 가지다. 무관심하거나(...), 비웃거나(네가 무슨?), 이상화(Idealize)하거나. 그 가운데 가장 당황스러운 반응은 '뭔가 특별한 게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을 자신과 다른 사람으로 타자화(他者化)하고, 어떤 '이미지'로 왜곡한다. 세계를 바라보는 특별한 시각, 가치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럴 때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자, 이제 진지한 대화를 들려줘 봐!


안타까운 사실은, 그런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진지한 대화'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이 바라는 '진지한 대화'란 자기가 갖지 못했던 비일상적인 통찰을 끄집어내 주는 '어떤 계기'를 의미하는 것이겠지만, '글 쓰는 사람'은 그런 묘기를 펼쳐 보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시대의 지성知聖들에게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들은 항상 잘못된 번지수를 찾아 헤맨다. 왜 그들을 위한 '진지한 대화'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가? '글 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글 쓰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글 쓰는 사람들은 매일 아침 일어나 글을 쓰기 시작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자전적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하루키는 소설을 쓸 때 새벽 4시에 일어나 대여섯 시간을 쉬지 않고 일한 다음, 오후에는 달리기나 수영을 하고, 이런저런 일을 하거나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저녁 9시가 되면 잠자리에 든다. "나는 이런 습관을 매일 별다른 변화를 주지 않고 반복한다. 그러다 보면 반복 자체가 중요한 것이 된다. 반복은 일종의 최면으로, 반복 과정에서 나는 최면에 걸린 듯 더 심원한 정신 상태에 이른다." 별다를 게 없는 삶, 별다를 게 없는 일상 속에서 그는 하루 6시간씩, 원고지 20장씩 꼬박꼬박 쓴다. 소설가 백영옥은 10년쯤 작가로 살다 보니, 글은 '그냥 쓰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어떻게 '그냥'쓰면서 그렇게 많은, 울림 있는 글을 만들어내는가.

평범한 사람들과 무엇이 다른가. 다르기는 한 가?


며칠 전 H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일이 있었다. 조금 길게 이야기하던 중이었는데, H는 문득 "맞아, 나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라고 말했다. H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어서, 내 경우에도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혹은 작가들의 책을 읽을 때 '맞아, 나도 이것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어!"라고 종종 생각하곤 한다. 그러니까 '글 쓰는 사람'들의 생각은 '그들만의 특별한'특산물이라기보다는,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 경험하는' 생각들에 가깝다.


하지만 이렇게 사람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은 조금 다른 운명을 맞이한다. 어떤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지나가는 생각들이 소중하게 보관되고, 요긴하게 쓰이는 반면에 어떤 사람의 머리에서는 먹고사니즘(과 심심풀이 술자리들과 공허한 농담 따먹기들)에 의해 뒤로 밀려난다. 써먹을 데 없이 진지한 '선비 같은'생각들, 도대체 삶이란 게 뭐냐 따위의 질문들을 품고 사는 건 통념상 사회에서의 생존경쟁에 유리하지 않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옆에서 누군가 다시 알려 주기 전까지 완전히 까맣게 잊어버린다. 


당신의 잃어버린 문장을 되찾아 주는 사람, 그 뿐.


'글 쓰는 사람'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어떤 사람들이 울림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는, 사실 모든 사람들이 이미 멋진 문장을, 삶에 대한 고민의 답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어떤 사람들만이 수북이 쌓인 먼지를 정성 들여 닦아낸다. 당신이 잃어버린 문장들조차 주워 담아 아끼는 사람, 때로는 잃어버린 문장을 되찾아 주기도 하지만, 대개는 몇 번이고 돌려주기밖에 할 수 없는 사람. 그렇다면 누군가 삶에서 중요한 질문에 부딪혔을 때 '자, 이제 진지한 대화를 해보자'라고 제안해야 할 대상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 아닐까. 거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답은 원래 거기 있었으니까. 누구도 모르게 흘려보낸 답은 누가 운 좋게 쥐여준다 한들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말 테니까. 그리고 나면 잃어버린 답은 거짓말처럼 제 자리를 찾아온다. 반드시 그러게 되어 있다.

답은 꽃과 같아서 
값싸게 얻으려는 사람의 품에서는 시들어 버리고, 정성 들여 물을 주는 사람에게서 스스로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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