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생활비가 든 지갑을 잃어버린 유학생 이야기
지갑을 잃어버렸다.
잃어버린 게 아니라 못 찾는 건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지갑의 위치를 모르는 것은 분명하다. 현금 38만 8천 원과 신용카드 두 장, 국제학생증과 증명사진이 들어 있었다. 다섯 시간 동안 지갑을 찾아온 도시를 헤매다가, 조금 전에 카드 분실 신고를 했다. 말하자면 '소유권의 상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학교 졸업 선물로 누이가 백화점에서 사다 주었던, 겉 가죽이 해지고 색이 바랜 지갑을 잃어버렸다.
찾으리라는 기대는 진즉에 접었다. 40만 원이면 유럽에서의 한 달 생활비보다도 더 많은 돈인데, 누나가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사준 지갑인데 하면서 쓰라린 속을 문지르다가도 '몸 건강한 게 어디냐. 그래도 핸드폰이랑 노트북은 멀쩡해서 다행이다.'하면서 위안을 삼았다.
그러니까, 찾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나에게는 당연했다.
지금까지 그래 왔으므로.
도서관 아저씨에게 혹시 누군가 잃어버린 물건이 없느냐고 여쭤본 것도 그래서였다. 없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 내 지갑을 찾기 위해 '할 만큼' 했다는 걸, 희망 같은 건 상처밖에 안 된다는 걸 확인시켜 주고 싶었다. 돈이 얼마나 들었는데. 그런 지갑 찾기가 어디 쉽니. 그러게 잘 챙겼어야지. 돈은 조금만 갖고 다니지 그랬어. 그러게요. 그런 지갑을 어디 가서 찾겠어요. 진즉에 누군가 알맹이만 쏙 빼먹고 지금쯤 어느 수풀 속에 버려져 있겠죠. 그렇게 다 들으라는 듯이 말해주고 싶었다.
"도서관에는 들어온 게 없지만, 혹시 다른 곳에 물건이 있는지 찾아볼게."
경비아저씨는 대학 내 분실물센터를 알아봐 주었고, ilost.co라는 네덜란드 분실물 획득 사이트를 소개해 주었다. 암스테르담에만 해도 4만 개가 넘는 분실물들이, 정확히는 '분실물을 원래 주인에게 찾아주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인구 15만의 작은 대학도시인 네이메헌에도 하루 동안 스무 개가 넘는 분실물-그중에 두세 개는 지갑-이 올라와 있었다.
분실물을 직접 사진으로 찍어서 올리기까지 며칠 걸릴 수 있으니까 좀 더 기다려봐. 꼭 찾을 수 있을 거야. "여긴 네덜란드잖아."
누군가 잃어버린 이어폰을 경비 아저씨께 맡기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나오며 아주 조금, 지갑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떠올렸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타인의 물건을 찾아주기 위해 기꺼이 수고를 치르는 곳에서라면 조금 더 희망을 품어봐도 되지 않을까.
더 아파할까 겁이 나서 서둘러 체념하지 않아도 괜찮아.
허전한 호주머니에 말도 안 되는 희망이 두둑해서 돌아오는 밤이 외롭지 않았다.